반혁명 진압 운동 (1950~1953)
Campaign to Suppress Counterrevolutionaries (1950–1953)
한국전쟁 참전과 함께 1950년 10월 10일 마오쩌둥의 「반혁명 활동 진압에 관한 지시」(쌍십 지시)로 시작된 중화인민공화국 초기의 대규모 탄압 운동. 국민당 잔당과 특무, 비밀결사, 「토비」, 종교 종파를 겨냥했고, 마오가 인구 비례 처형 할당을 지방에 내렸으며 1951년 봄 대중집회의 공개 처형이 절정에 이르렀다. 1954년 공안부 보고는 71만 2천 명 처형, 129만 명 투옥, 120만 명 관제를 집계했다.
상세
건국 첫해의 정책은 비교적 온건했고 류사오치는 각지의 무분별한 숙청을 비판하는 쪽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마오는 공안부장 뤄루이칭에게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했고, 쌍십 지시로 전국적 진압이 시작되었다. 마오는 대략 인구의 0.1%를 처형해야 최악의 반혁명 분자를 없앨 수 있다고 했다가 뒤에 0.05%, 상한 0.1%로 낮추라고 했다. 1951년 1월 그는 상하이에 그해 1~2천 명의 처형이 필요할 것이라고, 광둥에는 이미 3,700명 넘게 죽인 것이 “아주 좋다”고 전보를 보냈다. 많은 성은 할당을 채울 만큼 「반혁명 분자」가 없었고 대량 체포를 감당할 시설도 없었다.
베이징에서만 300만 명 넘게 모인 집회가 3만 차례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1954년 공안부 부부장 쉬쯔룽의 보고는 체포 262만 명, 처형 71만 2천 명이라고 집계했고, 마오는 1957년 1950~1952년에 70만 명이 죽었다고 말했다. 역사가 양쿠이쑹은 1951년 마오가 과잉 처형을 가볍게 꾸짖은 뒤 지방이 처형을 숨겨 실제 수는 훨씬 많았다고 보며, 연구자들의 추산은 50만에서 200만 명에 이른다. 토지개혁의 지주 살해와 같은 시기에 겹쳐 둘을 가르기 어렵다. 운동이 남긴 할당제는 이후의 정치 운동에서도 지방 간부의 성과 지표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