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반·오반 운동
Three-anti and Five-anti Campaigns
건국 초기 중국공산당이 벌인 두 대중운동. 삼반(1951년 말~)은 당·정 간부의 부패·낭비·관료주의를, 오반(1952년)은 민간 자본가의 뇌물·탈세·국가재산 절취·부실공사·국가경제정보 절취를 겨냥했다. 고발과 「호랑이 사냥」 집회로 수십만 명이 조사받았고 상하이 등에서 자살이 잇따랐다. 오반은 민족자본가를 국가에 종속시켜 1953년 이후 사회주의 개조의 길을 닦았다.
상세
삼반 운동은 한국전쟁의 재정 압박 속에서 시작되었다. 동북의 가오강이 먼저 벌인 반부패 운동을 마오가 전국으로 확대했고, 톈진의 지구당 서기 류칭산·장쯔산의 처형은 당이 자기 간부에게도 사형을 적용한다는 신호였다. 운동은 할당된 「호랑이」 수를 채우려는 압박으로 과잉 고발을 낳았다.
오반 운동은 삼반에서 드러난 간부 부패의 「배후」로 자본가를 지목하면서 시작되었다. 노동자와 점원이 고용주를 고발하도록 조직되었고 벌금과 추징으로 기업 자산이 국가로 이전되었다. 신민주주의가 약속한 민족자본의 보호는 이 운동으로 사실상 끝났고, 1953년 이행 총노선과 1956년 공사합영으로 이어졌다.
두 운동은 반혁명 진압운동(1950~1951)과 함께 건국 초기의 억압 체계를 이루었다. 딩링의 소설과 당대 보고서는 대중 고발 집회의 분위기를 전하며, 디쾨터 등은 이 시기를 「해방의 비극」으로 다시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