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피케티)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013년 8월 프랑스어로 펴내고 2014년 4월 영어판이 나온 책. 18세기 이후 유럽과 미국의 소득·부 불평등을 세무 자료로 추적해, 자본 수익률(r)이 경제 성장률(g)보다 오래 높으면 부가 소수에게 쌓인다는 부등식 “r > g”를 불평등을 키우는 근본 힘으로 내세웠다. 1930~1975년의 평등화는 전쟁과 대공황이 만든 예외이며 세계는 상속 부가 지배하는 “세습 자본주의”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고, 세계적 누진 부유세를 처방했다. 데이비드 하비 등 마르크스주의자는 자본을 과정이 아닌 자산 재고로 정의했다고 비판했다.
상세
이 책은 무엇을 보여 주나?
피케티는 세무 기록을 새롭게 활용해, 그때까지 잘 연구되지 않던 최상층 부자의 소득과 부를 250년에 걸쳐 추적했다. 책의 중심 명제는 불평등이 우연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특징이며 국가 개입으로만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자본 수익률 r과 경제 성장률 g의 관계로 요약했다. 여기서 r은 이윤, 배당, 이자, 지대 등 자본에서 나오는 모든 소득을 포함하고, g는 사회의 소득이나 산출의 성장률이다.
설명용 가정으로 숫자를 들어 보자. 자산을 가진 집안이 해마다 5%의 수익을 올려 모두 다시 투자하고 경제 전체는 해마다 1.5%씩 자란다면, 30년 뒤 그 자산은 약 4.3배(1.05의 30제곱)가 되지만 경제 전체의 소득은 약 1.6배(1.015의 30제곱)가 된다. 노동으로 버는 소득이 대체로 경제 성장 속도로 는다면, 자산 소유자의 몫은 갈수록 커진다. 성장이 낮을수록 이 격차는 벌어지며, 부는 상위 10%와 1%에 더 쌓인다. 피케티는 이 “r > g”를 격차를 넓히는 근본 힘으로 보았고, 상속도 같은 공식으로 분석했다.
그의 자료에 따르면 불평등은 19세기에 높았다가 1930~1975년 사이에 줄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대공황, 빚에 의존한 불황이 특히 엘리트가 가진 부를 크게 파괴했고, 이에 자극받은 정부들이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뒤 소득 재분배에 나섰으며, 이 시기의 빠른 세계 성장이 상속 부의 중요성을 줄였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이것이 예외적 상황이었고 오늘의 세계는 상속 부가 경제를 지배하는 “세습 자본주의”로 돌아가 과두제를 만들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발자크, 제인 오스틴,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들어 19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에 축적된 자본에 기초한 굳은 계급 구조를 그렸다.
처방으로 피케티는 연 최고 2%의 세계적 누진 부유세와 최고 80%에 이르는 누진 소득세를 제안했다. 다만 그런 세금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도 썼다. 그는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성 급등이 지속적 성장을 되돌려 주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피케티는 2014년 말 논문에서, r과 g의 관계를 소득과 부의 불평등 변화를 따지는 유일하거나 주된 도구로 보지 않으며 노동소득 불평등의 증가를 논하는 데는 쓸모가 없다고 밝혔다.
어떻게 받아들여졌나?
이 책은 2013년 8월 프랑스에서 나왔을 때 “정치적·이론적 불도저”라는 평을 받았고, 영어권에 소식이 퍼지자 폴 크루그먼은 “올해의, 어쩌면 10년의 가장 중요한 경제학 책”이라고 했다. 세계은행 경제학자였던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경제사상의 분수령이 될 책의 하나라고 보았다. 영어판은 2014년 5월 18일 『뉴욕 타임스』 논픽션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하버드 대학 출판부 역사상 최대의 판매 성공이 되었고, 2017년 말까지 250만 부 넘게 팔렸다. 2020년에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성공은 “올바른 시기에 올바른 주제”를 다룬 덕분으로 풀이되었고, 점거 운동의 구호 “우리는 99%다”가 불평등을 시대정신으로 만든 분위기와 맞물렸다. 한국어판은 2014년 『21세기 자본』으로 나왔다.
주류 경제학의 비판은?
로런스 서머스는 피케티가 자본의 수확 체감을 과소평가했다고 비판했다. 자본이 늘수록 수익률이 떨어져 불평등에 상한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또 1982년 미국 최고 부자 400명 가운데 2012년까지 명단에 남은 사람이 열에 하나뿐이고, 상위 1% 소득이 이제 대부분 자본소득이 아니라 급여라는 점을 들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스웨덴과 남아프리카의 경제사로 사회적 불평등이 r과 g의 차이보다 제도에 훨씬 크게 달려 있다고 보였다. 독일 경제학자 슈테판 홈부르크는 피케티가 부와 자본을 같은 것으로 놓았다고 비판했고,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부의 증가 상당 부분이 자본재의 양이 아니라 땅값의 상승이라고 보았다. 매슈 로그니는 자본소득 증가가 거의 전적으로 집값 급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 경제학자 카를루스 고이스는 연구 대상국의 75%에서 오히려 반대 추세를 발견했다고 했으나, 피케티는 그가 부가 아니라 소득 불평등을 쓰고 국채 금리를 자본 수익률로 삼아 비교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포스트케인스주의자 제임스 K. 갤브레이스는 피케티가 생산적 물적 자본과 관계없고 달러 가치가 일부 수익률 자체에 달린 측정치를 쓴다며 “수익률은 어디서 오는가? 피케티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르크스의 『자본』과는 무엇이 다른가?
이 책은 흔히 마르크스의 19세기 저작 『자본』을 대신할 21세기의 책처럼 소개되었다. 피케티는 그런 의도를 부정했고, 우파 언론이 그를 숨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비난하자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지 않았다고까지 말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폴 메이슨은 “온건한 마르크스주의”라는 비난이 “완전히 빗나갔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사회관계를 서술해 자본주의의 내적 경향을 드러내려 했지만 피케티는 사회 범주와 역사 자료에만 기댄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2014년 「피케티의 『자본』에 대한 단상」에서 이 책의 공과를 함께 따졌다. 하비는 피케티가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부를 고루 퍼뜨리고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큰 보루라는 널리 퍼진 생각을 무너뜨렸다고 높이 평가하고, 소득과 부의 차이에 대한 설명과 상속세·누진세·부유세 옹호도 설득력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이 “자본에 관한 책이 전혀 아니”라고 했다. 2008년 공황이 왜 일어났는지, 왜 미국 성장이 더디고 유럽이 긴축과 정체에 갇혔는지 말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이 역사적으로 갈수록 큰 불평등을 낳는다는 피케티의 통계적 결론은, 하비에 따르면 바로 마르크스가 『자본』 1권에서 이론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하비의 핵심 비판은 두 가지다. 첫째, r > g 같은 통계적 규칙성은 설명이 아니며 하물며 법칙이 아니다. 마르크스라면 그것을 자본과 노동 사이의 힘의 불균형으로 설명했을 것이고, 1970년대 이후 국민소득에서 노동 몫이 꾸준히 줄어든 것은 자본이 기술, 실업, 해외 이전, 대처와 레이건의 반노동 정치를 동원해 노동의 힘을 꺾은 결과라는 것이다. 피케티의 수학적 법칙은 그 밑의 계급 정치를 드러내기보다 가린다. 둘째, 피케티는 자본을 잘못 정의했다. 하비에게 “자본은 물건이 아니라 과정”이며, 흔히, 그러나 오로지 그것만은 아니게 노동력 착취를 통해 화폐로 더 많은 화폐를 만드는 순환이다. 피케티는 자본을 쓰이든 안 쓰이든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모든 자산의 재고로 정의해 땅, 부동산, 지식재산권, 미술품까지 넣었다. 이 자산들의 가치는 그것이 낳을 것에 따라 매겨지므로 수익률이 성장률에 기대는 동어반복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비는 생산적으로 쓰이지 않는 화폐·땅·부동산은 자본이 아니며, 자본의 일부가 유통에서 빠져나가 사실상 파업을 함으로써 쓰이는 자본의 수익률을 높게 유지한다고 보았다. 그는 피케티의 처방이 “순진하지는 않더라도 공상적”이며, 21세기 자본의 작동 모델을 위해서는 “여전히 마르크스나 오늘날 그에 버금가는 이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그 뒤 피케티는 어디로 갔나?
피케티는 2019년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여러 사회가 불평등을 정당화해 온 이데올로기 체계와 그것이 재정·경제 정책을 거쳐 분배에 미친 영향으로 관심을 넓혔다. 이어 『사회주의 시대』(2021)와 『생태 사회주의를 향하여』(2024)처럼 “사회주의”를 내건 칼럼집을 펴냈다. 그는 2007년 프랑스 사회당 대선 후보 세골렌 루아얄의 경제 자문을 맡았고, 2015년 영국 노동당 경제자문위원회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