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민포름
Cominform
1947년부터 1956년까지 소련 주도로 유럽 9개국 공산당·노동자당을 연결한 국제 조정 기구. 코민테른(1943년 해산)의 후신은 아니었으나, 냉전 초기 마셜 플랜 저지와 소련 블록의 노선 통일을 목표로 삼았다. 즈다노프의 「두 진영」 선언과 함께 출범했으며, 1948년 유고슬라비아의 축출(티토-스탈린 분열)로 동구권 내 숙청이 촉발되었다. 1956년 흐루쇼프의 탈스탈린화와 유고슬라비아와의 화해 속에 해산되었으며, 그 실질적 기능은 코메콘과 바르샤바 조약 기구로 이관되었다.
상세
코민포름(공산당·노동자당 정보국)은 1947년 9월 폴란드 슈클라르스카포렘바에서 소련,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프랑스, 이탈리아 9개 당이 모여 출범시켰다. 명목상의 목적은 '경험 교환과 필요시 자발적 행동 조정'이었으나, 실제로는 소련 공산당의 지도 아래 마셜 플랜을 저지하고 동유럽 공산당들의 노선을 통일하는 도구였다. 안드레이 즈다노프가 창립 회의에서 행한 보고는 세계를 '제국주의 진영'과 '반제국주의 민주 진영'으로 나누는 두 진영론의 기원이 되었다.
1948년 6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이 소련의 지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축출된 뒤, 본부는 베오그라드에서 부쿠레슈티로 이전했다. 이 축출은 동유럽 전역에서 '티토주의자' 숙청을 촉발하여 헝가리의 라이크 라슬로, 불가리아의 트라이초 코스토프, 알바니아의 코치 조제 등이 처형되었다. 기관지 『항구적 평화를 위하여, 인민 민주주의를 위하여!』를 여러 언어로 발행했다. 1950년 스탈린은 코민포름의 기능을 코민테른 수준으로 확대하려 했으나 실현되지 않았고,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급속히 쇠퇴하여 1956년 4월 17일 공식 해산되었다.
하위 항목
관련 용어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founding, membership, Zhdanov's role, expulsion of Yugoslavia, dissolution date and context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official name, alternative names (Коминформбюро, Информбюро), 1950 Stalin expansion attempt, archival location (RGASPI), dissolution rationale
- soviethistory.msu.edu Lewis Siegelbaum essay: revival of institutional links post-Comintern, purpose of common strategy under Soviet leadership, post-expulsion purges and show tri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