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진보위원회
Committee of Union and Progress
1889년 이스탄불 군의학교 학생들이 비밀결사로 세운 오스만 제국의 혁명 조직이자 정당. 1908년 청년 튀르크 혁명으로 헌정을 되살렸고, 1913년 정변 뒤 탈라트·엔베르·제말 파샤의 지도 아래 1918년까지 제국을 독재로 통치하며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아르메니아인 등에 대한 집단 학살로 이어진 정책을 주도했다. 1918년 패전 뒤 스스로 해산했고, 남은 연합파는 1926년 이즈미르 사건 뒤 숙청되었다.
상세
튀르키예어 출처에 따르면 1889년 5월 21일 이스하크 쉬퀴티, 이브라힘 테모, 압둘라 제브데트 등 군의학교 학생들이 헌법의 부활과 압뒬하미트 2세 체제의 타도를 목표로 「오스만 연합 협회」라는 비밀 조직을 세웠다. 1896년 쿠데타 기도가 발각되어 국내 지도자들이 유배된 뒤에는 파리의 아흐메트 르자를 중심으로 한 망명 조직이 활동을 이었다. 1902년 제1차 청년 튀르크 대회에서 조직은 중앙집권파 아흐메트 르자와 분권파 사바하틴 왕자의 두 갈래로 나뉘었다.
1906년 9월 셀라니크(테살로니키)에서 탈라트 등이 세운 오스만 자유협회는 1907년 9월 27일 파리 조직과 합쳐 「오스만 통일진보위원회」가 되었고, 이로써 조직은 군사적 성격도 띠게 되었다. 1907년 10월에는 무스타파 케말도 가입했다. 1908년 7월 레스네에서 니야지 베이가 봉기하면서 혁명이 시작되었고, 7월 24일 헌법이 다시 시행되어 제2차 입헌시대가 열렸다. 위원회는 처음에는 정부를 밖에서 통제했고, 1909년 「3월 31일 사건」을 진압한 뒤 압뒬하미트 2세를 폐위했다.
1912년 「몽둥이 선거」에서 이겼으나 장교 집단의 압력으로 내각이 물러났고, 1913년 1월 23일 엔베르가 이끈 무장 집단이 정부 청사 바브알리를 습격해 권력을 잡았다. 같은 해 6월 마흐무트 셰브케트 파샤가 암살된 뒤 위원회는 집권당이 되어 사이트 할림 파샤 총리 아래 독재 체제를 세웠고, 엔베르·탈라트·제말 파샤가 당의 지도자가 되었다. 1914년 8월 2일 위원회 지도부는 정부와 술탄에게 알리지 않고 독일과 동맹을 맺어 제국을 제1차 세계대전에 끌어들였다. 영어 출처는 위원회 정권이 준군사조직 「특수조직」을 동원해 아르메니아인·폰토스 그리스인·아시리아인 집단 학살로 이어진 정책을 폈다고 적는다.
패전이 확실해지자 1918년 10월 탈라트 내각이 사퇴했고, 11월 1일 임시 대회에서 위원회는 스스로 해산했다. 엔베르·탈라트·제말 파샤는 독일 어뢰정을 타고 이스탄불을 떠났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지도자 상당수가 1920~1922년 아르메니아 혁명연맹의 「네메시스 작전」으로 암살되었고, 남은 연합파 대부분은 무스타파 케말의 민족운동과 공화인민당에 합류했다. 카라 케말이 1922년 위원회를 잠시 되살렸으나, 1926년 이즈미르 암살 음모 사건 뒤 남은 연합파는 숙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