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뮌 전사의 벽
Communards' Wall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 남동쪽 담장의 한 구간. 1871년 5월 피의 주간 마지막에 묘지에서 붙잡힌 코뮌 전사 147명이 베르사유군에게 이 벽 앞에서 총살되어 발치의 구덩이에 묻혔다. 1880년부터 해마다 5월 말 좌파 단체들이 이곳으로 행진하며, 코뮌을 기리는 노동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상세
피의 주간 막바지에 남은 코뮌 전사들은 벨빌과 페르라셰즈 묘지에 버텼다. 정규군은 오후에 요새화되지 않은 묘지 담을 넘어 무덤 사이에서 백병전을 벌였고, 저녁 무렵 묘지를 장악하자 살아남은 147명을 담장에 세워 총살하고 그 발치에 판 구덩이에 묻었다. 다른 곳에서 붙잡혀 군사 법정에서 사형을 받은 국민방위군 장교 20명쯤도 이곳으로 끌려와 같은 구덩이에 묻혔다. 그 뒤 며칠 동안 다른 곳에서 총살된 수백 구의 시신이 수레로 실려 와 함께 묻혔다. 프랑스어 자료는 총살을 5월 27일 저녁, 영어 자료는 28일로 적는다.
엥겔스는 1891년 서문에서 마지막 대량 학살이 벌어진 이 벽이 프롤레타리아트가 제 권리를 위해 일어서자마자 지배 계급이 얼마나 광포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말 없는 증거로 오늘날에도 서 있다고 썼다. 피의 주간 전체의 희생자 수는 지금도 다투어지며, 최근 추정은 1만에서 2만 명 사이다.
1880년 5월 23일, 코뮌 사면 두 달 전에 쥘 게드의 호소로 2만 5천 명이 단춧구멍에 붉은 장미를 꽂고 경찰을 무릅쓰고 첫 행진을 했다. 그 뒤 「벽으로 오르기」는 해마다 5월 마지막 주의 행사가 되었고, 장 조레스와 에두아르 바이양도 여러 차례 행진했다. 1911년 폴 라파르그와 라우라 마르크스가 벽 맞은편에 묻혔고, 1936년 5월 24일에는 인민전선 승리 직후 레옹 블룸과 모리스 토레즈를 앞세운 60만 명이 행진했다. 1983년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코뮌의 죽은 이들에게 1871년 5월 21~28일」이라는 대리석 판이 붙어 있다. 지금의 벽은 담장 전체를 다시 지을 때 원래 돌을 일부 다시 써서 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