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즌 선
Curzon Line
폴란드 제2공화국과 소비에트 러시아 사이의 제안된 분계선으로, 1919년 연합국 최고위원회가 민족 분포를 기준으로 제시한 뒤 1920년 7월 영국 외무장관 커즌 경의 전보로 이름이 붙었다. 그로드노에서 브레스트-리토프스크를 거쳐 부크 강을 따라 카르파티아 산맥까지 이어졌고, 1919년 12월 선언은 옛 러시아 제국 영역만 다루어 동갈리치아와 르부프는 대상 밖이었다. 1920년 7월 커즌 전보가 르부프와 드로호비치 유전을 폴란드 밖에 두는 A선을 지지했으나 소비에트 측이 거부했고, 1921년 리가 조약은 이 선보다 훨씬 동쪽에 국경을 확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테헤란·얄타 회담에서 다시 채택되어 폴란드에 유리한 5~8km의 편차를 두고 1945년 8월 16일 조약으로 확정되었다.
상세
명칭과 유래
이 선의 이름은 1919년 12월의 획정 자체가 아니라 1920년 7월 커즌 경이 전보로 휴전을 제안하면서 붙었다. 1919년 12월 선은 연합국 최고위원회가 폴란드 문제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민족 분포를 기준으로 마련한 것으로, 일부 기록은 초안을 허버트 패턴의 제안으로 돌리고 다른 기록은 커즌의 저작으로 본다. 어느 쪽이든 초기 획정의 저자를 커즌 한 사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성립 배경
제1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은 옛 러시아·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 영토에서 독립 폴란드를 재건하기로 하고, 베르사유 조약 제87조에 따라 조약에 명시되지 않은 경계는 주요 연합국이 결정하도록 했다. 1919년 12월 8일 최고위원회는 선의 지도와 설명을 공표하고 그 서쪽에서 폴란드가 정규 행정을 조직할 권리를 인정했으나, 동쪽의 장래 국경을 미리 판정하지 않으며 그 동쪽의 폴란드 권리를 유보한다고 밝혔다.
경로와 민족 경계
선은 리투아니아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 이르기까지 그로드노, 브레스트-리토프스크를 지나 부크 강을 따르고 남서쪽으로 거의 직선으로 카르파티아 산맥에 이르렀다. 대체로 폴란드어 우세 지역과 우크라이나인·벨라루스인·리투아니아인이 주로 사는 동부 지역의 경계에 대응했으나, 접경 지역은 여러 민족이 섞여 있었고 이 선은 우크라이나인·벨라루스인·리투아니아인의 민족 분포 한계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 타협선이었다.
1920년 전쟁과 리가 조약
1920년 7월 11일 커즌은 볼셰비키 정부에 그 선에서의 휴전을 제안하는 전보를 보냈고, 영국은 소비에트 군이 그 선에서 멈추고 50km 동쪽으로 물러나 폴란드 및 브란겔 정부와 휴전하라고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연합국이 폴란드를 지원하겠다고 경고했다. 소비에트 측은 이를 거부했다. 당시 당 지도부는 폴란드의 소비에트화와 서유럽 혁명을 기대하며 다수결로 거부를 결정했고, 인민위원회는 영국의 중재를 거절하며 폴란드가 직접 교섭할 것을 요구했다. 양측은 군사 정세가 유리할 때 선을 무시했고, 1921년 3월 18일 리가 조약은 이 선보다 훨씬 동쪽, 즉 빌뉴스와 동갈리치아의 르부프, 볼히니아 대부분을 폴란드에 귀속시키는 국경을 확정했다. 이 국경은 1923년 국제연맹의 승인을 받았다.
리가 조약으로 폴란드가 얻은 영토가 커즌 선에서 동쪽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는 사료마다 약 160km, 약 200km, 약 250km로 엇갈린다. 이 수치는 어느 하나로 단정하지 않고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 확정
1939년 8월 독일-소비에트 불가침 조약의 비밀 추가 의정서에 따른 분계선은 나레프·비스와·산 강을 따라 그어져 커즌 선과 일치하지 않았고, 오히려 루블린과 바르샤바 부근까지 미쳤다. 1939년 9월 소비에트 연방은 커즌 선 동쪽 영토에 비아위스토크와 동갈리치아를 더해 병합하고 수십만 명의 폴란드인을 동쪽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1943년 11~12월 테헤란 회담에서 1939년 소련이 점령한 영토를 독일 영토로 보상하고 동부 국경을 커즌 선으로 한다는 처칠의 제안이 채택되었고, 1944년 소련군이 동부 폴란드를 재점령한 뒤 소련은 커즌 선과 대략 같은 새 국경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는 리가 선을 주장하며 반대했으나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동부 국경은 일부 지역에서 폴란드에 유리한 5~8km의 편차를 두고 커즌 선을 따르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폴란드는 북서쪽에서 상당한 영토 보상을 받게 되었다. 1945년 8월 16일 모스크바에서 소련-폴란드 국경 조약이 조인되어 국경이 확정되었으며, 이후 1948년 국경 제도 협정과 1951년 영역 교환 협정으로 일부 수정되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이 국경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벨라루스·우크라이나 사이의 국경이 되었다.
구별되는 선들
커즌 선은 전후 폴란드의 동쪽 국경이었고, 오데르-나이세 선은 동부에서 잃은 영토에 대한 보상으로 서쪽으로 약 160km 이동한 국경이었다. 두 선은 흔히 함께 언급되지만 지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다른 국경이다. 커즌 선 자체도 남부 구간에서 A선과 B선으로 나뉘었다. A선은 르부프와 드로호비치 유전을 폴란드 밖에 두었고, B선은 우크라이나 국가가 수립될 경우 리비우를 폴란드에 남기는 안이었다. 또한 1919년 12월 선언은 그 당시 포슈 선으로 획정되던 빌뉴스 지역의 폴란드-리투아니아 분쟁을 다루지 않았고, 1920년 7월 전보는 이를 다루었다.
민족적 결과와 현재
1945년 9월 이후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인을 소련으로 강제 이주시켜 1946년 8월까지 약 48만 3천 명을 이동시켰고, 1947년 비스와 작전으로 남은 비폴란드계 주민을 폴란드 북서부로 강제 이주시켰다. 커즌 선 동쪽에 살던 폴란드인 약 300만 명 가운데 200만 명가량이 1945년부터 1949년 사이에 폴란드로 이주했다. 1975년 헬싱키 최종의정서는 참가국 간 국경의 불가침을 확인했으나, 소련 해체 후 리투아니아·벨라루스·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동부 국경에 관한 새로운 조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omprehensive history: 1919 proposal, ethnography, Riga Treaty repudiation, Yalta adoption with 5–8 km variations, and post-1945 border treaty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article confirming the line's path, Soviet rejection in 1920, Tehran/Yalta revival, and August 16 1945 treaty formalisation
- britannica.com Britannica summary: demarcation line proposed during Russo-Polish War, ignored in 1921, revived by USSR, confirmed at Yalta (Feb 1945) and by Soviet-Polish treaty (Aug 16, 1945)
-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러시아어)
- opil.ouplaw.com
- 위키백과 (영문)
- msuweb.montclair.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