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endency theory / teoría de la dependencia · 1949 (1949년 한스 싱어와 라울 프레비시의 교역조건 논문에서 출발해 1950년대 유엔 라틴아메리카 경제위원회(CEPAL)의 구조주의로 자리 잡았고, 1957년 폴 배런 이후 마르크스주의 갈래가 갈라져 나와 1960~70년대에 가장 널리 퍼졌다.)

종속이론

Dependency theory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까닭을 그 나라 안의 뒤처짐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 편입된 방식에서 찾는 이론. 1949년 라울 프레비시와 한스 싱어가 1차 산품 수출국의 교역조건이 장기적으로 나빠진다는 명제를 내놓은 데서 출발해, 유엔 라틴아메리카 경제위원회(CEPAL)의 구조주의 경제학과 폴 배런·안드레 군더 프랑크·루이 마우루 마리니 등의 마르크스주의 종속이론으로 갈라졌다. 부유한 “중심부”가 가난한 “주변부”의 자원과 잉여를 빨아들이며, 주변부는 선진국이 지나온 단계를 늦게 밟는 것이 아니라 종속된 위치 때문에 저발전에 묶인다고 본다.

상세

왜 이런 이론이 나왔나?

제2차 세계대전 뒤 식민지에서 벗어난 나라들과 라틴아메리카의 가난을 설명하는 주류 이론은 근대화론이었다. 근대화론은 모든 사회가 비슷한 발전 단계를 밟으며, 오늘의 저개발 지역은 오늘의 선진국이 예전에 있었던 자리에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그러니 할 일은 투자와 기술 이전, 세계 시장과의 더 긴밀한 통합으로 그 길을 빨리 걷게 돕는 것이었다.

종속이론은 이 전제를 거부했다. 저개발국은 선진국의 덜 자란 모습이 아니라 제 나름의 구조를 가진 사회이며, 무엇보다 세계 시장에서 약한 쪽에 서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는 천연자원과 값싼 노동력, 낡은 기술의 처분 시장, 선진국 상품의 판로를 제공하고, 선진국은 그것 없이는 지금의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없다. 부유한 나라는 경제뿐 아니라 금융·정치·교육·문화를 통해서도 이 의존 상태를 유지한다.

프레비시-싱어 명제는 무엇을 말하나?

출발점은 교역조건, 곧 한 나라가 수출품 한 단위로 수입품을 얼마나 살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설명용 가정으로 숫자를 들어 보자. 어느 커피 수출국이 1950년에 커피 1,000자루로 트랙터 1대를 살 수 있었는데 1970년에는 1,500자루를 내야 한다면, 같은 공업 제품을 얻으려고 더 많은 노동과 땅을 수출해야 한다. 이것이 “교역조건의 악화”다.

1949년 2월 유엔 경제국에서 일하던 한스 싱어가 저개발국의 교역조건이 1876년부터 1948년 사이에 크게 나빠졌다는 논문을 냈고, 같은 해 5월 아르헨티나 경제학자 라울 프레비시가 아바나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경제위원회 제2차 총회에서 같은 하락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통계 논증은 싱어가 먼저 했지만, 경기순환과 중심부·주변부 임금의 서로 다른 움직임을 더 강조한 프레비시의 이름이 더 널리 알려졌다. 두 사람의 설명은 이렇다. 소득이 늘면 공업 제품 수요는 식량 같은 1차 산품 수요보다 빨리 는다. 또 기술이 발전할 때 중심부는 강한 노동조합과 상업 제도 덕분에 높은 임금과 이윤으로 그 성과를 붙잡아 두지만, 주변부의 약한 기업과 노동자는 그 성과를 낮은 가격으로 구매자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술 진보와 국제무역의 이익은 중심부에 쌓인다.

프레비시는 1950년 「라틴아메리카의 경제 발전과 그 주요 문제」를 펴내고 같은 해 이 위원회(스페인어 약칭 CEPAL)의 사무총장이 되었다. 그의 영향으로 위원회는 유엔 안에서 제3세계 주장의 중심이 되었고, 수입품을 국내 생산으로 바꿔 가며 공업화하는 수입대체 공업화 전략과 라틴아메리카 구조주의 경제학이 여기서 나왔다. 다만 프레비시 자신은 1956년부터 페론 정부의 보호주의를, 늦어도 1963년부터는 수입대체 공업화를 비판했고, 1964~1969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초대 사무총장으로서 개발도상국 사이의 무역과 지역 통합을 내세웠다.

구조주의에서 마르크스주의 종속이론으로 어떻게 갈라졌나?

종속이론에는 흔히 두 흐름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프레비시, 셀수 푸르타두, 아니발 핀투 등 CEPAL의 라틴아메리카 구조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폴 배런, 폴 스위지,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미국 마르크스주의다. 배런은 1957년 『성장의 정치경제학』에서 이 이론을 마르크스주의 시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잉여의 추출과 자본 축적을 분석의 중심에 두었다. 발전하려면 생존에 필요한 것보다 많이 생산한 잉여의 일부를 새 생산수단에 투자해야 하는데, 주변부의 플랜테이션 잉여는 지주의 사치 소비로 해외 수입품에 흘러가고, 외국 자본이 세운 공업의 잉여는 외국 주주의 이윤으로 송금되거나 과시적 소비로 사라진다. 그래서 배런은 이 고리를 끊으려면 정치 혁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1960년대에 구조주의 쪽 학자들은 체제 안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여지가 있다고 반론했다. 아르헨티나·브라질·멕시코의 부분적 공업화를 근거로, 외부의 결정권 아래에서도 발전은 일어날 수 있다는 “종속적 발전”론이 나왔다. 뒷날 브라질 대통령(1995~2002년)이 되는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가 망명 중에 이 갈래를 정리했다. 이에 맞서 브라질의 루이 마우루 마리니는 마르크스를 꼼꼼히 다시 읽어, 주변부 노동자를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쥐어짜는 초과착취와 불평등 교환이 종속적 자본 재생산과 그에 고유한 계급 관계에서 나온다는 마르크스주의 종속이론을 세웠다. 테오토니우 두스산투스는 주변부의 대외 관계와 대내 관계를 함께 보는 “새로운 종속”을 내놓았다.

이 이론은 라틴아메리카 밖으로도 퍼졌다. 가이아나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월터 로드니는 1972년 『유럽은 어떻게 아프리카를 저개발시켰는가』에서 유럽 제국주의의 의식적 착취가 오늘의 아프리카 저발전으로 이어졌다고 썼고, 아랍 세계에서는 이집트 경제학자 사미르 아민이 이론을 다듬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그 마르크스주의 측면을 넓혀 세계체제론을 세웠다. 프랑크의 저발전의 발전 명제와 에마뉘엘·아민의 불평등 교환 이론이 이 흐름의 대표적 주장이다.

레닌의 제국주의론과는 어떻게 이어지나?

종속이론은 룩셈부르크와 레닌의 고전적 제국주의 이론과 많은 점을 공유하고, 그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심을 계속 끌었다. 다만 강조점이 다르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독점과 금융자본, 자본 수출이 선진국 자본주의의 한 단계로서 세계를 분할하는 과정을 중심에 둔다. 종속이론은 그 결과를 주변부 쪽에서 보며, 주변부 사회가 왜 공업화와 자립적 성장에 이르지 못하는지를 묻는다. “표준” 종속이론은 저개발국이 공업화와 해방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회의적이라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다르다는 평가도 있다. 이 차이는 라틴아메리카 사회가 봉건적인가 자본주의적인가를 둘러싼 논쟁, 민족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을 둘러싼 전략 논쟁으로 이어졌다(저발전의 발전 항목 참고).

어떤 비판을 받았나?

경제학자 산자야 랄은 “경제적 종속”이라는 개념이 종속 경제를 다른 자본주의 경제와 가를 기준을 갖추지 못했고, 발전 격차를 낳는 것이 종속 그 자체인지 자본주의의 더 넓은 특징인지 증명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정치학자 토니 스미스는 국제 경제 구조에 지나치게 기대고 저개발국 국가의 자율성과 국내 자원 동원 능력을 소홀히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 통제 경제에서 개방 무역으로 돌아선 인도의 성장, 일부 동아시아 경제의 성장은 종속이론의 영향력을 떨어뜨린 반례로 자주 거론된다. 이에 대해 인도의 경제학자 우차 파트나이크와 프라바트 파트나이크는 그것이 반례라기보다 세계적 예비 노동력의 형성과 제국주의가 드러나는 방식의 변화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수입대체 공업화의 성적도 쟁점이었다. 경제사가 로버트 C. 앨런은 해법으로 내놓은 보호주의가 실패해 라틴아메리카가 빚더미에 앉아 불황에 빠졌다며 종속이론의 주장을 “논쟁적”이라고 보았고, 국내 시장이 너무 작아 자동차 같은 복잡한 공산품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없었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1980년대 제3세계 외채 위기와 1990년대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정체는 “종속적 발전”의 가능성에도 의문을 던졌다.

지금은 어떻게 쓰이나?

종속이론은 1970년대만큼 학계를 지배하지는 않지만, 세계의 부가 어떻게 나뉘는가를 보는 개념적 방향으로서 여전히 쓰인다. 공정무역 운동 같은 비정부기구 캠페인에 영향을 남겼고, 오늘의 글로벌 사우스 논의와 글로벌 가치사슬 연구,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빠져나가는 가치를 재려는 불평등 교환 연구가 그 문제의식을 잇는다. 프레비시-싱어 명제는 1차 산품 가격 하락의 장기 추세에 대한 최근 통계 연구에서 제한적인 지지를 얻었고, 싱어는 1998년 이 명제가 브레턴우즈 기관들이 개발도상국에 주는 조언에 들어가 주류가 되었다고 말했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