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zkapital (Rudolf Hilferding, 1910); финансовый капитал · 1910–현재 (1910년 힐퍼딩의 『금융자본론』에서 개념이 세워졌고, 레닌의 『제국주의론』(1916)을 거쳐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과 독점자본주의론의 기본 범주가 되었다.)

금융자본

Finance capital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이 하나로 녹아 붙어, 은행이 맡은 돈을 산업에 오래 묶어 두고 대기업을 지배하게 된 자본의 형태. 루돌프 힐퍼딩이 1910년 『금융자본론』에서 “실제로 산업자본으로 전화된 은행자본”이라고 정의했다. 레닌은 『제국주의론』(1916)에서 생산의 집중이 낳은 독점과 은행·산업의 융합을 함께 담는 뜻으로 넓혀 제국주의의 다섯 가지 특징 가운데 하나로 삼았고, 소수의 금융자본가가 경제와 국가를 좌우하는 지배를 금융과두제라 불렀다.

상세

왜 금융자본이라는 새 이름이 필요했나?

마르크스가 『자본』을 쓴 19세기 중엽의 전형적인 공장주는 대개 자기 돈으로 공장을 세우고, 은행에서는 원료를 사고 임금을 치를 짧은 신용만 얻었다. 은행은 돈을 맡기고 빌려주는 중개자였고, 산업을 움직이는 것은 공장주였다. 그런데 19세기 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거대한 주식회사와 카르텔이 생기고, 몇몇 대은행이 이들의 주식을 인수해 팔고, 오랜 기간에 걸친 설비 투자 자금을 대고, 은행 임원이 기업 감사회에 앉았다. 오스트리아 출신 사회민주주의자 루돌프 힐퍼딩은 이 변화를 『금융자본론』(Das Finanzkapital, 1910)에서 정리하며, 은행과 산업이 이렇게 맞물린 자본에 새 이름을 붙였다.

“산업의 자본 가운데 갈수록 커지는 부분은 그것을 사용하는 산업가의 것이 아니다. 산업가는 그들에 대해 소유자를 대표하는 은행을 통해서만 자본을 처분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은행은 자기 자본의 갈수록 커지는 부분을 산업에 고정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은행은 점점 더 큰 규모로 산업자본가가 된다. 이렇게 하여 실제로 산업자본으로 전화된 은행자본, 곧 화폐 형태의 자본을 나는 금융자본이라 부른다.” (힐퍼딩, 『금융자본론』 14장)
„Ein immer wachsender Teil des Kapitals der Industrie gehört nicht den Industriellen, die es anwenden. Sie erhalten die Verfügung über das Kapital nur durch die Bank, die ihnen gegenüber den Eigentümer vertritt. Anderseits muß die Bank einen immer wachsenden Teil ihrer Kapitalien in der Industrie fixieren. Sie wird damit in immer größerem Umfang industrieller Kapitalist. Ich nenne das Bankkapital, also Kapital in Geldform, das auf diese Weise in Wirklichkeit in industrielles Kapital verwandelt ist, das Finanzkapital.“

설명을 위해 가정한 숫자로 풀어 보자. 어느 대은행이 수많은 예금자에게서 100억 원을 맡았다. 예금자에게 이 돈은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은행은 그 가운데 60억 원을 철강 카르텔의 10년짜리 용광로 증설에 빌려주고 주식으로도 사 두었으며, 은행 임원이 철강 회사 감사회에 들어가 있다. 이제 60억 원은 사실상 용광로와 압연기로 바뀌어 있으므로 은행은 쉽게 거둬들일 수 없고, 철강 회사가 잘되는지에 운명을 건 산업자본가가 된다. 철강 회사 쪽에서 보면 공장을 굴리는 자본의 큰 몫이 은행을 거쳐 들어온 남의 돈이다. 힐퍼딩이 말한 금융자본이 이런 관계다. 힐퍼딩은 소유가 집중될수록 은행을 지배하는 사람과 산업을 지배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 되어 간다고 보았고, 여기서 「금융자본가」라는 말이 나왔다.

힐퍼딩은 금융자본에서 무엇을 끌어냈나?

힐퍼딩에게 금융자본은 주식회사의 발전과 함께 자라 산업의 독점화로 정점에 이른다. 그는 “카르텔화와 트러스트화로 금융자본은 그 힘의 최고 단계에 이른다”고 썼다. 은행자본이 고리대자본을 부정했듯 금융자본이 다시 은행자본을 부정한다는 헤겔식 비유도 덧붙였다.

이 분석은 곧바로 경제정책과 대외정책의 분석으로 이어진다. 자유무역을 내세우던 산업자본과 달리 금융자본은 보호관세와 자본수출, 식민지 획득을 원한다. 힐퍼딩의 정식에 따르면 금융자본의 정책은 세 가지 목표를 좇는다. 첫째 될 수 있는 한 큰 경제 영역을 만들고, 둘째 그것을 보호관세의 벽으로 외국 경쟁에서 막아, 셋째 자국 독점 연합의 착취 영역으로 삼는다는 것이다(『금융자본론』 22장). 그는 식민지에서 원주민의 토지를 빼앗고 임금노동자를 만드는 데 국가의 폭력이 동원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제국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낡은 자유주의의 이상을 대신해 나타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했다.

결론 장에서 힐퍼딩은 금융자본이 “경제적·정치적 힘의 최고 단계를 자본 과두제의 손에 쥐여 주며 자본 거물의 독재를 완성한다”고 하고, 이 독재가 마침내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뒤집힌다고 내다보았다. 동시에 금융자본은 사회주의로 가는 길도 쉽게 만든다고 보았다. 경제의 핵심이 이미 몇몇 대은행에 모여 있으므로 “오늘날 이미 베를린의 6대 은행을 장악하는 것은 대공업의 가장 중요한 부문을 장악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카우츠키는 이 책을 「『자본』 제4권」이라 불렀고 오토 바우어도 오래 기다린 저작이라며 반겼다.

레닌은 힐퍼딩의 정의를 어떻게 고쳤나?

레닌은 『제국주의론』 3장 「은행자본과 금융자본」에서 힐퍼딩의 정의를 그대로 옮긴 뒤 이것이 불완전하다고 평가했다. 정의 안에 가장 중요한 계기, 곧 생산과 자본의 집중이 독점을 낳을 만큼 강해졌다는 사실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금융자본을 이렇게 다시 요약했다.

“생산의 집중, 거기서 자라나는 독점, 은행과 공업의 융합 또는 유착, 이것이 금융자본이 생겨난 역사이자 이 개념의 내용이다.” (레닌, 『제국주의론』 3장)
«Концентрация производства; монополии, вырастающие из неё; слияние или сращивание банков с промышленностью — вот история возникновения финансового капитала и содержание этого понятия.»

레닌에게 금융자본은 몇 사람의 손에 집중되어 사실상의 독점을 누리며, 회사 설립과 증권 발행, 국가 공채에서 막대한 이윤을 거두어 사회 전체에 독점자에 대한 공물을 지우는 힘이다. 그는 이런 지배를 금융과두제라 불렀다. 7장에서는 제국주의를 「독점과 금융자본의 지배가 이루어지고, 자본수출이 두드러진 의의를 얻고, 국제 트러스트가 세계 분할을 시작하고, 최대 자본주의 나라들이 지구의 영토 분할을 끝낸」 단계로 정의했다. 금융자본은 이 다섯 특징 가운데 둘째 자리에 놓였다. 다만 레닌은 은행이 산업을 지배한다는 힐퍼딩의 도식보다 독점 그 자체를 더 앞세웠고, 힐퍼딩이 정치적으로는 카우츠키 쪽에 섰다는 점도 비판했다.

부하린은 『제국주의와 세계경제』(1915~1917년 집필)에서 이 개념을 국가 쪽으로 밀고 나갔다. 금융자본이 한 나라의 경제 전체를 하나의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로 묶으면 경쟁은 거의 전부 나라 밖으로 옮겨 가고, 그 경쟁의 기관인 국가권력이 엄청나게 커진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뒤에 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 이어졌다. 부하린은 또 제2인터내셔널이 전쟁 앞에서 무너진 까닭을 설명하려고, 노동계급 안의 특권층인 노동귀족에 관한 이론을 다시 끌어들였다.

금융자본은 이자 낳는 자본이나 일상어의 「금융자본」과 어떻게 다른가?

마르크스는 『자본』 3권에서 남에게 빌려주어 이자를 받는 자본을 이자 낳는 자본으로 다루었다. 힐퍼딩의 금융자본은 이런 대부 관계에 그치지 않고, 은행이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 깊이 들어가 산업자본과 하나가 된 상태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다르다. 일상어에서 「금융자본」은 흔히 은행·증권·펀드 같은 금융 부문의 자본, 또는 산업자본과 대립하는 투기적 자본을 뜻하는데, 마르크스주의의 금융자본은 오히려 금융과 산업의 결합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 뒤 이 개념은 어떻게 쓰이고 비판받았나?

힐퍼딩 자신은 1915년 무렵부터 금융자본이 경제를 계획적으로 조직해 간다는 「조직된 자본주의」론으로 나아갔고, 자본의 집중이 오히려 자본주의를 안정시킨다고 보아 공황과 붕괴의 필연성을 부정하는 쪽에 섰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두 차례 재무장관(1923, 1928~1929)을 지낸 일은 많은 사회주의자 사이에서 그의 이론적 권위를 떨어뜨렸고, 『금융자본론』의 영향은 주로 레닌의 저작을 거쳐 퍼졌다. 그는 나치를 피해 망명했다가 1941년 파리에서 게슈타포에 붙잡혀 숨졌다.

소련의 정치경제학 교과서에서 금융자본과 금융과두제는 제국주의론의 기본 범주로 굳었다. 반면 은행이 산업을 지배한다는 힐퍼딩의 그림은 은행 중심의 독일 자본주의를 일반화한 것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미국의 폴 배런과 폴 스위지는 『독점자본』(1966)에서 은행보다 스스로 자금을 마련하는 거대 기업의 독점을 더 본질적인 경향으로 보았고, 그들을 잇는 먼슬리 리뷰 학파는 21세기에 들어 금융화를 설명하려고 「독점-금융자본」이라는 말을 쓴다.

원문

힐퍼딩, 『금융자본론』 발췌제14장 자본주의적 독점과 은행

자본의 금융자본으로의 전화

자본주의 산업의 발전은 은행업의 집적을 발전시킨다. 집적된 은행 체제는 그 자체가 카르텔과 트러스트라는 자본주의적 집적의 최고 단계에 이르게 하는 중요한 동력이다. 그러면 이것들은 다시 은행 체제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카르텔이나 트러스트는 최대의 자본력을 가진 기업이다. 자본주의 기업들 사이의 상호 의존 관계에서 어느 기업이 다른 기업에 종속되는지는 무엇보다 자본력이 결정한다. 카르텔화가 많이 진행되면 그것만으로도 은행들이 카르텔이나 트러스트에 종속되지 않으려고 서로 결합하고 규모를 키우게 된다. 이렇게 카르텔화 자체가 은행의 결합을 촉진하고, 거꾸로 은행의 결합이 카르텔화를 촉진한다. 이를테면 제강 회사들의 결합에는 일련의 은행이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 은행들은 개별 기업가의 뜻을 거슬러서라도 결합을 이루어 내려고 함께 움직인다. 거꾸로 처음에는 기업가들이 이룬 이익 공동체가, 그때까지 경쟁하던 두 은행에도 공동의 이해관계를 만들어 우선 특정 분야에서 함께 행동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비슷하게, 산업의 결합(콤비네이션)은 지금까지 원료 산업 분야에서만 활동했을 수도 있는 은행의 산업 영역을 넓히도록 작용하여, 은행이 그 활동을 가공 산업으로까지 넓히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런데 카르텔 자체는 한 산업 부문 전체의 막대한 지불 신용과 생산 신용을 언제나 감당할 수 있는 대은행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카르텔은 은행과 산업 사이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도 한다. 산업에서 자유경쟁이 폐지되면 우선 이윤율이 오른다. 이 높아진 이윤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쟁의 배제가 합병을 통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새 기업이 설립된다. 이 기업은 높아진 이윤을 기대할 수 있다. 이 높아진 이윤은 자본화되어 창업자 이득을 이룰 수 있다.[1] 이 창업자 이득은 트러스트가 성립하는 데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째, 이것을 얻는 것이 은행이 독점화를 촉진하는 매우 중요한 동기다. 둘째, 창업자 이득의 일부는 반대하지만 중요한 기업들에게 더 높은 매입가를 치러 공장을 팔도록, 곧 카르텔이 성립할 수 있게 하도록 움직이는 데 쓸 수 있다. 이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카르텔은 한 산업 부문의 기업들에 대해 수요를 행사한다. 이 수요는 어느 정도까지 기업들의 가격을 끌어올리고[2], 이 높아진 가격은 창업자 이득의 일부로 치러진다.

카르텔화는 카르텔에 든 기업들의 수익을 더 안전하고 고르게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전에 개별 기업에 그토록 자주 치명적이었던 경쟁의 위험이 제거된다. 그러면 우선 이 기업들의 주가가 오르며, 이는 다시 신주를 발행할 때 더 높은 창업자 이득을 뜻한다. 나아가 이 기업들에 투자된 자본의 안전성이 크게 높아진다. 이 덕분에 은행은 산업 신용을 더 넓히고 그리하여 이전보다 더 큰 정도로 산업 이윤에 참여할 수 있다. 이렇게 카르텔화를 통해 은행과 산업 사이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지며, 동시에 산업에 투자된 자본의 처분권은 점점 더 은행에 넘어간다.

우리는 자본주의 생산의 초기에 은행의 화폐가 두 원천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는 비생산적 계급들의 화폐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자본가와 상업자본가의 준비 자본이다. 또 우리는 신용의 발전이 자본가 계급의 준비 자본 전체뿐 아니라 비생산적 계급들의 화폐 대부분까지도 산업이 쓸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보았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산업은 산업자본가들이 소유한 자본 총액보다 훨씬 큰 자본으로 운영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비생산적 계급이 은행에, 그리고 은행을 통해 산업가에게 맡기는 화폐의 총액도 끊임없이 늘어난다.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이 자금의 처분권은 은행에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와 그 신용 조직이 발전함에 따라 은행에 대한 산업의 종속이 커진다. 다른 한편 은행은 비생산적 계급들의 자금에 이자를 붙여 줄 때에만 그 자금을 끌어들이고, 늘 커지는 그 기본 부분을 계속 처분할 수 있다. 은행은 그 자금이 아직 그리 많지 않았을 때는 그것을 투기 신용과 유통 신용에 씀으로써 이자를 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자금이 늘어나고, 다른 한편으로 투기와 상업의 중요성이 줄어들면서, 이 자금은 점점 더 산업자본으로 전화되어야 했다. 생산 신용이 꾸준히 확대되지 않았다면 예금의 쓰임새, 따라서 은행 예금의 이자도 벌써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부분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영국의 예금은행은 유통 신용만 중개하므로 예금 이자가 아주 적다. 그래서 예금이 주식 매입을 통해 끊임없이 산업 투자 영역으로 흘러 나간다. 여기서는 산업은행과 예금은행이 결합된 곳에서 은행이 하는 일을 대중이 직접 한다. 창업자 이득은 어느 경우에도 대중에게 돌아가지 않으므로 대중에게 결과는 같다. 그러나 산업에는 독일에 비해 영국에서 은행자본에 대한 종속이 덜하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은행에 대한 산업의 종속은 소유 관계의 결과다. 산업 자본 가운데 점점 더 큰 부분이 그것을 사용하는 산업가의 것이 아니다. 산업가는 그들에 대해 소유자를 대표하는 은행을 통해서만 자본의 처분권을 얻는다. 다른 한편 은행은 점점 더 큰 부분의 자본을 산업에 고정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은행은 점점 더 큰 규모로 산업자본가가 된다. 나는 이렇게 하여 실제로는 산업자본으로 전화된 은행자본, 곧 화폐 형태의 자본을 금융자본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소유자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화폐 형태를 유지하며, 소유자들이 화폐자본, 곧 이자 낳는 자본의 형태로 투자한 것이고, 소유자들은 언제든지 그것을 화폐 형태로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렇게 은행에 투자된 자본의 대부분이 산업자본, 생산자본(생산수단과 노동력)으로 전화되어 생산 과정에 고정되어 있다. 산업에서 쓰이는 자본 가운데 점점 더 큰 부분이 금융자본, 곧 은행이 처분하고 산업가가 사용하는 자본이다.

금융자본은 주식회사의 발전과 함께 발전하며 산업의 독점화와 함께 정점에 이른다. 산업 수익이 안전하고 안정된 성격을 띠게 되면서, 은행자본을 산업에 투자할 가능성은 점점 더 넓어진다. 그런데 은행자본의 처분권은 은행이 갖고, 은행에 대한 지배권은 은행 주식의 과반을 가진 자들이 갖는다. 소유의 집중이 커질수록, 은행을 지배하는 힘을 주는 가공자본의 소유자와 산업을 지배하는 힘을 주는 가공자본의 소유자가 점점 더 같은 사람들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대은행이 가공자본에 대한 처분권까지 점점 더 얻게 되므로 더욱 그렇다.

우리는 산업이 점점 더 은행자본에 종속되는 것을 보았지만, 그것이 산업계의 거물이 금융계의 거물에 종속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본 자체가 최고 단계에서 금융자본이 되듯이, 자본 거물인 금융자본가는 은행자본을 지배하는 형태로 국민 자본 전체에 대한 처분권을 점점 더 한 손에 모은다. 여기서도 인적 결합[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카르텔화와 트러스트화와 함께 금융자본은 최고의 권력 단계에 이르고, 상업자본은 가장 깊은 굴욕을 겪는다. 자본주의의 한 순환이 완결되었다. 자본주의 발전의 초기에 화폐자본은 고리대 자본과 상업자본으로서 자본의 축적에서도, 수공업적 생산이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바뀌는 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생산적」 자본가, 곧 이윤을 얻는 자본가, 다시 말해 상인과 산업가가 이자 자본가에 맞서 저항하기 시작한다.[3]

고리대 자본은 산업자본에 종속된다. 화폐거래 자본으로서 그것은, 그렇지 않았다면 산업가와 상인이 자기 상품의 형태 변화 과정에서 스스로 수행해야 했을 화폐 기능을 수행한다. 은행자본으로서 그것은 생산자들 사이의 신용 업무를 중개한다. 자본의 동원과 신용의 끊임없는 확대는 화폐자본가의 위치를 차츰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은행의 권력이 커지고, 은행은 산업의 창업자가 되고 마침내 지배자가 되어, 산업의 이윤을 금융자본으로서 빼앗는다. 옛날의 고리대금업자가 그의 「이자」로 농민의 노동 수확과 영주의 지대를 빼앗았던 것과 똑같이. 헤겔주의자라면 부정의 부정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은행자본은 고리대 자본의 부정이었고, 그 자신은 금융자본에 의해 부정된다. 금융자본은 고리대 자본과 은행자본의 종합이며, 경제 발전의 한없이 높은 단계에서 사회적 생산의 열매를 차지한다.

그러나 상업자본의 발전은 전혀 다르다. 산업의 발전은 상업자본을 매뉴팩처 시기에 차지했던 생산에 대한 지배적 지위에서 차츰 밀어낸다. 그런데 이 후퇴는 결정적으로 굳어지며, 금융자본의 발전은 상업을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축소시키고, 한때 그토록 당당하던 상인을 금융자본이 독점한 산업의 대리인으로 바꾸어 놓는다.

  1. 미국의 설탕 트러스트는 1887년 해브마이어가 자본금을 모두 합해 650만 달러로 신고한 작은 회사 15개를 합병하여 설립했다. 트러스트의 주식 자본금은 5천만 달러로 정해졌다. 트러스트는 곧바로 정제당 가격을 올리고 원당 가격을 끌어내렸다. 1888년에 시작된 조사에서 트러스트는 정제당 1톤당 약 14달러를 벌었고, 이 덕분에 주식 자본금 전액에 대해 10퍼센트, 곧 회사 설립 때 실제로 납입된 금액에 대해서는 약 70퍼센트의 배당을 지급할 수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 밖에도 트러스트는 때때로 특별 배당을 지급하고 막대한 준비금을 쌓을 수 있었다. 오늘날 트러스트의 주식 자본금은 9천만 달러다. 절반은 7퍼센트 누적 배당권이 있는 우선주이고, 나머지 절반은 보통주로 현재 역시 7퍼센트를 낸다. (『베를리너 타게블라트』 1909년 7월 1일 자) 트러스트와 산업 결합에 관한 산업위원회 보고서에도 수많은 예가 있다. ↩
  2.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자본화된 이윤과 같은 「자본의 가격」이다. ↩
  3. Personalunion. 같은 사람이 은행과 산업 기업의 이사회·감사회 자리를 함께 차지해 두 기업을 잇는 것을 말한다. ↩
  4. 실제로 “고리대는 자본 축적의 주요 수단, 곧 토지 소유의 수입에 자본이 참여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그러나 산업자본과 상업자본은 이 낡은 형태의 자본에 맞서 많든 적든 토지 소유자와 손을 잡고 나아간다.” 마르크스, 『잉여가치 학설사』 제1권, 19쪽. ↩

관련 인물

출처

  1.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2.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4.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5. ru.wikisource.org
  6. ru.wikisource.org
  7.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8.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9. de.wikipedia.org
  10.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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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위키백과 (한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