государственно-монополистический капитализм; Staatsmonopolistischer Kapitalismus (Stamokap); capitalisme monopoliste d'État · 1917–현재 (레닌이 1917년 처음 썼고, 1946년 바르가의 전후 자본주의 분석과 1960년 모스크바 공산당·노동자당 회의를 거쳐 소련·동독의 공식 이론이 되었으며, 1966년 이후 프랑스 공산당의 보카라 등이 발전시켰다.)

국가독점자본주의

State monopoly capitalism

독점자본이 국가기구와 결합해, 국가가 독점 대기업의 이윤과 축적을 떠받치는 장치로 움직인다고 보는 자본주의 단계론. 레닌이 1차 세계대전 중 전시 경제를 두고 독점자본주의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바뀌었다고 쓴 데서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뒤 소련의 바르가와 동독 학자들, 1960년 모스크바 공산당·노동자당 회의, 프랑스 공산당의 폴 보카라 등이 공식 이론으로 다듬었고, 노동자와 중간층·중소기업이 독점에 맞서는 반독점 동맹 전략의 근거가 되었다. 독일어 약칭은 Stamokap이다.

상세

국가와 독점자본이 「결합」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자유주의 경제학의 교과서에서 국가는 시장 바깥에서 규칙을 정하는 심판이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20세기 자본주의에서 이 그림이 맞지 않는다고 본다. 각 산업을 몇몇 거대 기업이 쥔 독점 단계에 이르면, 국가는 군수 주문과 공공사업으로 거대한 국가 시장을 만들고, 보조금과 세제로 대기업의 설비 투자를 함께 대며, 공기업과 국가 재정으로 대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떠안는다. 독점과 국가가 서로 떼어 내기 어려울 만큼 얽혀 하나의 「전체 메커니즘」이 된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 주장이다.

설명을 위해 가정한 숫자로 보자. 민간 철강 독점체가 쓰는 전기를 국영 전력회사가 공급한다. 경제 전체의 평균 이윤율이 10%라면 민간 전력회사는 원가 100억 원어치 전기를 110억 원에 팔려 할 것이다. 그런데 국영 전력회사가 원가 그대로 100억 원에, 혹은 적자를 보면서 90억 원에 판다면, 그 차이 10억~20억 원은 철강 독점체의 이윤으로 옮겨 간다. 프랑스의 폴 보카라는 이렇게 공공 자금이 정상 이윤을 요구하지 않고 낮은 이윤이나 0, 심지어 손실을 감수하며 투입되어 민간 독점자본의 수익성을 떠받치는 것을 「자본의 구조적 가치 절하」라 부르고,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핵심 기제로 보았다.

레닌은 1917년에 무엇이라고 썼나?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레닌이다. 그는 1917년 『사회민주당의 농업 강령』 후기에서 1차 세계대전이 「독점자본주의를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바꾸었다」고 썼고, 같은 해 9월 『임박한 파국과 그 대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국주의 전쟁은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다. 이는 전쟁의 참화가 프롤레타리아 봉기를 낳기 때문만이 아니다(사회주의가 경제적으로 무르익지 않았다면 어떤 봉기도 사회주의를 만들지 못한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사회주의의 가장 완전한 물질적 준비이며 사회주의의 문턱이고, 그것과 사회주의라 불리는 계단 사이에 아무런 중간 계단도 없는 역사의 계단이기 때문이다.” (레닌, 『임박한 파국과 그 대책』)
«Империалистская война есть канун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ой революции. И это не только потому, что война своими ужасами порождает пролетарское восстание, — никакое восстание не создаст социализма, если он не созрел экономически, — а потому, чт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монополистический капитализм есть полнейшая материальная подготовка социализма, есть преддверие его, есть та ступенька исторической лестницы, между которой (ступенькой) и ступенькой, называемой социализмом, никаких промежуточных ступеней нет.»

레닌은 같은 해 『국가와 혁명』에서 이것이 자본주의를 넘어선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한 모습이라고 강조하며, 독일 제국의 국가 개입을 「국가사회주의」라 부르던 자유주의자·사회민주주의자들을 반박했다. 전쟁이 만들어 낸 거대한 국가 관리 기구가 누구의 손에 있는가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같은 시기 레닌의 국가자본주의 개념과의 차이는 국가자본주의 항목 참고). 부하린은 『제국주의와 세계경제』에서 이를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로 그렸다. 국가와 민간의 독점 기업이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라는 틀 안에서 하나로 합쳐지고, 국가의 이익과 금융자본의 이익이 점점 더 일치하며, 중앙은행이 그 트러스트 전체의 「황금 머리」가 된다는 것이다.

소련 공식 이론으로는 어떻게 자리 잡았나?

스탈린 시기에는 이 말이 거의 쓰이지 않았다. 1946년 예브게니 바르가가 『2차 세계대전 결과 자본주의 경제의 변화』에서 국가의 경제 개입이라는 새 수법을 분석하자, 정통파 경제학자들은 국가 계획은 사회주의에만 있고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의 무정부성이 지배한다」는 교리와 어긋난다며 공격했다. 스탈린은 1952년 『소련 사회주의의 경제적 문제』에서 레닌의 개념을 일부 수정했다.

스탈린이 죽은 뒤 사정이 바뀌었다. 바르가는 1957년 『제국주의 경제와 정치의 기본 문제』 개정판을 냈고, 1960년 모스크바에 모인 81개 공산당·노동자당의 회의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채택했다. 동베를린의 사회과학연구소는 『오늘의 제국주의』(1965)와 『서독의 제국주의』(1971)를 펴냈다. 이 시기에 굳어진 핵심 명제는 다음과 같다. 독점의 힘과 국가의 힘이 하나의 전체 메커니즘으로 융합해 사회 전체를 독점의 이익에 따라 지배한다. 국가는 정부 주문과 잉여 매입 같은 거대한 국가 시장을 만들어 대기업을 공황에서 보호하고, 그 결과 경제의 군사화가 국가독점자본주의와 떼어 낼 수 없게 된다. 국가가 자본을 동원하고 경제의 가장 큰 자금줄이 된다.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극단적 형태로 해석되었다.

정치적 결론은 반독점 동맹이었다. 독점이 국가를 쥐고 있으므로 노동계급은 공산당의 지도 아래 진보적 중간층·중소기업과 손잡고 국가와 대자본(줄여서 「독점」)에 맞서야 하며, 부르주아 국가의 틀 안에서 먼저 「반독점 민주주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 사회주의로 가는 경유지라는 것이다. 이 전략은 서독 사회민주당의 청년 조직(유조스)의 1970년대 논쟁, 칠레 아옌데의 인민연합 정부(1970~1973)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의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에서도 남한을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보는 견해가 반제·반독점 노선의 근거가 되었다.

프랑스 공산당과 보카라는 무엇을 보탰나?

프랑스에서는 폴 보카라가 1966년 처음 이 이론을 세웠다. 프랑스 공산당은 1966년 5월 슈아지르루아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에 관한 국제회의를 열었고, 집단 저작 『국가독점자본주의: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 개론』(1971, 전 2권)을 펴냈다. 보카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단계를 공공 금융·생산·소비 부문의 비중이 커진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보고, 앞에서 본 「구조적 가치 절하」로 이윤율 저하, 더 정확히는 과잉축적을 상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체제가 사반세기의 팽창 끝에 다시 지속적 과잉축적에 부딪혀, 1960년대 말부터 실업 증가, 금융적 축적, 민영화와 세계화된 자유주의로 드러나는 새 체제 위기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유로코뮤니즘 시기에는 국가기구를 대중운동으로 개혁할 수 있다고 보면서 이론이 크게 수정되거나 버려졌다.

어떤 비판을 받았나?

마르크스주의 안에서도 비판이 많았다. 에르네스트 만델과 레오 코플러는 이 이론이 국가가 자본 사이의 경쟁과 가치법칙을 마음대로 누를 수 있는 것처럼 그린다고 비판했다. 독일어권 비판자들은 시장에 영향력을 가진 대기업이 가치법칙을 변형시킬 수는 있어도 없애지는 못한다고 했다. 국가를 독점이 쥐고 흔드는 도구로만 보아 국가의 계급적 기반과 상대적 자율성을 설명하지 못하고, 실제로는 없는 한 덩어리의 지배 구조를 가정한다는 비판, 대기업 스스로 국가 축소를 외친 신자유주의의 등장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반독점 동맹을 인민전선식 기회주의라고 거부했고, 서독의 사회자유주의 역사가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빙클러 등은 국가가 상대적으로 독립된 요소로 남는 「조직된 자본주의」 개념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프랑스에서는 알튀세르가 이 개념을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영점」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레닌이 1921년 신경제정책기에 쓴 과도기적 「국가자본주의」, 그리고 소련 체제를 자본주의로 보는 국가자본주의론과 이름이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이다. 앞의 것은 자본가의 국가가 독점자본을 위해 경제를 통제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관련 인물

출처

  1. ru.wikisource.org
  2.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4. 위키백과 (영문)
  5. de.wikipedia.org
  6. fr.wikipedia.org
  7. 위키백과 (러시아어)
  8. fr.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