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낳는 자본과 가공자본
Interest-bearing capital and fictitious capital
마르크스가 『자본』 제3권 제5편에서 분석한 신용과 금융의 두 범주. 이자 낳는 자본은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자본이다. 돈은 자본으로 쓰이면 평균이윤을 낳을 수 있다는 추가적 사용가치를 얻어 그 자체가 상품처럼 대부되고, 이자는 산업자본가가 실제로 짜낸 이윤 가운데 돈 주인에게 넘기는 몫이다. 가공자본은 국채·주식처럼 정기적 수입에 대한 청구권을 그 수입을 이자율로 나눈 값, 곧 「자본화」한 값으로 사고파는 것이다. 국채는 이미 지출되어 사라진 돈에 대한 권리이고 주식은 실제 기업 자본과 따로 거래되므로, 이 증서의 가격은 실제 자본의 가치와 따로 움직이며 투기와 공황 때 부풀었다 꺼진다.
상세
돈은 어떻게 그 자체로 상품이 되나?
자본주의에서 일정한 돈은 공장과 노동력을 사는 데 쓰이면 평균이윤을 낳는다. 마르크스는 평균이윤율이 20%라고 가정한다(마르크스가 든 설명용 숫자다). 그러면 100파운드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자본으로 써서 120파운드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손에 쥔 셈이다. 그래서 돈은 화폐로서의 사용가치 말고도 “자본으로 기능한다는 추가적 사용가치”를 얻는다. 돈 주인이 이 힘을 직접 쓰지 않고 남에게 일정 기간 빌려주면, 돈은 특수한 상품으로 팔리는 것이 된다. 다만 파는 것이 아니라 빌려주는 것이고, 정해진 기간 뒤 원금이 이자와 함께 돌아온다.
einen zusätzlichen Gebrauchswert, nämlich den, als Kapital zu fungieren.
이자는 어디서 나오나?
빌린 100파운드로 생산을 조직한 산업자본가가 20파운드의 이윤을 얻었다고 하자. 그는 그 가운데 예컨대 5파운드를 돈 주인에게 넘긴다. “그가 그에게 지불하는 이윤의 일부를 이자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윤의 일부에 붙인 특별한 이름, 특별한 항목에 지나지 않는다.” 이자는 따로 생겨나는 소득이 아니라 생산에서 짜낸 잉여가치에서 떼어 낸 몫이다. 남은 15파운드는 기업가 수익이 된다.
Der Teil des Profits, den er ihm zahlt, heißt Zins, was also nichts ist als ein besondrer Name, eine besondre Rubrik für einen Teil des Profits
마르크스는 이 운동을 G - G - W - G´- G´으로 적는다. 돈(G)이 대부자에게서 차입자에게 넘어가고, 차입자는 그 돈으로 상품(W), 곧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사서 더 많은 돈(G´)을 얻고, 그 일부가 이자로 대부자에게 돌아간다. 이자율에는 이윤율처럼 자연스러운 기준이 없다. 이윤을 둘로 나누는 비율은 돈을 빌려주려는 쪽과 빌리려는 쪽의 경쟁, 곧 화폐 시장에서 정해진다.
왜 이자 낳는 자본이 가장 물신적인가?
대부자의 눈으로 보면 돈은 공장도 노동자도 거치지 않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불어나 돌아온다. 공식은 G - G´로 줄어든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자본의 관계가 가장 바깥으로 드러나고 가장 물신적인 형태를 얻는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자 낳는 자본에서는 이 자동적 물신, 곧 스스로 증식하는 가치, 돈을 낳는 돈이 순수하게 드러난다.” 나무가 배를 맺듯 돈이 이자를 맺는 것처럼 보이고, 이자가 노동자의 잉여노동에서 나온다는 흔적은 지워진다.
Im zinstragenden Kapital ist daher dieser automatische Fetisch rein herausgearbeitet, der sich selbst verwertende Wert, Geld heckendes Geld
가공자본은 무엇인가?
이자 낳는 자본이 일반화되면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을 「어떤 자본이 낳은 이자」로 보고, 그 자본의 크기를 계산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로 “가공자본의 형성을 자본화라고 한다.” 그의 예에서 해마다 100파운드의 수입이 있고 이자율이 5%라면, 100파운드는 2000파운드에 대한 연간 이자로 여겨지고, 이 수입에 대한 권리증서는 2000파운드의 자본가치를 갖는 것으로 거래된다. 계산은 단순하다. 수입 ÷ 이자율 = 가격이다(100 ÷ 0.05 = 2000).
Die Bildung des fiktiven Kapitals nennt man kapitalisieren.
주식도 같다. 액면 100파운드의 주식을 낸 기업이 5%가 아니라 10%를 배당하면, 이자율이 5%로 그대로인 동안 그 주식의 시장가치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 200파운드로 오른다. 기업에 실제로 들어간 돈은 100파운드 그대로인데 증서의 가격만 두 배가 된다. 반대로 배당이 줄거나 이자율이 오르면 실제 자본이 그대로여도 증서 가격은 떨어진다. 오늘날 금융학에서 자산 가격을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로 계산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국채와 주식은 왜 「가공」인가?
국채를 산 사람은 국가가 해마다 세금에서 지불하는 이자를 받는다. 그러나 그가 빌려준 원금은 이미 전쟁이나 다른 지출에 쓰여 사라졌다. 국채가 아무리 여러 번 손을 바꿔도 “국채의 자본은 순전히 가공적인 것으로 남는다.” 주식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주식 뒤에는 철도나 광산에 실제로 투하된 자본이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렇게 짚는다. “그러나 이 자본은 두 번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은 소유 증서, 곧 주식의 자본가치로, 또 한 번은 그 기업에 실제로 투하되었거나 투하될 자본으로.” 자본은 공장 속에만 있고, 주식은 그것이 낳을 잉여가치의 일부에 대한 권리증서다.
Aber dies Kapital existiert nicht doppelt, einmal als Kapitalwert der Eigentumstitel, der Aktien, und das andre Mal als das in jenen Unternehmungen wirklich angelegte oder
그래서 증서의 가격은 실제 자본의 가치와 따로 움직인다. 마르크스는 1847년 공황 때 영국의 국채와 운하·철도 주식이 1억 1475만 파운드 넘게 떨어진 일을 들면서, 그것이 생산의 실제 정지를 뜻하지 않는 한 나라는 “명목적 화폐자본의 비눗방울”이 터졌다고 한 푼도 가난해지지 않았다고 썼다. “이 모든 증권은 실제로는 미래의 생산에 대한 축적된 청구권, 법적 권리증서일 뿐이다.”
Alle diese Papiere stellen in der Tat nichts vor als akkumulierte Ansprüche, Rechtstitel, auf künftige Produktion
뒤의 연구는 이 개념을 어떻게 썼나?
신용과 은행, 주식회사가 자본주의를 어떻게 바꾸는지는 루돌프 힐퍼딩의 『금융자본』(1910)이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1970년대 이후 금융 부문이 커지자 가공자본 개념은 금융화와 거품, 금융 공황을 설명하는 도구로 다시 주목받았다. 프랑수아 셰네는 역사적·현대적 실증 연구를 검토하며 공황론의 가공자본 측면을 탐구했고, 세드릭 뒤랑은 2017년 『가공자본: 금융은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전유하는가』에서 정부의 개입이 가공자본을 실물 생산 잠재력과 맞지 않는 크기로 키워 2008년 대침체 같은 공황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한편 『자본』 제3권 제5편은 마르크스의 원고 가운데 가장 미완성인 부분이어서, 엥겔스가 많이 손본 대목이 많다는 점도 읽을 때 염두에 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