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ktionspreis; Ausgleichung der allgemeinen Profitrate (Marx, Das Kapital, Bd. III, 2. Abschnitt) · 1894 (마르크스가 1860년대 원고에서 전개했고, 엥겔스가 1894년 『자본』 제3권 제2편으로 펴냈다.)

생산가격

Price of production

마르크스가 『자본』 제3권 제2편에서 쓴 개념으로, 상품을 만드는 데 든 비용가격(소모된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에 사회 전체의 평균이윤율에 따른 이윤을 더한 가격이다. 부문마다 자본 구성이 달라 처음에는 이윤율이 제각각이지만, 자본이 이윤율 낮은 부문을 떠나 높은 부문으로 몰리면서 이윤율은 하나의 일반적 이윤율로 균등해지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 상품은 가치가 아니라 생산가격을 중심으로 거래된다. 마르크스는 개별 상품의 생산가격은 가치에서 벗어나지만 사회 전체로는 생산가격 총계가 가치 총계와, 이윤 총계가 잉여가치 총계와 같다고 보았고, 이 연결을 둘러싸고 전형 문제 논쟁이 이어졌다.

상세

왜 『자본』 제1권의 가치와 실제 가격이 어긋나 보이나?

『자본』 제1권에서 상품의 가치는 생산에 소모된 생산수단의 가치(불변자본 c), 노동력에 지불된 가치(가변자본 v), 노동자가 그 위에 더 만들어 낸 잉여가치(m)의 합이다. 새 가치를 만드는 것은 산 노동뿐이므로, 잉여가치율이 같다면 노동자를 많이 쓰는 부문일수록, 곧 가변자본의 비중이 큰 부문일수록 투하한 자본 100당 잉여가치가 많다. 그렇다면 기계와 원료에 큰돈을 들이는 제철소보다 손노동이 많은 봉제 공장이 훨씬 높은 이윤율을 누려야 한다.

현실의 자본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에 투자하든 투자한 금액에 비례해 비슷한 이윤을 기대하고, 실제로 이윤율이 크게 다르면 돈이 한쪽으로 몰린다. 고전파 경제학자 리카도도 상품의 상대가격이 들어간 노동량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마르크스는 이 어긋남을 숨기지 않고 제3권 제2편 「이윤의 평균이윤으로의 전화」에서 정면으로 다루었다.

마르크스는 어떤 숫자로 설명했나?

마르크스는 제9장에서 다섯 생산 부문을 가정한다. 각 부문에 자본 100을 투하했고 잉여가치율은 모두 100%로 같다고 놓는다(숫자는 마르크스가 든 설명용 가정이다). 자본 구성은 I 80c+20v, II 70c+30v, III 60c+40v, IV 85c+15v, V 95c+5v다. 잉여가치는 가변자본과 같으므로 각각 20, 30, 40, 15, 5이고, 이윤율도 20%, 30%, 40%, 15%, 5%로 제각각이다.

다섯 자본을 하나로 합치면 500 = 390c+110v이고 잉여가치 합계는 110이다. 자본 100마다 평균 22의 잉여가치가 돌아가는 셈이니 평균이윤율은 22%다. 마르크스는 이 22%를 각 부문의 비용가격에 더한 가격을 생산가격이라 불렀다. 그의 표에서는 불변자본의 일부만 한 번에 마모되어 넘어간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비용가격이 70, 81, 91, 55, 15이고, 생산가격은 92, 103, 113, 77, 37이 된다. 가치와 견주면 I은 2, IV는 7, V는 17만큼 비싸게, II는 8, III은 18만큼 싸게 팔린다. 비싸게 팔린 몫 26과 싸게 팔린 몫 26이 서로 상쇄된다.

“상품의 생산가격은 그 비용가격에 일반적 이윤율에 따라 백분율로 덧붙여진 이윤을 더한 것, 곧 비용가격에 평균이윤을 더한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각 자본가가 얻는 이윤은 자기 공장에서 짜낸 잉여가치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잉여가치 가운데 자기 자본 크기에 비례한 몫이다. 마르크스의 말로는 “이윤에 관한 한 여러 자본가는 여기서 한 주식회사의 단순한 주주처럼 행동한다. 그 회사에서 이윤 몫은 100마다 똑같이 분배된다.”

Der Produktionspreis der Ware ist also gleich ihrem Kostpreis plus dem, entsprechend der allgemeinen Profitrate, prozentig ihm zugesetzten Profit oder gleich ihrem Kostpreis plus dem Durchschnittsprofit.

이윤율은 어떻게 같아지나?

같아지게 만드는 것은 누구의 계획이 아니라 경쟁이다. 제10장에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쓴다. “그러나 자본은 이윤율이 낮은 부문에서 빠져나와 더 높은 이윤을 내는 다른 부문으로 몰려간다.” 이윤율 높은 부문에 자본이 몰리면 공급이 늘어 가격이 떨어지고, 자본이 빠져나간 부문에서는 공급이 줄어 가격이 오른다. 이 끊임없는 들고 남을 통해 시장가격은 생산가격을 중심으로 오르내리고, 이윤율은 평균으로 끌려간다.

Das Kapital entzieht sich aber einer Sphäre mit niedriger Profitrate und wirft sich auf die andre, die höheren Profit abwirft.

이 균등화는 언제나 경향일 뿐이다. 한 부문 안에서도 평균보다 좋은 조건에서 생산하는 자본은 평균보다 낮은 비용으로 같은 생산가격을 받아 초과이윤을 얻는다. 이 초과이윤이 땅이나 폭포 같은 독점할 수 있는 자연 조건에 묶이면 지주에게 지대로 넘어간다. 마르크스의 지대론은 생산가격론 위에 서 있다.

무엇이 보존되고 무엇이 가려지나?

마르크스는 개별 가격이 가치에서 벗어나도 사회 전체로는 둘이 일치한다고 보았다. “사회 전체에서, 곧 모든 생산 부문을 통틀어 보면 생산된 상품의 생산가격 총계는 그 가치 총계와 같다.” 이윤 총계도 잉여가치 총계와 같다. 경쟁은 이미 생산된 잉여가치를 나눌 뿐 늘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die Summe der Produktionspreise der produzierten Waren gleich der Summe ihrer Werte.

그 대신 이윤의 원천은 한 겹 더 가려진다. 이윤이 투하한 총자본에 비례해 돌아오니 이윤은 기계와 원료를 포함한 자본 전체가 낳는 것처럼 보이고, 산 노동이 유일한 원천이라는 사실은 겉에서 보이지 않는다. 한편 마르크스는 자신의 계산이 비용가격의 요소인 생산수단을 여전히 가치로 셈했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이 점을 더 다루지 않았다. 뒤에 이 부분이 전형 문제라는 긴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뒤의 연구는 생산가격론을 어떻게 다루었나?

엥겔스는 가치법칙과 생산가격을 역사적 단계의 차이로 읽는 해석을 내비쳤다. 가치대로의 교환은 자본주의 이전의 상품 교환에서, 생산가격은 자본주의에서 지배한다는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는 생산가격을 연립방정식으로 계산하는 방법이 보르트키에비치와 스라파를 거쳐 표준이 되었고, 마르크스의 계산과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전형 문제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안와르 샤이크는 생산가격을 시장을 지배하는 「조절 가격」으로 구체화했다. 한 산업에서 재생산 가능한 가장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는 「조절 자본」의 비용가격에 이윤을 더한 가격이 다른 기업의 가격이 끌려가는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윤율 균등화가 정지한 균형이 아니라 끊임없이 넘치고 모자라는 「요동치는 균등화」이며, 균등해지는 것은 기존 자본 전체의 평균 이윤율이 아니라 새 투자의 수익률이라고 주장하고, 미국 제조업과 OECD 나라들의 자료로 이를 보이려 했다. 반면 파르중과 마호버는 『혼돈의 법칙』에서 이윤율이 하나의 값으로 모이지 않고 확률분포를 이룬다고 보아 일반적 이윤율이라는 가정 자체를 버렸다.

관련 인물

출처

  1. web.archiv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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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4.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5.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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