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al political economy (klassische politische Ökonomie) · 1776–1870

고전파 정치경제학

Classical Political Economy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데이비드 리카도를 거쳐 존 스튜어트 밀에 이르기까지 주로 영국에서 발전한 경제학. 부의 원천을 노동에서 찾고, 생산물이 지주·자본가·노동자에게 지대·이윤·임금으로 나뉘는 법칙을 탐구했다. ‘고전파’라는 이름은 마르크스가 붙인 것으로, 그는 부르주아 생산관계의 내적 연관을 파고든 이 경제학을 겉모습만 다루는 ‘속류경제학’과 구분했고, 레닌은 이를 마르크스주의의 세 원천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상세

누가 ‘고전파’라는 이름을 붙였나?

스미스와 리카도를 ‘고전파’로 묶은 사람은 그들의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 마르크스였다. 그는 『자본론』 제1권 제1장의 한 주석에서 이렇게 못 박았다. “분명히 말해 두자면, 나는 W. 페티 이래로 부르주아 생산관계의 내적 연관을 연구하는 모든 경제학을 고전파 정치경제학이라 부른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연관 안에서만 맴도는 속류경제학과 대립한다.” 속류경제학이란 과학적 경제학이 이미 내놓은 재료를 되씹으며 부르주아 생산 당사자들의 진부하고 자기만족적인 생각을 영원한 진리처럼 체계화하는 것을 말한다.

verstehe ich unter klassischer politischer Ökonomie alle Ökonomie seit W. Petty, die den innern Zusammenhang der bürgerlichen Produktionsverhältnisse erforscht im Gegensatz zur Vulgärökonomie

그러니 고전파라는 말에는 칭찬이 담겨 있다. 레닌은 1913년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 부분」에서 마르크스 이전의 고전파 정치경제학이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 나라 영국에서 형성되었다”고 쓰고, 독일 철학과 프랑스 사회주의와 함께 이를 마르크스 학설의 원천으로 꼽았다. 이 계보도에서 영국 정치경제학 칸이 따로 서 있는 까닭이다.

애덤 스미스는 무엇을 말했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은 보통 고전파 경제학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이 책의 근본 메시지는 한 나라의 부가 군주의 금고에 쌓인 금이 아니라 그 나라의 해마다의 소득, 곧 국민의 노동이 만들어 내는 생산물로 정해진다는 것이었다. 금은을 쌓는 것을 부로 여기던 중상주의와 맞선 생각이다.

스미스는 노동의 생산력을 높이는 열쇠로 분업을 들었다. 그는 핀 공장을 예로 들어, 핀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약 18개의 서로 다른 공정으로 나뉘어” 있어서 열 명이 하루에 엄청난 수의 핀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서로 필요한 것을 얻는 방식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하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이나 빵집 주인의 자애가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서다.” 그리고 각자 자기 이득만 꾀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기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목적을 증진하게 된다”는 그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that we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interest.

스미스는 시장의 자율을 믿었지만 독점의 위험을 거듭 경고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비용은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져야 한다고 보았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자유무역을 옹호해 보호무역을 앞세운 중상주의자들과 갈렸다.

리카도는 무엇을 더했나?

데이비드 리카도는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1817) 머리말에서 문제를 이렇게 세웠다. 땅의 생산물은 지주, 경작에 필요한 자본의 소유자, 그리고 노동자라는 “사회의 세 계급”에게 지대, 이윤, 임금이라는 이름으로 나뉜다. “이 분배를 규제하는 법칙을 정하는 것이 정치경제학의 주요 문제다.”

To determine the laws which regulate this distribution, is the principal problem in Political Economy

마르크스는 리카도를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마지막 위대한 대표자”라고 불렀다. 리카도는 임금과 이윤, 이윤과 지대 사이의 계급 이해 대립을 의식적으로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다만 그 대립을 “사회적 자연법칙으로 소박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리카도는 또 사회가 발전할수록 식량을 얻는 데 더 많은 노동이 들어 “이윤의 자연스러운 경향은 떨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리카도의 이 생각은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과 비교되곤 한다.

Ihr letzter großer Repräsentant, Ricardo, macht endlich bewußt den Gegensatz der Klasseninteressen, des Arbeitslohns und des Profits, des Profits und der Grundrente, zum Springpunkt seiner Forschungen

장바티스트 세,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존 스튜어트 밀도 고전파의 주요 인물로 꼽힌다. 리카도와 제임스 밀이 스미스의 이론을 체계화한 뒤 그들의 생각은 1815~1848년 무렵 경제학의 정설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왜 고전파가 1830년에 끝났다고 했나?

마르크스는 고전파 정치경제학이 과학으로 남을 수 있었던 조건을 계급투쟁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데서 찾았다. 리카도가 살아 있을 때 이미 시스몽디가 그를 비판했고, 1820년대는 리카도 이론이 대중화되는 동시에 그에 맞선 논쟁이 활발한 시기였다. 그러다 “1830년에 단번에 결정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부르주아지가 정치권력을 잡자 계급투쟁은 실천에서도 이론에서도 위협적인 형태를 띠었고, 그것이 “과학적 부르주아 경제학의 조종을 울렸다.” 이제 문제는 어떤 정리가 참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자본에 쓸모 있느냐 해로우냐가 되었고, “사심 없는 연구의 자리에 고용된 검객의 칼싸움이 들어섰다.”

Er läutete die Totenglocke der wissenschaftlichen bürgerlichen Ökonomie.

경제학사 일반에서는 고전파의 끝을 더 늦게 잡는다. 1870년대 제번스, 멩거, 발라의 ‘한계혁명’으로 효용에서 가치를 찾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정설이 되면서, 리카도의 횃불은 주로 마르크스 경제학이 이어받았다.

마르크스는 고전파에게서 무엇을 이어받고 무엇을 비판했나?

마르크스의 대표작 『자본론』의 부제는 ‘정치경제학 비판’이다. 그는 고전파의 성과를 인정했다. 정치경제학은 “불완전하게나마 가치와 가치량을 분석했고 이 형태들 속에 숨은 내용을 발견했다.” 그가 보기에 리카도의 가치량 분석은 불충분하지만 “그래도 가장 뛰어난 것”이었다. 노동가치론과 잉여가치론은 바로 이 유산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고전파는 한 가지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 왜 노동이 하필 가치라는 형태로, 노동의 길이가 가치량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느냐는 물음이다. 스미스와 리카도 같은 “가장 뛰어난 대표자들조차 가치형태를 아무래도 좋은 것”으로 다루었는데, 마르크스는 그 까닭이 그들이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을 사회적 생산의 영원한 자연 형태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생산양식을 역사적으로 지나가는 한 단계로 보느냐가 고전파와 마르크스를 가르는 선이다.

Grade in ihren besten Repräsentanten, wie A. Smith und Ricardo, behandelt sie die Wertform als etwas ganz Gleichgültiges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de.wikipedia.org
  3. web.archiv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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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gutenberg.org
  6. gutenberg.org
  7. ru.wikisourc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