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bour theory of value (Arbeitswerttheorie) · 1776–현재

노동가치론

Labour Theory of Value

상품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의 양으로 정해진다는 이론.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가 상품의 장기적인 ‘자연가격’을 설명하려고 세웠고, 마르크스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과 추상노동의 개념으로 다듬어 잉여가치론의 바탕으로 삼았다. 1870년대 한계혁명 이후 주류 경제학에서는 효용 가치론에 밀려났지만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토대로 남아 있다.

상세

노동가치론은 무엇을 설명하려는 이론인가?

시장에서 외투 한 벌은 빵 몇 개와, 쌀 몇 킬로그램과 바뀐다. 이 비율은 무엇이 정하는가? 쓸모, 곧 사용가치가 정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리카도가 스미스를 인용하며 지적했듯이 물과 공기는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쓸모가 있지만 보통은 그것과 바꾸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금은 물이나 공기에 비하면 쓸모가 적은데도 많은 물건과 바뀐다. 쓸모는 교환가치의 조건이지만 척도는 아니다.

Water and air are abundantly useful; they are indeed indispensable to existence, yet, under ordinary circumstances, nothing can be obtained in exchange for them.

노동가치론은 이 비율 뒤에 그 물건들을 만드는 데 든 노동이 있다고 답한다. 물건의 값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오르내리더라도, 그 오르내림이 맴도는 중심은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양이라는 것이다. 이 생각은 17세기의 윌리엄 페티와 존 로크에게서 싹텄고, 고전파 정치경제학에서 체계를 갖추었으며, 마르크스에게서 자본주의 비판의 바탕이 되었다.

스미스와 리카도는 어떻게 말했나?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1776)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물건의 실질 가격, 곧 그것을 얻으려는 사람에게 그것이 실제로 치르게 하는 비용은 그것을 얻는 데 드는 수고와 노고다.” 그는 자본이 쌓이고 토지가 사유되기 이전의 “초기의 미개한 사회 상태”를 예로 들었다. 사냥꾼들 사이에서 비버 한 마리를 잡는 데 사슴 한 마리보다 두 배의 노동이 든다면, 비버 한 마리는 자연히 사슴 두 마리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The real price of every thing, what every thing really costs to the man who wants to acquire it, is the toil and trouble of acquiring it.

그런데 스미스는 자본과 지대가 생긴 뒤의 사회에서는 가격이 임금·이윤·지대로 이루어진다고 보았고, 가치의 척도로는 물건을 만드는 데 들어간 노동이 아니라 그 물건으로 “사거나 지배할 수 있는 노동의 양”을 내세우기도 했다. 리카도는 바로 이 점을 비판했다. 스미스는 “교환가치의 근원을 그토록 정확하게 규정”해 놓고도 “스스로 다른 가치 척도를 세웠다”는 것이다. 리카도는 희귀한 조각상이나 그림처럼 희소성만으로 가치가 정해지는 물건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라고 따로 떼어 놓고, 노동으로 늘릴 수 있는 상품에 대해서는 생산에 든 노동의 양이 상대적 가치를 정한다는 원리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

Adam Smith, who so accurately defined the original source of exchangeable value … has himself erected another standard measure of value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은 무엇이 다른가?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1권 첫 장에서 가치를 정하는 노동이 아무 노동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라고 했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란 주어진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생산 조건과 노동의 숙련 및 강도의 사회적 평균 정도로 어떤 사용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이다.” 영국에 증기 직기가 들어온 뒤 실을 천으로 짜는 데 전보다 절반 정도의 노동이면 충분해지자, 여전히 손으로 짜는 직공의 한 시간 노동은 사회적으로는 반 시간의 가치밖에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

Gesellschaftlich notwendige Arbeitszeit ist Arbeitszeit, erheischt, um irgendeinen Gebrauchswert mit den vorhandenen gesellschaftlich-normalen Produktionsbedingungen und dem gesellschaftlichen Durchschnittsgrad von Geschick und Intensität der Arbeit darzustellen.

마르크스가 자기 기여로 꼽은 것은 상품에 담긴 노동의 “이중성”이다. 외투를 만드는 재단 노동과 천을 짜는 직조 노동은 구체적으로 전혀 다르고 서로 다른 사용가치를 만든다. 그러나 교환에서는 이 차이가 지워지고 둘 다 똑같은 인간 노동력의 지출, “무차별한 인간 노동의 한낱 응결물”로만 셈해진다. 마르크스는 구체노동과 추상노동의 이 구분을 “정치경제학을 이해하는 데 축이 되는 도약점”이라 불렀다.

eine bloße Gallerte unerschiedsloser menschlicher Arbeit

더 근본적인 차이도 있다. 고전파는 가치의 크기를 분석했지만 “왜 이 내용이 저 형태를 취하는지”, 곧 왜 사람들의 노동이 하필 물건의 가치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는 묻지 않았다. 마르크스에게 노동가치론은 가격을 계산하는 공식이기 전에, 사적으로 일하는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가 시장에서 물건과 물건의 관계로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특수한 사회 형태를 밝히는 이론이었다. 레닌은 1913년 이렇게 요약했다. 스미스와 리카도가 노동가치론의 기초를 놓았고 “마르크스가 그들의 일을 이었다.” 그리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사물의 관계(상품과 상품의 교환)를 본 곳에서 마르크스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드러냈다.”

Там, где буржуазные экономисты видели отношение вещей (обмен товара на товар), там Маркс вскрыл отношение между людьми.

사회주의 운동은 노동가치론을 어떻게 썼나?

노동이 가치를 만든다면, 노동자는 왜 자기가 만든 가치를 다 갖지 못하는가? 1820년대 영국에서 윌리엄 톰프슨, 토머스 호지스킨 같은 ‘리카도파 사회주의자’들은 리카도의 원리에서 노동자가 노동의 전체 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이 요구는 뒤에 라살레파의 ‘노동전수익권’으로 이어졌다. 마르크스는 『고타 강령 비판』에서 이 구호를 비판했고, 노동자가 받는 임금과 노동이 만든 가치의 차이를 분배의 불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의 구조로 설명했다. 그것이 잉여가치론이다.

노동가치론은 어떤 비판을 받았나?

1870년대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 카를 멩거, 레옹 발라가 이끈 ‘한계혁명’은 가치를 생산의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소비자가 마지막 한 단위에서 얻는 주관적 효용에서 찾았고, 주류 경제학에서 노동가치론을 대신했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는 1896년, 상품이 가치대로 교환된다는 『자본론』 제1권과 생산가격으로 교환된다는 제3권 사이에 모순이 있다고 공격했다. 가치를 생산가격으로 어떻게 바꾸느냐는 이 ‘전형 문제’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산업마다 다르다는 데서 생기며, 오늘날까지 논쟁이 이어진다.

20세기에는 피에로 스라파의 체계가 물량 투입·산출 자료에서 가치 개념을 거치지 않고 상대가격을 구할 수 있음을 보여, 노동가치론이 쓸데없는 우회라는 신리카도학파의 비판을 낳았다. 이에 맞서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노동가치론을 가격을 직접 정하는 이론으로 볼지, 자본주의 아래 노동의 모순적인 사회 형태를 이해하는 틀로 볼지를 두고 여러 해석이 맞서 있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gutenberg.org
  3. gutenberg.org
  4. web.archive.org
  5. ru.wikisource.org
  6.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