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 문제
Transformation problem
노동가치론에 따른 상품의 가치를 이윤율이 균등해진 경쟁 가격, 곧 생산가격으로 바꾸는 일반 규칙을 찾는 문제이자 그것을 둘러싼 120년의 논쟁. 마르크스는 『자본』 제3권 제9장에서 사회 전체의 잉여가치를 평균이윤율로 재분배해 생산가격을 구하고 가치 총계와 가격 총계, 잉여가치 총계와 이윤 총계가 같다고 했지만, 비용가격을 이루는 생산수단은 여전히 가치로 셈했다. 1896년 뵘바베르크가 제1권과 제3권이 모순된다고 비판했고, 1906~1907년 보르트키에비치가 연립방정식으로 「수정」하자 두 총계 등식이 함께 성립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스라파 이후에는 가치가 가격 계산에 불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왔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신해석, 반복 계산, 시점적 단일체계 해석(TSSI) 등으로 답했다.
상세
무엇이 문제인가?
생산가격 항목에서 본 마르크스의 다섯 부문 표에서, 각 부문의 생산가격은 비용가격에 평균이윤 22%를 더해 얻었다. 그런데 비용가격의 큰 부분은 다른 부문에서 사들인 원료와 기계, 노동자가 사는 생활수단이다. 이 생산수단과 생활수단도 시장에서는 가치가 아니라 생산가격으로 팔린다. 그렇다면 비용가격도 가치가 아니라 생산가격으로 셈해야 하고, 그러면 평균이윤율과 각 상품의 가격이 다시 바뀐다. 마르크스는 이 점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한 부문의 비용가격을 거기 소모된 생산수단의 가치와 같게 놓으면 언제나 오류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 뒤 이렇게 썼다. “지금 우리의 연구에서는 이 점을 더 자세히 다룰 필요가 없다.”
Für unsre gegenwärtige Untersuchung ist nicht nötig, näher auf diesen Punkt einzugehn.
투입물까지 생산가격으로 바꾸면 마르크스가 내세운 두 등식, 곧 「가격 총계 = 가치 총계」와 「이윤 총계 = 잉여가치 총계」가 동시에 성립하는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잉여가치가 이윤의 원천이라는 착취론은 가격과 이윤을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어떤 지위를 갖는가? 전형 문제는 이 물음이다. 마르크스주의 문헌에서는 독일어 Verwandlung을 「전화」로도 옮겨 「가치의 생산가격으로의 전화」라고도 쓴다.
뵘바베르크는 무엇을 비판했나?
엥겔스는 제2권과 제3권 서문에서 이 수수께끼를 공개 토론에 부쳤고, 제3권이 나오자 반론이 쏟아졌다.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의 『마르크스 체계의 종결』(1896)이었다. 그는 제1권에서 상품의 가치가 노동량으로 정해진다고 하고는 제3권에서 상품이 가치가 아닌 생산가격으로 팔린다고 하니, 마르크스의 가치법칙은 스스로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자본』에 대한 「고전적」 비판으로 꼽히고 이후의 많은 비판이 그 논거를 되풀이했다.
마르크스 쪽에서는 루돌프 힐퍼딩이 『뵘바베르크의 마르크스 비판』으로 반박했다. 힐퍼딩은 가치론이 개별 가격을 직접 맞히는 이론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이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보았다. 다만 이 논쟁은 아직 수학적으로 형식화된 좁은 의미의 전형 문제를 다루지는 않았다.
보르트키에비치는 무엇을 고쳤나?
1906~1907년 독일 통계학자 라디슬라우스 폰 보르트키에비치는 생산수단·노동자 소비재·사치재를 만드는 세 부문의 연립방정식을 세워, 투입물과 산출물을 모두 생산가격으로 셈했다. 방정식 셋에 미지수는 넷(세 부문의 가격 계수와 이윤율)이므로 하나를 정해야 하는데, 그는 금을 사치재 부문의 상품으로 보고 그 가격 계수를 1로 고정했다. 그러면 이윤 총계는 잉여가치 총계와 같아지지만 가격 총계는 가치 총계와 대개 달라진다. 그는 마르크스의 변수만으로도 이윤율과 상대가격을 계산할 수 있음을 보이면서, 동시에 마르크스의 두 등식이 함께 성립하지 않음을 보였다.
이 「수정」은 폴 스위지가 1942년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에서 소개하기 전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스위지는 보르트키에비치 해법을 지지하며 1949년 뵘바베르크와 힐퍼딩의 글, 보르트키에비치의 논문을 한 권으로 엮었다. 1956년 프랜시스 시턴이 이를 임의의 수의 부문으로 일반화하면서 이 단계의 논의가 마무리되었다.
스라파 이후 「가치는 필요 없다」는 비판은 무엇인가?
1960년 피에로 스라파의 『상품에 의한 상품 생산』은 물량 투입계수와 실질임금만으로 생산가격과 이윤율을 계산하는 체계를 내놓았다. 여기서 노동가치는 계산에 쓰이지 않는다. 이언 스티드먼은 『스라파 이후의 마르크스』(1977)에서 가치 계산이 가격과 이윤을 설명하는 데 불필요한 우회로라고 결론짓고 노동가치론을 버렸다. 폴 새뮤얼슨은 1971년 논문에서 가치 체계를 지우고 가격 체계로 바꿔 쓰면 그만이라고 했고, 마르크스의 추론은 거꾸로 「가격에서 가치로」 바꿔도 똑같이 성립한다며 비꼬았다.
반면 모리시마 미치오는 이 비판을 받아들이면서도 착취론은 지켰다. 오키시오 노부오가 1955년 처음 증명한 「마르크스 기본 정리」에 따르면 이윤이 양(+)이려면 잉여가치가 양이어야 하고 그 역도 성립한다. 개별 가격은 가치에서 벗어나도 이윤이 결국 지불되지 않은 잉여노동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떻게 답했나?
답은 여러 갈래로 갈렸다. 1980년대 초 제라르 뒤메닐, 덩컨 폴리, 알랭 리피에츠는 「신해석」(새 해법)을 내놓았다. 전형을 총생산이 아니라 그해 새로 만들어진 순생산물에 한정하고, 노동력의 가치를 정해진 소비재 묶음이 아니라 화폐임금, 곧 총생산물에 대한 청구권의 몫으로 정의하면 순생산물의 가격 총계와 새 가치 총계, 잉여가치와 이윤 총계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안와르 샤이크는 모리시마의 아이디어를 빌려 마르크스의 절차를 되풀이하면 가격이 생산가격으로 수렴함을 반복 계산으로 보였다. 샤이크, 이토 마코토, 뒤메닐과 레비, 폴리는 가치에서 가격을 끌어내는 이론의 여지 없는 논리적 절차는 없지만 그것이 마르크스 체계 전체에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다른 갈래는 문제 설정 자체를 거부한다. 앨런 프리먼, 앤드루 클라이먼, 굴리엘모 카르케디 등이 1980년대 초부터 내세운 「시점적 단일체계 해석」(TSSI)은 보르트키에비치식 해석이 투입과 산출의 가격을 같은 시점에 동시에 결정하고(동시적), 가치와 가격을 서로 독립된 두 체계로 다룬다고 비판한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시간 순서에 따라(시점적), 가치와 가격이 서로를 결정하는 하나의 체계로(단일체계) 읽으면 모순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클라이먼은 이렇게 설명한다. 한 기간의 산출물은 다음 기간의 투입물이므로 앞 기간의 산출 가격과 다음 기간의 투입 가격은 언제나 같고, 이를 인정하면 보르트키에비치의 증명은 곧바로 무너진다. 이것을 처음 보인 것이 클라이먼과 맥글론의 1988년 논문이다. 데이비드 레이브먼 같은 비판자는 TSSI가 「마르크스는 틀린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비과학적 태도라고 반박하고, 많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도 TSSI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밖에 폴 매틱과 미하엘 하인리히는 가치형태 분석을 가치론의 핵심으로 보아 양적인 전형 문제를 사실상 해소하는 쪽을 택했고, 파르중과 마호버는 일반적 이윤율이라는 가정을 버리고 확률적 접근을 택했다. 에르네스트 만델 등은 동시적 계산이 생산과 가치 형성의 시간적 인과관계를 담지 못하기 때문에만 문제가 생긴다고 보았다.
왜 이렇게 오래 다투나?
걸려 있는 것이 마르크스 경제학의 중심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윤이 노동자의 지불되지 않은 노동에서 나온다는 착취론이 실제 가격과 이윤의 운동을 설명하는가, 아니면 계산에서 빠져도 그만인 도덕적 주장인가. 같은 동시적 방법과 시점적 방법의 대립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반박한 것으로 여겨진 오키시오 정리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되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