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형태
Value-Form
상품의 가치가 그 자신이 아니라 다른 상품의 몸, 끝내는 화폐로만 드러나는 사회적 형태. 마르크스는 『자본』 제1권 1장 3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에서 “아마포 20엘레 = 저고리 1벌” 같은 단순한 가치형태가 전개된 가치형태와 일반적 가치형태를 거쳐 화폐형태에 이르는 논리적 발전을 그려, 부르주아 경제학이 시도조차 하지 않은 화폐의 생성을 밝히고자 했다. 고전파 경제학은 노동을 가치의 실체로 찾아냈지만 왜 노동이 가치라는 형태를 띠는지는 묻지 않았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비판이었고, 1920년대 소련의 이사크 루빈과 1960년대 이후 서독의 신마르크스 독해가 이 분석을 마르크스 가치론의 핵심으로 다시 읽었다.
상세
왜 ‘형태’가 문제인가?
가치란 무엇일까? 흔한 대답은 “상품을 만드는 데 든 노동”이다. 이것이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고전파 경제학이 세운 노동가치론이고, 마르크스도 노동이 가치의 실체라는 데는 동의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었다. 노동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데, 왜 어떤 사회에서는 노동이 생산물의 ‘가치’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 가치는 다시 왜 화폐라는 모습을 띠는가? 이 물음이 가치형태 분석이다. 노동가치론 일반은 이 사전의 ‘노동가치론’ 항목에서 다루고, 이 항목은 마르크스가 그것과 자신을 구별한 지점을 다룬다.
마르크스는 『자본』 제1권 1장 3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를 이렇게 연다. “누구나,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몰라도, 상품들이 그 사용가치의 알록달록한 자연 형태와 아주 뚜렷이 대조되는 공통의 가치형태, 곧 화폐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가 하려는 일은 “부르주아 경제학이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 곧 이 화폐형태의 생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되면 “동시에 화폐의 수수께끼도 사라진다.”
Hier gilt es jedoch zu leisten, was von der bürgerlichen Ökonomie nicht einmal versucht ward, nämlich die Genesis dieser Geldform nachzuweisen
왜 이것이 수수께끼인가? 마르크스에 따르면 가치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책상에서 나무와 모양을 다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유령 같은 대상성”, 곧 구별 없는 인간 노동의 “응고물”뿐이다. 책상을 아무리 뒤집어 봐도 그 가치는 보이지 않는다. 가치는 그 책상이 다른 물건과 맞바꿔지는 관계 속에서만 드러난다.
1장 4절 끝에서 마르크스는 고전파를 이렇게 비판했다. 정치경제학은 불완전하게나마 가치와 가치량을 분석하고 그 안에 숨은 내용, 곧 노동을 찾아냈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은 왜 이 내용이 저 형태를 띠는지, 왜 노동이 가치로, 노동 시간에 따른 노동의 척도가 노동 생산물의 가치량으로 나타나는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각주에서 그는 스미스와 리카도조차 가치형태를 “아주 아무래도 좋은 것, 또는 상품의 본성에 외적인 것”으로 다루었다고 덧붙였다. 이유는 깊은 데 있었다. “노동 생산물의 가치형태는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의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며, 이것으로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은 사회적 생산의 특수한 한 종류로, 따라서 동시에 역사적으로 규정된다.” 이 형태를 영원한 자연 형태로 여기면 그 특수성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Die Wertform des Arbeitsprodukts ist die abstrakteste, aber auch allgemeinste Form der bürgerlichen Produktionsweise, die hierdurch als eine besondere Art gesellschaftlicher Produktion und damit zugleich historisch charakterisiert wird.
네 가지 형태는 어떻게 이어지나?
출발점은 두 상품의 가장 단순한 관계다. “x량의 상품 A = y량의 상품 B”, 마르크스의 예로는 “아마포 20엘레 = 저고리 1벌”(엘레는 옛 길이 단위)이다. 마르크스는 “모든 가치형태의 비밀이 이 단순한 가치형태 속에 들어 있다”고 썼다. 이 식에서 두 상품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아마포는 자기 가치를 저고리로 표현하는 능동적 쪽이고(상대적 가치형태), 저고리는 그 표현의 재료가 되는 수동적 쪽이다(등가형태). 두 자리는 서로를 전제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계기이면서, 동시에 같은 가치 표현의 대립하는 두 극이다. 아마포는 자기 가치를 자기 자신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아마포 20엘레 = 아마포 20엘레”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Das Geheimnis aller Wertform steckt in dieser einfachen Wertform.
둘째는 전개된 가치형태다. 아마포 20엘레는 저고리 1벌이기도 하고, 차 10파운드, 커피 40파운드, 밀 1쿼터, 금 2온스이기도 하다. 아마포의 가치는 이제 상품 세계 전체와 관계 맺지만, 그 표현은 끝없이 이어지는 미완의 목록이다. 셋째, 일반적 가치형태에서는 이 식이 뒤집힌다. 저고리, 차, 커피, 밀이 모두 자기 가치를 하나의 상품, 아마포로 표현한다. 아마포는 모든 상품의 공통된 등가물, 곧 일반적 등가물이 된다. 넷째, 화폐형태에서는 그 자리를 역사적으로 한 상품이 차지했는데, 그것이 금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셋째에서 넷째로의 이행은 새로운 개념적 발전이 아니라, 일반적 등가물의 자리가 사회적 관습으로 한 상품에 굳어지는 일이다.
이 서술은 화폐가 실제로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관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자본주의 안에 있는 연관을 개념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마르크스 자신도 이 절을 어렵게 여겼다. 그는 『자본』 1867년 초판의 본문에서 가치형태를 분석하고, 친구 루트비히 쿠겔만과 엥겔스가 더 쉬운 서술을 권하자 초판 부록으로 「가치형태」라는 쉬운 판을 따로 붙였다. 1872~73년 제2판의 본문은 이 부록을 따라 다시 썼다. 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까지 치면 가치형태 분석에는 네 가지 서술이 있고, 그 차이는 지금도 연구 대상이다.
마르크스는 가치형태를 처음 분석한 사람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꼽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침대 5개 = 집 1채”라는 교환에서 두 물건이 질적으로 같아야 견줄 수 있음을 알았지만, 그토록 다른 물건이 같다는 것은 “진실로 불가능하다”며 분석을 멈추었다. 마르크스의 설명은 이렇다. 그리스 사회는 노예 노동에 기초했고, 사람과 노동력의 불평등을 자연의 바탕으로 삼았다. 모든 노동이 인간 노동 일반으로서 같다는 가치 표현의 비밀은 “인간 평등의 개념이 이미 대중적 선입견처럼 굳건해질 때에야” 해독될 수 있다. 가치형태는 상품 소유자들이 서로를 대등한 교환자로 대하는 사회와 함께 간다.
Das Geheimnis des Wertausdrucks, die Gleichheit und gleiche Gültigkeit aller Arbeiten, weil und insofern sie menschliche Arbeit überhaupt sind, kann nur entziffert werden, sobald der Begriff der menschlichen Gleichheit bereits die Festigkeit eines Volksvorurteils besitzt.
이 분석의 결론은 화폐가 물물교환의 불편을 덜려고 누군가 발명한 도구가 아니라 상품 교환의 본성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사회관계라는 것이다. 가치는 화폐형태로만 제대로 표현될 수 있으므로, 마르크스의 가치론은 ‘화폐적 가치론’이라고도 불린다. 또 상품(상대적 가치형태)과 화폐(등가형태)의 대립에는 팔리지 않을 가능성, 곧 판매와 구매가 갈라져 공황이 일어날 추상적 가능성이 이미 들어 있다.
루빈과 1920년대 소련 논쟁에서는 어떤 자리였나?
가치형태를 마르크스 가치론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첫 이론가는 소련 경제학자 이사크 루빈(1886~1937)이었다. 그의 『마르크스 가치론 시론』 12장 「가치의 내용과 형태」는 영국 경제학자 새뮤얼 베일리에서 출발한다. 베일리는 가치란 상품들이 그때그때 교환되는 비율일 뿐이라며 가치 개념 자체가 필요 없다고 주장해 리카도를 공격했다. 루빈은 마르크스가 『자본』 첫머리에서 교환가치에서 가치로, 가치에서 노동으로 나아간 것이 이 도전에 대한 답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 길에서 멈추지 않았다. “리카도가 분석을 통해 형태(가치)를 내용(노동)으로 환원하는 데 그친 반면, 마르크스는 왜 이 내용이 바로 이 사회적 형태를 띠는지 보여 주려 한다.” 마르크스는 “형태에서 내용으로뿐 아니라 내용에서 형태로도” 나아갔다.
Но в то время как Рикардо ограничивался тем, что при помощи анализа свел форму (стоимость) к содержанию (труду), Маркс хочет показать нам, почему это содержание принимает именно данную общественную форму.
루빈은 대중적 해설서들이 가치를 곧 노동으로 여기는 바람에 “노동과 가치가 완전히 같다는 그릇된 관념”이 퍼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가치를 세 측면에서 보았다. 사회적 노동의 양적 배분을 조절하는 가치량, 사회적 생산관계의 표현인 가치형태, 추상노동의 표현인 가치 실체다. 루빈은 추상노동과 화폐가 필연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강조했다. 사적 노동은 시장에서 생산물이 화폐와 교환될 때에야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 해석은 1927~29년 ‘범주의 변증법’ 논쟁에서 세르게이 베소노프 등의 반박을 받았고, 비판자들은 루빈이 형태와 내용을 떼어 놓고 가치를 교환 쪽으로 끌어간다고 공격했다. 학술 논쟁은 곧 ‘루빈시나’ 규탄 캠페인으로 바뀌었고 루빈은 1937년 처형되었다(이 사전의 ‘상품물신성’ 항목).
반세기 뒤 소련 철학자 에발트 일리옌코프는 1979년 논문 「이상적인 것의 문제」에서 가치형태를 ‘이상적인 것’의 가장 뚜렷한 본보기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가치형태는 이상적이다. 비록 사람의 의식 밖에, 의식과 무관하게, 사람의 머리 바깥 공간에, 사물 속에, 곧 상품 자체 속에 존재하지만.” 일리옌코프는 이 분석에서 사람의 사회적 활동이 물건에 새겨 넣은 형태라는 자신의 ‘이상적인 것’ 개념을 끌어냈다.
Иными словами, форма стоимости идеальна, хотя существует вне сознания человека, независимо от него, в пространстве вне головы человека, в вещах, то есть в самих товарах
신마르크스 독해는 무엇을 새로 보았나?
1960년대 중반 서독에서는 가치형태의 이론적 서술에 관심을 둔 새로운 마르크스 해석, 곧 ‘신마르크스 독해’(Neue Marx-Lektüre)가 생겨났다. 이 이름은 1997년쯤부터 한스게오르크 바크하우스의 책에서 비롯되어 쓰였다. 이 흐름은 1920년대 소련의 파슈카니스와 루빈의 작업에서 출발해, 1970~80년대 헬무트 라이헬트와 바크하우스, 1990년대 미하엘 하인리히로 이어졌다. 이들은 엥겔스 이래의 역사화하는 독해와 마르크스-레닌주의, 사회민주주의의 해석 모두와 거리를 두었다.
바크하우스(1929~2026)는 1960년대 학생 시절 우연히 『자본』 1867년 초판을 손에 넣었다. 마르크스 해석자들이 거의 돌아보지 않던 판이었다. 그는 1964/65년 겨울학기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세미나에서 가치형태 분석에 관해 발표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쓴 논문 「가치형태의 변증법에 관하여」(1969)가 이 흐름의 출발점이 되었다.
Diese ist die Basis seines bekanntesten Aufsatzes Zur Dialektik der Wertform (1969).
이들이 거부한 것은 ‘화폐 이전의 가치론’이다. 개별 노동이 그 자체로 가치를 만들고 가치의 크기는 들인 노동 시간에서 곧바로 나온다는 생각이다. 하인리히는 1991년 『가치의 과학』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을 화폐적 가치론으로 읽어, 고전파의 노동가치론에서 벗어난 패러다임 전환으로 보았다. 그는 화폐가 반드시 금 같은 상품이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전제도 근거가 없다고 보았다.
해석은 지금도 갈린다. 가치가 교환에서만 생긴다는 관점(베일리가 먼저 내세웠고 마르크스가 비판했다), 가치가 생산에서 이미 완전히 정해진다는 관점, 가치가 생산과 유통에서 함께 구성된다는 신마르크스 독해의 관점이 맞선다. 가치형태 분석이 화폐의 실제 역사를 추상적으로 그린 것이냐, 순수하게 개념적인 전개냐도 쟁점이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서술 자체를 의심하는 쪽도 있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뵘바베르크는 그것을 “변증법적 요술”이라 불렀다. 가치형태 연구는 일본에서 특히 활발해서, 1984년 무렵 일본에서 가치형태 분석만을 다룬 책과 논문이 200편에 이르렀다는 보고도 있다.
오늘날 왜 읽는가?
가치형태 분석은 화폐를 기술적 편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관계로 보게 한다. 사적 생산자들의 노동이 사회 전체의 노동으로 인정받으려면 생산물이 팔려 화폐가 되어야 하고, 팔리지 않으면 그 노동은 사회적으로 없던 것이 된다. 이 구조는 상품물신성, 곧 사람들의 관계가 물건과 화폐의 관계로 나타나는 현상의 토대이기도 하다. 같은 방법을 법에 옮긴 것이 파슈카니스의 법의 상품교환 이론이다. 이 항목은 ‘상품물신성’, ‘노동가치론’, ‘『자본』’ 항목과 함께 읽으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