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물신성
Commodity Fetishism
상품을 생산하는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물건과 물건의 관계로, 곧 가치나 가격처럼 물건이 타고난 성질인 것처럼 나타나는 현상. 마르크스가 『자본』 제1권 1장 4절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에서 종교의 물신숭배에 빗대어 분석했다. 소련 경제학자 이사크 루빈은 1923년 『마르크스 가치론 시론』에서 이것을 머릿속 착각이 아니라 상품경제의 객관적 구조로 읽어 마르크스 경제학 전체의 토대로 삼았고, 같은 해 루카치는 이를 물화론으로 넓혔다.
상세
물건의 ‘값’에 무슨 수수께끼가 있나?
빵값이 오르면 우리는 “시장이 그렇게 정했다”고 말한다. 금은 원래 비싼 것이고, 주식은 스스로 오르내리며, 사람들은 그 움직임에 맞춰 일자리를 옮기고 빚을 지고 생활을 바꾼다. 값이란 마치 날씨처럼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힘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빵도 금도 주식도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주고받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것이 왜 사람을 지배하는 힘처럼 보이는가? 상품물신성은 이 물음에 대한 마르크스의 답이고, 마르크스주의가 시장경제를 ‘자연’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사회관계로 보는 출발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 제1권 첫 장의 마지막 절을 이렇게 시작한다. “상품은 얼핏 보면 자명하고 사소한 물건처럼 보인다. 그것을 분석해 보면 상품은 형이상학적 궤변과 신학적 변덕으로 가득 찬 아주 까다로운 물건임이 드러난다.”
Eine Ware scheint auf den ersten Blick ein selbstverständliches, triviales Ding. Ihre Analyse ergibt, daß sie ein sehr vertracktes Ding ist, voll metaphysischer Spitzfindigkeit und theologischer Mucken.
그의 예는 책상이다. 나무로 책상을 만들면 나무의 모양이 바뀔 뿐 책상은 여전히 나무, 평범한 감각적 물건이다. 그런데 책상이 상품으로 등장하는 순간 “감각적이면서 초감각적인 물건”으로 변한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비꼬았다. 책상은 “제 발로 땅에 서 있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상품을 마주하고는 머리로 물구나무를 서서 그 나무 대가리에서 제 발로 춤추기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기이한 망상을 펼쳐 낸다.” 마르크스는 여기에 “나머지 세계가 멈춰 선 듯하던 때 중국과 책상들이 춤추기 시작했다”는 각주를 달았다. 1848년 혁명이 꺾인 뒤 유럽 응접실을 휩쓴, 책상이 저절로 움직인다는 강령술 유행을 비꼰 농담이다.
Er steht nicht nur mit seinen Füßen auf dem Boden, sondern er stellt sich allen andren Waren gegenüber auf den Kopf und entwickelt aus seinem Holzkopf Grillen, viel wunderlicher, als wenn er aus freien Stücken zu tanzen begänne.
마르크스는 무엇을 ‘물신’이라고 불렀나?
‘물신’(Fetisch)은 오늘날 흔히 성적 의미로 쓰이지만, 그 뜻은 1890년대 프로이트 이후에 붙은 것이다. 마르크스 시대에 이 말은 주술적 힘이 깃들었다고 믿어 섬기는 물건, 곧 원시 종교의 숭배물을 가리켰다. 마르크스는 1842년 이 말을 처음 썼고, 프랑스 계몽사상가 샤를 드 브로스의 『물신 숭배에 관하여』(1760)를 발췌하며 그 개념을 받아들였다. 상품물신성이란 사람들이 상품과 화폐를 대하는 태도가 숭배물을 대하는 원시 종교 신자의 태도와 구조가 같다는 뜻이다.
1867년 『자본』 제1권 1장 4절에서 마르크스는 그 비밀을 이렇게 설명했다. “상품 형태의 신비로움은 단순히, 그것이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노동이 지닌 사회적 성격을 노동 생산물 자체의 대상적 성격으로, 이 물건들의 사회적인 자연 속성으로 되비춘다는 데 있다.” 이런 착시에서 사람들 사이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 자체가 “물건들 사이의 관계라는 환상적 형태”를 띤다. 이 사전의 ‘물화’ 항목이 인용한 것과 같은 대목이다. 종교 세계에서 사람 머리의 산물이 제 생명을 가진 독립된 존재처럼 보이듯, “상품 세계에서는 사람 손의 산물이 그렇다.”
Das Geheimnisvolle der Warenform besteht also einfach darin, daß sie den Menschen die gesellschaftlichen Charaktere ihrer eignen Arbeit als gegenständliche Charaktere der Arbeitsprodukte selbst, als gesellschaftliche Natureigenschaften dieser Dinge zurückspiegelt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마르크스의 답은 상품을 만드는 노동의 독특한 사회적 성격에 있다. 물건이 상품이 되는 것은 그것이 “서로 독립적으로 행해지는 사적 노동의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구두장이, 농부, 방직공은 각자 알아서 무엇을 얼마나 만들지 정하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서로를 위해 일하는 거대한 분업 속에 묶여 있다. 그 연결은 계획이나 합의가 아니라 시장에서 생산물을 교환할 때에야 비로소 드러난다. 그래서 생산자들에게 그들의 사회적 관계는 “있는 그대로”, 곧 사람들이 노동 속에서 직접 맺는 관계가 아니라 “인격들 사이의 물적 관계이자 물건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 나타난다.
als sachliche Verhältnisse der Personen und gesellschaftliche Verhältnisse der Sachen.
여기서 중요한 말은 “있는 그대로”다. 물신성은 단순한 허위의식이 아니다. 상품 생산 사회에서는 생산자들 사이에 직접적인 사회관계가 실제로 없으므로, 물건의 관계로 보이는 것은 그 사회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 사람들은 교환에서 서로 다른 생산물을 가치로서 같게 놓으면서 서로 다른 노동을 똑같은 인간 노동으로 같게 놓는다. 마르크스의 말로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한다.” 가치는 이마에 제 정체를 써 붙이고 다니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노동 생산물을 “사회적 상형문자”로 만든다.
Sie wissen das nicht, aber sie tun es.
마르크스는 대조를 위해 상품 생산이 아닌 세계들을 보여 준다. 무인도의 로빈슨은 제 노동 시간을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훤히 안다. 중세의 부역과 공납은 인격적 예속이지만 그 관계는 감춰지지 않는다. 농민 가족의 공동 노동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그는 “공동의 생산수단으로 일하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을 상상한다. 사회의 생활 과정은 “자유롭게 사회화된 사람들의 산물로서 그들의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통제 아래” 놓일 때에야 그 “신비의 안개”를 벗는다. 물신성은 계몽으로 풀리는 착각이 아니라 생산관계가 바뀌어야 사라지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 분석을 화폐(화폐 물신)와 이자 낳는 자본(자본 물신)으로 이어 갔다.
루빈은 이 이론을 어떻게 다시 읽었나?
이 절이 마르크스 경제학의 중심으로 올라선 것은 혁명 직후 소련에서였다. 이사크 일리치 루빈(1886~1937)은 1904년 유대인 노동자 조직 분트에 들어간 사회민주주의자로, 혁명 뒤에도 볼셰비키가 아니라 멘셰비키 쪽 분트에 남았다. 그럼에도 마르크스 경제학의 권위로 인정받아 1921년 모스크바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여러 차례 체포되었고 1923~1926년을 감옥과 유형지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 쓴 글만 스무 편쯤이다. 그의 주저 『마르크스 가치론 시론』(Очерки по теории стоимости Маркса)은 1923년 초판이 나온 뒤 소련에서 네 판을 거듭했다.
루빈은 책을 이렇게 시작했다.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성 이론은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 경제 체계에서 마땅히 차지해야 할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지지자든 반대자든 이 이론을 가치론의 부록, “마르크스의 본문과 나란히 놓인 흥미로운 문학비평적 여담”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루빈의 결론은 정반대였다. “물신성 이론은 마르크스의 경제 체계 전체, 특히 그의 가치론의 토대를 이룬다.”
Теория фетишизма представляет собой основу всей экономической системы Маркса и в частности его теории стоимости.
흔한 해석은 물신성 이론을 “사물들의 관계 밑에 사람들의 관계가 숨어 있다”는 폭로로 읽는다. 루빈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거꾸로, 상품경제에서는 사람들의 사회적 생산관계가 불가피하게 사물의 형태를 띠며 사물을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달리 나타날 수 없다”는 것까지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Маркс показал не только то, что под отношениями вещей скрываются производственные отношения людей, но что, обратно, в товарном хозяйстве общественные производственные отношения людей неизбежно принимают вещную форму и не могут проявляться иначе, как через посредство вещей.
루빈의 설명은 구체적이다. 상품경제에서 생산을 조직하는 것은 서로 독립된 상품생산자들이고, 사회는 누가 무엇을 얼마나 만들지 직접 정하지 않는다. 구두장이가 구두를 더 만들지 줄일지는 시장에서 구두 값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서야 정해진다. 생산자들 사이의 노동 연관은 오직 물건의 가격 운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그래서 물건은 실제로 특별한 사회적 역할과 사회적 속성을 얻는다. 루빈은 이것을 “사람들의 생산관계의 사물화와 사물의 인격화”라고 불렀다. 이렇게 읽으면 물신성 이론은 착각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상품경제의 생산관계에 관한 일반 이론, 정치경제학의 예비학”이 된다.
Теория товарного фетишизма превращается в общую теорию производственных отношений товарного хозяйства, в пропедевтику политической экономии.
소련에서 이 해석은 어떤 운명을 맞았나?
1926년 유형에서 돌아온 루빈은 다비트 랴자노프가 이끄는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에서 정치경제학 분과를 맡았다. 그러나 1928년부터 그의 책을 둘러싼 학술 논쟁은 정치적 박해로 바뀌었다. ‘루빈시나’(루빈주의)라는 이름의 캠페인은 그의 책을 마르크스주의의 “관념론”이자 “위조”로 규탄했다. 비판자들은 그가 경제 범주를 관념론적·형이상학적으로 다루고 형태와 내용을 떼어 놓았다고 공격했다. 그의 해석이 가치를 생산이 아니라 사회적 형태와 교환 쪽에서 설명한다는 것이 쟁점이었다. 루빈은 판을 거듭하며 「비판자들에 대한 답변」을 덧붙여 응수했다.
이 캠페인은 신경제정책 시기의 상대적인 학문적 자유가 스탈린 시대의 교조로 넘어가는 큰 흐름의 일부였다. 1930년 12월 체포된 루빈은 수사 방식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했고, 1931년 3월 ‘멘셰비키 중앙위원회 연합 사무국’ 재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카자흐스탄으로 유형되었다. 1937년 11월 유형지 악튜빈스크에서 다시 체포된 그는 그달 27일 총살되었다. 러시아어 위키백과는 당 지도부가 루빈에게 특히 짜증을 낸 까닭으로 많은 볼셰비키가 그의 생각을 참된 마르크스주의로 여겼다는 점을 든다. 그는 1989~1991년에야 복권되었고, 『시론』은 1980년대 말까지 소련에서 금서였다.
같은 시기 법학자 예브게니 파슈카니스는 물신성 분석을 법에 옮겨 “상품물신성은 법적 물신성으로 보완된다”고 썼다(이 사전의 ‘법의 상품교환 이론’ 항목). 상품 형태에서 출발해 사회의 다른 형태를 설명하려던 1920년대 소련의 이 흐름은 1930년대 초에 함께 꺾였다.
Товарный фетишизм восполняется правовым фетишизмом.
물화와는 어떻게 다르고, 누가 이어받았나?
루빈의 책이 나온 1923년, 헝가리 철학자 루카치 죄르지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마르크스의 물신성 개념을 넓혀 ‘물화’(Verdinglichung)라는 말을 처음 썼다. 루카치는 물화를 경제 밖, 곧 언론과 법과 철학에서도 찾았고 막스 베버의 합리화 이론과 결합했다. 둘은 겹치지만 초점이 다르다. 상품물신성은 상품 생산에서 노동의 사회적 연관이 물건의 형태를 띠는 경제적 구조에 관한 마르크스의 분석이고, 물화는 그 구조가 사회 전체와 의식으로 퍼지는 과정에 관한 루카치의 일반화다. 물화는 이 사전의 별도 항목에서 다룬다.
루카치를 거쳐 물신성 개념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문화 비판으로 이어졌다. 발터 벤야민은 1921년 단편 「종교로서의 자본주의」를 썼고,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1944)에서 인간의 상상력마저 상품이 되는 ‘문화산업’을 분석했으며,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의 사회』(1967)에서 사람들의 관계가 이미지들의 관계로 바뀌는 현대 사회를 그렸다.
루빈 자신은 서방에서 뒤늦게 발견되었다. 1972년 『시론』이 영어로 옮겨지면서 그는 국제 마르크스 연구의 고전이 되었다. 1960년대 이후 서독의 ‘신마르크스 독해’(Neue Marx-Lektüre)는 물신성 문제를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열쇠로 보았고, 그 선구자로 루빈을 꼽았다. 이 흐름의 대표자 한스게오르크 바크하우스는 물신성 문제를 자기 연구의 중심에 놓았다(이 사전의 ‘가치형태’ 항목).
오늘날 왜 다시 읽는가?
상품물신성 이론은 시장의 움직임을 자연법칙처럼 받아들이는 태도가 어디서 오는지 설명한다. 그 핵심은 그런 태도가 무지나 선전 탓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사람들의 생산이 시장을 통해서만 이어지는 사회에서는 물건과 화폐가 실제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다. 그러므로 물신성은 올바른 생각을 가르치는 것만으로 사라지지 않고, 생산을 사람들이 함께 의식적으로 조직할 때에야 사라진다는 것이 마르크스와 루빈의 결론이었다. 이 항목과 함께 ‘가치형태’, ‘물화’, ‘노동가치론’ 항목을 읽으면 이 문제를 둘러싼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해석 갈래를 따라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