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
Culture industry
문화산업은 테오도어 W.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1944/1947)의 「문화산업: 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 장에서 만든 비판 개념이다. 영화·라디오·잡지 같은 대중문화가 대중에게서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공장처럼 표준화되어 ‘위에서’ 생산된다고 보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가 사람들을 소비자 역할에 묶고 비판적 사유를 무디게 해 기존 질서에 통합한다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복제 기술론, 버밍엄학파 문화연구의 능동적 수용자론 등이 이를 반박하거나 보완해 왔다. 콘텐츠 업종을 가리키는 한국의 행정 용어 ‘문화산업’과는 다르다.
상세
왜 ‘대중문화’ 대신 ‘문화산업’이라고 불렀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을 쓰는 동안 처음 쓰던 「대중문화」(Massenkultur)라는 말을 「문화산업」으로 바꾸었다. 책에는 두 말이 아직 함께 남아 있지만, 그 뒤로 두 사람은 ‘대중문화’라는 표현을 피했다. ‘대중문화’라고 하면 대중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문화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들이 본 영화·라디오·잡지는 대중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위에서’ 산업적으로 생산된 것이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도 이 이름이 대중문화가 다른 공산품과 같은 표준화되고 이윤 지향적인 방식으로 제조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고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산업’이라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문화 상품도 공장 상품처럼 대량으로, 정해진 틀에 맞춰, 팔리기 위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오늘날 한국어에서 ‘문화산업’은 영화·음악·게임·방송 같은 콘텐츠 업종을 묶어 부르는 정책 용어로도 쓰인다. 이 항목은 그 업종 분류가 아니라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비판 개념을 다룬다.
문화산업론은 무엇을 주장했나?
핵심 주장은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문화가 철저히 상품이 된다. 마르크스는 물건의 쓸모인 사용가치와 교환될 때의 값인 교환가치를 구별했다. 문화산업에서 작품은 그 내용이나 완성도보다 얼마나 팔리는지, 곧 교환가치로 평가된다. 저자들은 문화산업의 정신적 산물이 ‘더 이상 상품이기도 한 것이 아니라 철두철미 상품’이라고 썼다.
둘째, 표준화가 일어난다. 대량 생산된 문화는 세부만 조금씩 다를 뿐 같은 틀을 따른다. 영화는 처음부터 결말이 보이고, 유행가는 귀에 익은 공식을 되풀이한다. 저자들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날 문화는 모든 것에 닮음을 찍어 낸다.
셋째, 오락은 노동의 연장이다. 문화는 여가에 소비되는데, 여가는 다음 날 일할 힘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문화산업은 되도록 힘이 덜 드는 즐거움을 판다. 후기 자본주의는 독점과 국가 개입이 두드러진 20세기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오락은 후기 자본주의 아래에서 노동의 연장이다.
넷째, 약속하고 속인다. 광고와 영화는 행복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늘 미뤄진다.
문화산업은 끊임없이 약속하는 바로 그것을 소비자에게서 끊임없이 속여 빼앗는다.
다섯째, 사람들을 통합한다. 저자들은 문화산업이 사람들을 소비자 역할로 줄이고, 비판적 사유를 기를 기회를 빼앗아 기존 질서에 길들인다고 보았다. 대리 만족을 주면서 같은 행동 양식을 끊임없이 익히게 한다는 것이다. 『계몽의 변증법』에는 ‘온 세상이 문화산업의 필터를 거쳐 흘러간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저자들은 문화산업 뒤에 음모를 꾸미는 엘리트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 문화를 장악한 이들은 일부러 사람들을 우둔하게 만드는 음모가가 아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려는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움직이는 행위자다. 저자들은 누가 이득을 보는지도 ‘가장 강력한 이해관계’ 같은 말로 흐릿하게 남겨 두었다.
저자들은 또 민족사회주의 독일과 미국 영화 산업을 계속 나란히 놓았다. 소수 기관이 대량으로 만든 문화를 수동적이고 획일화된 관객이 소비한다는 점에서 두 체제가 닮았다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특히 라디오가 사적인 공간의 청취자에게 직접 말을 걸면서 ‘권위적인 목소리’의 힘을 키웠다고 보았다.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무엇이 달랐나?
같은 연구소 주변에 있던 발터 벤야민은 다른 결론을 내렸다. 그는 1935년 파리 망명 중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썼고, 이 글은 1936년 《사회연구지》에 프랑스어로 줄여 실렸다. 벤야민은 이 글을 ‘그 이름에 값하는 최초의 유물론적 예술 이론’이라 불렀다.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는 원본이 지금 여기에 단 하나 있다는 데서 나오는 고유한 분위기와 권위다. 사진과 영화처럼 기술로 복제할 수 있는 매체가 나오면서 이 아우라가 무너진다. 예술작품은 종교 의식에 쓰이던 ‘제의 가치’를 잃고, 많은 사람에게 보여지는 ‘전시 가치’를 얻는다. 벤야민은 여기서 해방의 가능성을 보았다. 집단적 지각과 참여가 문화를 민주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파시즘이 행진과 연설, 뉴스 영화로 ‘정치를 심미화’한다고 경고했고, 이에 맞서 ‘예술을 정치화’하자고 했다.
아도르노는 1936년 3월 18일 벤야민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글에 반대했다.
당신은 자율적 예술의 기술성을 과소평가하고 의존적 예술의 기술성은 과대평가합니다.
아도르노가 희망을 건 곳은 대중문화가 아니라 현실과 쉽게 화해하지 않는 자율적 예술이었다. 독일 철학자 알브레히트 벨머는 두 사람의 차이를 이렇게 정리했다. 벤야민은 기술화된 대중문화에서 사회의 심리적 파괴를 막을 해독제를 보았고, 아도르노는 무엇보다 순응과 심리 조작의 매체를 보았다는 것이다.
버밍엄학파 문화연구는 어떻게 반박했나?
1964년 영국 버밍엄 대학에 리처드 호가트와 스튜어트 홀이 현대문화연구소(CCCS)를 세웠다. 이곳에서 나온 흐름을 「버밍엄학파」라 부른다. 홀은 1971년부터 1979년까지 소장을 맡았다. 이들도 비판 이론처럼 지배를 비판하고 해방을 돕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비판 이론과 달리 그들은 하위문화 속에서 저항의 잠재력을 찾았다.
이들의 이론적 바탕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다. 헤게모니는 지배 집단이 강제만이 아니라 동의를 얻어 지배하는 방식을 말한다. 동의는 늘 협상되고 다시 다투어지므로, 대중문화는 위에서 내려온 결과물이 아니라 투쟁의 장이 된다.
홀은 1973년 「텔레비전 담론의 부호화와 해독」에서 방송이 의미를 ‘부호화’해 내보내도 시청자는 자기 처지에 따라 그것을 다르게 ‘해독’한다고 주장했다.
| 해독 위치 | 시청자가 하는 일 | 예 |
|---|---|---|
| 지배적·헤게모니적 위치 | 보낸 쪽이 의도한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 정부 발표를 그대로 믿는 시청자 |
| 협상적 위치 | 큰 틀은 받아들이되 자기 처지에 맞게 일부를 고친다 | 경제 정책 일반에는 동의하지만 자기 직장의 임금 동결에는 반대하는 노동자 |
| 대항적 위치 | 의도를 알아차린 뒤 정반대 틀로 다시 읽는다 | 국익 보도를 계급 이익의 언어로 읽는 시청자 |
홀의 동료 데이비드 몰리는 1970년대 후반 BBC 시사 프로그램 「네이션와이드」 시청자를 집단별로 조사해 이 모델을 실증하려 했다. 재니스 래드웨이는 로맨스 소설을 읽는 여성들을 연구했다. 홀은 1981년 「‘대중적인 것’의 해체에 관한 노트」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문화적 얼간이가 아니다’라고 썼다. 그는 미디어의 헤게모니가 ‘의식적인 음모가 아니고, 드러내 놓고 강압하지 않으며, 그 효과도 총체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대중문화를 옹호한 다른 목소리는?
- 존 피스크는 『텔레비전 문화』(1987)와 『대중문화의 이해』(1989)에서 대중문화를 대량문화와 구별했다. 그는 수용자가 텍스트에서 자기 의미를 만들어 내는 ‘기호학적 민주주의’를 말했다.
- 허버트 갠스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1974)에서 고급문화의 미적 기준이 보편적이라는 통념에 반대했다. 문화적 취향은 교육 수준을 비롯한 계급의 차이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 미셸 드 세르토는 소비자를 수동적 존재로 보는 시각을 거부했다. 그는 아무리 촘촘한 통제 체계에도 빈틈이 있고, 사람들은 주어진 구조를 일상 속에서 제멋대로 전유한다고 보았다.
- 존 스토리는 그람시를 이어 대중문화를 종속 집단의 ‘저항’과 지배 집단의 ‘통합’이 맞서는 투쟁의 장으로 보았다.
재즈 논쟁도 자주 거론된다. 아도르노는 재즈를 문화산업의 산물로 보았다. 비판자들은 그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운동에서 재즈가 맡은 역할을 놓쳤다고 지적한다. 1953년 요아힘에른스트 베렌트가 독일 잡지 《메르쿠어》에서 아도르노의 재즈 비판을 반박했지만 그를 설득하지 못했다. 사회학자 하인츠 슈타이너트는 그 까닭이 베렌트가 ‘문화산업 대 자율적 예술’이라는 아도르노의 틀 자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1992년 이 틀이 재즈에는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아도르노 자신은 생각을 바꾸었나?
『계몽의 변증법』에서 두 저자는 사람들이 압력 아래 ‘양서류의 반응 방식’으로 떨어진다고까지 썼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말년의 라디오 강연 「여가」에서 한발 물러섰다.
개인들의 실제 이해관계는, 한계 안에서이긴 하지만, 총체적 장악에 맞설 만큼 여전히 강하다.
그는 여기서 ‘성숙의 기회’를 보았다. 대중문화를 다룬 뒤의 연구들도 문화산업이 하나의 통제 체계를 빈틈없이 세울 수는 없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입장을 나란히 놓으면 어떻게 다른가?
| 입장 | 대표 | 대중문화를 보는 눈 | 수용자 | 정치적 희망 | 자주 지적되는 약점 |
|---|---|---|---|---|---|
| 문화산업론 |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 이윤을 위해 표준화된 상품 | 소비자 역할에 묶인 수동적 존재 | 현실과 화해하지 않는 자율적 예술 | 엘리트주의, 수용자의 능동성 무시, 재즈 등 개별 장르에 대한 오판 |
| 복제 기술론 | 발터 벤야민 | 아우라가 무너진 새 매체 | 집단적으로 지각하고 참여하는 대중 | 예술의 정치화와 문화의 민주화 | 매체의 해방 효과를 지나치게 낙관했다 |
| 일차원 사회론 |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 거짓 욕구를 만들고 위반조차 흡수하는 문화 | 억압적 탈승화에 길든 개인 | 사회 밖 집단의 ‘거대한 거부’ | 지배를 총체적으로 진단해 출구가 흐려진다 |
| 버밍엄 문화연구 | 스튜어트 홀, 리처드 호가트 | 헤게모니를 둘러싼 투쟁의 장 | 처지에 따라 다르게 해독하는 능동적 존재 | 하위문화와 대항적 해독 | 저항을 과장하거나 낭만화한다는 비판 |
| 대중문화 옹호론 | 존 피스크, 허버트 갠스 | 계급별로 다른 취향의 정당한 표현 | 의미를 만들어 내는 주체 | 기호학적 민주주의, 취향의 다원성 | 위에서 내려오는 미디어 통제 앞에서 수용자의 힘을 과신한다 |
| 일상의 전술 | 미셸 드 세르토 | 통제 체계와 그 빈틈 | 주어진 구조를 제멋대로 쓰는 사용자 | 눈에 띄지 않는 일상적 저항 | 구조적 변화와의 연결이 약하다 |
| 후기 아도르노 | 강연 「여가」 | 여전히 통합의 장치 | 한계 안에서 저항할 힘이 남은 개인 | 성숙 | 앞의 비관적 진단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분명하지 않다 |
어떤 기준으로 따져 볼 수 있나?
이 논쟁은 어느 한쪽이 완전히 옳다고 결론 나지 않았다. 대신 다음 기준으로 각 주장을 따져 볼 수 있다.
- 생산을 보는가, 수용을 보는가. 문화산업론은 소유의 집중, 표준화, 광고 같은 생산 구조를 강하게 설명한다. 문화연구는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읽는지에 강하다. 둘은 서로 다른 고리를 보고 있어서, 한쪽의 근거가 다른 쪽을 그대로 반박하지는 못한다.
- 경험적 증거가 있는가. 몰리나 래드웨이의 수용자 연구처럼 실제 시청자와 독자를 조사한 연구가 있는지, 아니면 이론적 추론에 머무는지 보아야 한다. 『계몽의 변증법』은 경험 연구보다 사변적 역사 서술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 해독이 결과를 바꾸는가. 시청자가 대항적으로 읽는다고 해서 소유 구조나 정치적 결과가 달라지는가. 피스크의 비판자들은 바로 이 점에서 ‘기호학적 민주주의’의 낙관을 의심했다.
- 취향의 위계를 전제하는가. 고급 예술을 기준으로 대중문화를 재면 계급 취향을 보편 기준으로 착각할 위험이 있다(갠스). 반대로 모든 취향을 동등하게 보면 상업적 표준화를 비판할 근거가 약해진다.
- 시대를 구별하는가. 문화산업론은 194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체제와 방송을 보고 나왔다. 다른 매체 환경에 적용할 때는 어떤 점이 여전히 맞고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따로 확인해야 한다.
존 스토리처럼 대중문화를 ‘저항’과 ‘통합’이 맞서는 장으로 보는 견해는 이 두 관점을 함께 붙드는 한 가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