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변증법
Dialectic of Enlightenment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어 W. 아도르노가 미국 망명 중에 함께 쓴 비판 이론의 대표작. 1944년 등사판 『철학적 단편』으로 처음 돌았고, 1947년 암스테르담의 크베리도 출판사에서 이 제목으로 나왔다. 인간을 공포에서 해방하려던 계몽이 자연 지배의 도구적 이성으로 굳어지며 다시 신화와 야만으로 되돌아갔다는 테제를 오디세우스, 사드, 문화 산업, 반유대주의 분석으로 펼쳤다. 니체를 계몽의 「가차 없는 완성자」로 읽으며 그의 이성 비판을 받아들였고, 하버마스는 뒷날 이 책이 이성 비판을 끝까지 밀어붙여 자기 근거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상세
왜 이 책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가장 어두운 책」인가?
『계몽의 변증법』은 프랑크푸르트학파 비판 이론의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많이 읽힌 저작으로 꼽힌다. 독일어 위키백과는 알브레히트 벨머의 말을 빌려 이 책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가장 어두운 책」이라고 부른다. 책의 출발점은 1940년대 초의 물음이다. 왜 인류는 참으로 인간적인 상태에 들어서는 대신 새로운 종류의 야만에 빠졌는가? 파시즘과 독점 자본주의가 승리했고, 동쪽에서는 스탈린주의 국가 사회주의가 섰으며, 기술 교육을 받은 대중은 수수께끼처럼 기꺼이 전체주의에 몸을 맡겼다.
첫 장 「계몽의 개념」은 이렇게 시작한다. “예로부터 가장 넓은 의미의 진보하는 사유로서 계몽은 인간에게서 공포를 거두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아 왔다. 그러나 완전히 계몽된 지구는 의기양양한 재앙의 표지 아래 빛나고 있다.” 서문은 책 전체를 두 문장으로 요약한다. “신화는 이미 계몽이며, 계몽은 신화로 되돌아간다.”
Seit je hat Aufklärung im umfassendsten Sinn fortschreitenden Denkens das Ziel verfolgt, von den Menschen die Furcht zu nehmen und sie als Herren einzusetzen. Aber die vollends aufgeklärte Erde strahlt im Zeichen triumphalen Unheils.
Schon der Mythos ist Aufklärung, und: Aufklärung schlägt in Mythologie zurück.
어떻게 쓰였나?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책은 1939년부터 1944년까지 로스앤젤레스 망명지에서 쓰였다. 그레텔 아도르노가 두 사람의 대화를 받아 적었다. 첫 번째 보론(오디세우스)은 아도르노가, 두 번째 보론(쥘리에트)은 호르크하이머가 썼고, 「계몽의 개념」은 호르크하이머가, 「문화 산업」은 아도르노가 초고를 쓴 뒤 함께 고쳤다. 「반유대주의의 요소들」은 아도르노의 말대로 둘이 「글자 그대로 함께 받아쓴」 장이다. 두 사람은 1944년 봄 원고를 끝내 『철학적 단편』이라는 제목으로 등사해 동료 프리드리히 폴로크의 50세 생일에 헌정했다.
1947년 암스테르담의 크베리도 출판사에서 나온 책판은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때 두 사람은 「자본」「독점」「이윤」 같은 마르크스의 용어를 덜 부담스러운 말로 바꾸었다. 「자본」은 「경제」로, 「생산관계」는 「경제의 형태」로 바뀌었다. 1960년대 독일 학생들 사이에서는 해적판이 돌았고, 공식 재판은 1969년에야 나왔다. 독일어 위키백과는 이 개정을 두 사람이 경제의 우위를 전제하는 마르크스주의와 거리를 둔 표지로 읽는 해석을 소개한다.
책은 서문, 다섯 편의 논문, 「메모와 초안」으로 되어 있다. 「계몽의 개념」, 보론 1 「오디세우스 또는 신화와 계몽」, 보론 2 「쥘리에트 또는 계몽과 도덕」, 「문화 산업: 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 「반유대주의의 요소들: 계몽의 한계」다. 문화 산업과 도구적 이성은 이 책에서 나온 개념이지만 각각 별도 항목 「문화 산업」「도구적 이성」에서 다룬다.
무엇을 주장하나?
계몽의 프로그램은 세계의 탈주술화였다. 신화를 풀어 헤치고 상상을 지식으로 무너뜨리려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계몽이 자연을 지배하려고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는 단위로 바꾸면서 그 지배를 인간에게도 돌린다고 본다. 셀 수 없는 것은 미신으로 의심받고, 사람들은 관리되고 조작되는 집단이 된다. 그래서 계몽은 신화를 이긴 것이 아니라 신화가 하던 일, 곧 반복하는 자연에 사람을 묶어 두는 일을 더 철저하게 한다.
오디세우스 보론은 『오디세이아』를 시민적 개인의 원형으로 읽는다. 오디세우스는 꾀로 신들을 속이며 살아남지만, 세이렌의 노래를 듣기 위해 돛대에 자기를 묶고 노 젓는 동료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는다. 살아남는 대가는 자기 부정이다. 두 사람은 “교활한 외톨이는 이미 호모 에코노미쿠스”라고 썼다. 쥘리에트 보론은 칸트를 사드, 니체와 맞세운다. 형식화된 이성은 살인에 반대할 원칙적 논거를 내놓지 못하며, 사드와 니체는 이 사실을 덮지 않고 세상에 외쳤다는 것이다.
니체는 이 책에서 어떤 자리에 있나?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두 사람은 계몽 비판의 동기 상당수를 니체에게서 가져왔다. 그들은 니체를 계몽의 「가차 없는 완성자」라고 불렀고, 지배와 이성이 같다는 니체와 사드의 「무자비한 가르침」이 부르주아지의 도덕적 하인들의 가르침보다 「더 자비롭다」고 썼다. 객관성의 이상과 보편주의 도덕 뒤에 자기 보존과 지배의 명령이 숨어 있다는 생각, 그리고 합리성과 신화가 얽혀 있다는 테제는 니체 없이는 나올 수 없었다고 호르크하이머 전집의 편집자 군첼린 슈미트 뇌르는 평한다. 막스 베버의 탈주술화론, 루카치의 「물화」와 「제2의 자연」 개념도 함께 들어와 있다.
이 책은 니체를 나치의 선구자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니체가 계몽의 폭력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정직함을 높이 산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같은 시기 니체를 비합리주의의 시조로 단죄한 루카치의 길과 갈라진다. 루카치는 뒷날 1962년 『소설의 이론』 새 서문에서 아도르노를 비롯한 독일 지식인들이 「심연 호텔」에 묵으며 안락하게 절망을 구경한다고 비꼬았다.
누가 어떻게 비판했나?
책은 처음에 「병 속에 넣어 띄운 편지」처럼 먼 훗날 누군가 발견하기를 바라며 쓰였다. 널리 읽힌 것은 1960년대 학생운동 때였는데, 학생들은 책의 정치적 체념은 흘려 넘기고 호르크하이머의 이전 논문들에 더 기댔다.
가장 영향력 있는 비판은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 위르겐 하버마스에게서 나왔다. 그는 1985년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제5장에서 두 사람이 1940년대 초의 상황에서 회의를 의심할 근거를 따져 보는 대신 이성에 대한 무제한의 회의에 몸을 맡겼다고 비판했다. 법·도덕·과학의 분화나 민주주의의 제도화 같은 계몽의 이성적 성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여전히 계몽주의자인 두 사람이 어떻게 문화적 현대의 이성적 내용을 이토록 과소평가하여, 모든 것에서 이성과 지배, 권력과 타당성의 합금만을 볼 수 있는가?” 또 총체적 기만의 연관을 주장하는 한 그 주장 자체의 근거를 댈 수 없다는 수행적 모순도 지적했다.
Wie können die beiden Aufklärer, die sie immer noch sind, den vernünftigen Gehalt der kulturellen Moderne so unterschätzen, daß sie in allem nur eine Legierung von Vernunft und Herrschaft, Macht und Geltung wahrnehmen?
반대편에서는 미셸 푸코가 1978년 대담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일찍 읽었더라면 많은 오류를 피했을 것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는 이 책의 「계몽」 개념이 저자들을 분노케 한 모든 것을 이어 붙인 비역사적 잡종이라고 비판했다. 독일어 위키백과는 오늘날 이 책의 수용이 이성 비판을 옹호하는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와 그것을 비판하는 하버마스 사이의 논쟁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