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적 이성
Instrumental reason
도구적 이성은 목적 자체가 옳은지는 묻지 않고, 주어진 목적에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계산하는 일로 좁아진 이성을 가리키는 비판 이론의 개념이다.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1944년 컬럼비아 대학 강연(1947년 『이성의 몰락』, 한국어판 『도구적 이성 비판』)에서 열쇠 개념으로 썼다. 그와 테오도어 W. 아도르노가 함께 쓴 『계몽의 변증법』(1944/1947)은 자연을 지배하려는 이성이 사람에 대한 지배로 번지고, 결국 계몽이 신화와 ‘새로운 야만’으로 되돌아간다고 진단했다. 막스 베버의 목적합리성, 죄르지 루카치의 물화 개념과 맞닿아 있다.
상세
도구적 이성이란 무엇인가?
이성을 연장에 빗대 보면 이해하기 쉽다. 망치는 못을 박는 데는 쓸모가 있지만, 그 못을 어디에 왜 박아야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도구적 이성은 이처럼 ‘어떻게’만 묻고 ‘무엇을 위해’는 묻지 않는 이성이다. 독일어 위키백과는 이를 행위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만을 반성하는 이성이라고 정의한다. 같은 뜻으로 「목적-수단 합리성」이라는 말도 쓴다. 아무렇게나 정해진 목적에 수단이 기술적으로 얼마나 알맞은지만 따지는 합리성이다.
이 구분이 왜 중요한지는 극단적인 예가 보여 준다. 목적 자체는 홀로코스트처럼 비이성적이고 반인간적일 수 있다. 그래도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은 합리적이고 기술적으로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도구적 이성 비판은 바로 이 틈을 겨냥한다. 계산과 효율이 극도로 발달한 사회가 목적에 대해서는 판단할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프랜시스 베이컨 이래 근대인은 자연을 기술로 정복하고 지배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호르크하이머는 오늘날 동물을 포함한 자연이 ‘인간의 한갓된 도구’로 여겨지고 ‘총체적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고 썼다. 자연을 굴복시켜 온 역사는 곧 사람이 사람을 굴복시켜 온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인간은 해방의 과정에서 자기 나머지 세계와 운명을 함께한다.
『계몽의 변증법』은 어떤 책인가?
도구적 이성 비판이 가장 넓게 펼쳐진 곳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함께 쓴 『계몽의 변증법』이다. 두 사람은 1939년부터 1944년까지 망명지 로스앤젤레스에서 이 책을 썼다. 그레텔 아도르노가 두 사람의 대화를 받아 적었다. 1944년 「철학적 단편」이라는 제목의 등사판으로 나와 폴로크의 쉰 살 생일에 헌정되었고, 1947년 암스테르담의 크베리도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책으로 나오면서 ‘자본’이 ‘경제’로, ‘생산관계’가 ‘경제의 형태’로 바뀌는 등 마르크스주의 용어가 덜 부담스러운 말로 고쳐졌다. 1960년대 독일 학생들 사이에서는 해적판으로 돌며 열심히 읽혔고, 공식 독일어 재판은 1969년에야 나왔다.
| 장 | 다루는 내용 |
|---|---|
| 계몽의 개념 | 자연 지배와 신화·계몽의 변증법. 책 전체의 이론적 바탕 |
| 보론 1: 오디세우스 또는 신화와 계몽 | 『오디세이아』를 시민적 개인의 원형으로 읽는다 |
| 보론 2: 쥘리에트 또는 계몽과 도덕 | 칸트, 사드, 니체를 통해 형식화된 이성이 도덕을 정초할 수 없음을 보인다 |
| 문화산업: 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 | 상품이 된 대중문화 비판 |
| 반유대주의의 요소들: 계몽의 한계 | 지배하는 이성 속에 숨은 비합리성이 파시즘으로 터져 나온 과정 |
| 노트와 초안 | 미완의 단상들 |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진보하는 사유로서의 계몽은 예로부터 사람들에게서 두려움을 걷어 내고 그들을 주인으로 세우려 했다. 그러나 완전히 계몽된 지구는 승리한 재앙의 표지 아래 빛나고 있다.
서문은 책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신화는 이미 계몽이며, 계몽은 신화로 되돌아간다.’ 신화도 이미 세계를 설명하고 통제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계몽의 일종이다. 그런데 신화를 걷어 낸 계몽은 다시 신화처럼 맹목적인 지배가 된다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왜 시민적 개인의 원형인가?
두 저자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유럽 문명의 기본 텍스트’로 읽었다. 오디세우스는 신화 속 괴물과 자연의 힘 사이를 떠돌며 꾀로 살아남는다. 그는 키르케와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 내고 집으로 돌아간다. 저자들은 그가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자기를 지킨다고 보았다. 욕망을 누르고 계산하는 이 태도에서 ‘도구적 정신’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꾀 많은 외톨이는 이미 호모 에코노미쿠스이며, 언젠가 모든 이성적인 사람이 그를 닮게 된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경제학이 가정하는 ‘자기 이익을 계산하는 인간’이다. 두 저자는 자기를 보존하려는 계산의 대가를 이렇게 적었다.
자아, 곧 인간의 동일하고 목적 지향적이며 남성적인 성격이 만들어지기까지 인류는 스스로에게 끔찍한 일을 저질러야 했고, 그 일부는 지금도 모든 어린 시절에서 되풀이된다.
왜 이성이 야만으로 뒤집히나?
『계몽의 변증법』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될 때 이미 위협적인 자연 앞에서 자기를 지키려는 주체와 함께 도구적 이성이 자리 잡았다. 그것은 먼저 바깥 자연과 안의 본능을 지배하는 힘으로 굳어졌고, 마침내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제도가 되었다. 이성은 사람을 해방하는 대신 지배받는 이들을 더 촘촘히 통제하고, 삶의 모든 면을 쓸모와 효율로 재게 되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에 따르면 근대 과학과 기술이 일어나면서 목적-수단 계산이 자본주의 생산과 효율적 관료제에 필요한 사고방식으로 지배적이 되었다. 저자들이 ‘계몽은 전체주의적’이라고 쓴 것도 그래서다. 호르크하이머는 파시즘에서 ‘이성과 자연의 악마적 종합’을 보았다. 철학이 늘 꿈꿔 온 이성과 자연의 화해와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이 진단에는 경제 분석도 깔려 있다. 폴로크는 19세기 자유주의 자본주의가 국가가 경제에 깊이 개입하는 ‘국가자본주의’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말한 경제의 우위 대신 정치의 우위가 들어선 셈이다. 『계몽의 변증법』이 국가 기구가 사회 전체를 관리하는 ‘전면적으로 관리되는 삶’에 주목한 데는 이 분석이 깔려 있다.
『도구적 이성 비판』은 무엇을 더했나?
호르크하이머는 1944년 2월과 3월 컬럼비아 대학에서 「사회와 이성」이라는 제목으로 다섯 차례 공개 강연을 했다. 『계몽의 변증법』의 생각을 정리한 이 강연에서 ‘도구적 이성’이 열쇠 개념으로 쓰였다. 강연은 1947년 Eclipse of Reason(이성의 몰락)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독일어판은 1967년 『도구적 이성 비판』(Zur Kritik der instrumentellen Vernunft)이라는 제목으로 나왔고, 한국어판도 이 제목을 따른다. 책은 다섯 장에 걸쳐 이성, 진리, 자연, 개인 같은 전통 철학의 개념이 목적-수단 합리성과 자연 지배, 자기 보존의 범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분석한다.
베버·루카치·하버마스와는 어떻게 다른가?
도구적 이성은 비슷한 몇몇 개념과 겹치면서도 강조점이 다르다.
| 사상가 | 개념 | 강조점 |
|---|---|---|
| 막스 베버 | 목적합리성 | 근대 서구의 성공을 이끈 결정적 요소. 가치를 따지는 가치합리성과 구별한다 |
| 죄르지 루카치 | 물화 | 상품 형식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사물 사이의 관계처럼 보이게 만든다. 노동자의 계급의식이 이를 깨뜨릴 수 있다고 보았다 |
|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 | 도구적 이성 | 계몽의 실패가 처음부터 도구적 이성 안에 들어 있었다. 실증주의는 현존하는 것을 긍정하는 데로 끝난다 |
| 위르겐 하버마스 | 도구적 합리성과 의사소통적 합리성 | 도구적 합리성은 이성의 한 측면일 뿐이다. 서로 이해하려는 의사소통 속에 다른 이성이 있다 |
베버에게 목적합리성은 근대 이성이 거둔 성공의 핵심이었다. 반면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에게는 계몽이 실패한 씨앗이 이미 도구적 이성 안에 있었다.
어떤 비판을 받았나?
가장 영향력 있는 비판은 하버마스에게서 나왔다. 하버마스는 도구적 이성 개념이 ‘총체성으로 부풀려진 목적합리성’을 떠올리게 한다고 보았다. 이 개념에서는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과 자기 보존에 쓸모 있는 것의 구별이 사라진다. 그래서 『계몽의 변증법』의 저자들은 모든 것에서 ‘이성과 지배, 권력과 타당성의 합금’만을 보았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두 저자가 ‘이 회의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근거를 따져 보는 대신 거침없는 이성 회의에 몸을 맡겼다’고 평했다. 법·도덕·과학이 각각 분화하고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것처럼 계몽이 남긴 이성적 성과를 그들이 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은 많은 비평가가 이 책에서 저자들이 약속한 ‘계몽의 긍정적 개념’이 무엇인지 찾지 못했다고 전한다.
최근에는 다른 독해도 있다. 이 책을 익숙한 사회 세계를 병든 것으로 다시 보게 하는 ‘세계 개시적 비판’으로 읽기도 한다. 또 단순한 몰락사가 아니라, 이성이 권력과 얽히는 것을 자각하게 하는 변증법적 진보 개념으로 읽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