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주도 공업화
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
비교 우위가 있는 상품을 수출해 공업화의 속도를 높이려는 무역·경제 정책. 수입품을 국내에서 대신 만들어 내는 수입대체 공업화와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 정부가 수출 산업에 보조금과 싼 자금, 낮은 환율을 몰아주고 세계 시장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다. 제2차 세계대전 뒤 홍콩·싱가포르·한국·타이완, 곧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의 발전을 특징짓는 전략이었다.
상세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많은 개발도상국은 외국 시장이 닫히고 전시 해운이 위험했던 경험 때문에, 수입하던 공산품을 국내에서 만들어 내는 수입대체 공업화로 출발했다.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나라들이 처음에는 모두 이 길을 택했지만, 1950~1960년대 타이완과 한국은 발전의 방향을 바깥으로 돌려 수출 주도 성장 전략으로 옮겨 갔다.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는 수입대체를 이어 갔다. 수출주도 공업화는 원칙적으로 다른 나라 시장에 들어가는 대가로 국내 시장을 외국 경쟁에 여는 것을 뜻하지만, 실제로 동아시아 나라들은 1960~1980년대에 수입에 강한 장벽을 쳤다. 정부는 앞으로 비교 우위를 가질 신생 산업을 보호하면서 수출 산업을 지원했다.
한국에서는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했다. 계획은 전력·비료·시멘트·정유·철강 같은 기간 산업과 도로·철도·항만을 세우는 한편 국제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수출 진흥을 목표로 삼았다. 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화로 수출 품목이 바뀌었고, 1970~1996년 한국 경제는 연평균 8.4% 성장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었다. 1993년 세계은행 보고서 『동아시아의 기적』은 수출 지향 정책과 낮은 세금, 작은 복지를 성공 요인으로 꼽았지만, 다른 연구들은 광범위한 국가 개입과 산업 정책이 훨씬 컸다고 반박했다.
이 전략은 성장의 엔진을 바깥 시장에 두기 때문에 바깥 충격에 약하다. 수출주도 공업화는 외부 요인에 대한 시장의 민감도를 높였고,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이 전략을 쓴 나라들에 준 피해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2008년 금융위기 뒤 세계적 불황에서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수출 가격이 수입 가격보다 느리게 오르는 교역 조건 악화 아래에서는 성과가 제한된다는 비판도 있다. 마르크스주의 쪽에서는 세계 시장의 과잉 생산과 경쟁력 하락이 수출 주도 경제에 이윤율 위기를 낳는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