Дальневосточная Республика (ДВР) · 1920년 4월–1922년 11월

극동공화국

Far Eastern Republic

1920년 4월부터 1922년 11월까지 러시아 극동과 동시베리아, 트란스바이칼에 존재한 명목상 독립국이다. 러시아 내전기 일본 점령 지역과 RSFSR 사이의 완충국으로 구상되었고, 형식상으로는 다당제 민주공화국이었으나 실제로는 RSFSR의 통제 아래 있었다. 레닌은 상황이 강제한 조치라며 형식은 부르주아 민주국가, 본질은 소비에트 정책을 따르는 국가라고 설명했다. 1922년 11월 14~15일 스스로 해산해 RSFSR에 합병되었다.

상세

명칭과 성립 배경

극동공화국은 러시아어로 Дальневосточная Республика(ДВР, 달네보스토치나야 레스푸블리카)라 하며, 정식 명칭은 극동공화국이다. 1920년 1월 에스에르·멘셰비키 계열 정치중심부가 동시베리아에 일본 개입군과 소비에트 러시아 사이의 완충 국가를 세울 것을 제안했고, 볼셰비키는 이를 축소된 형태로 받아들였다. 폴란드 전선과 랑겔 전선에서 교전이 이어지는 조건에서 완충국을 거부하는 것은 일본과의 직접 충돌을 뜻했기 때문에, 당시 제안된 '동질적 사회주의 권력' 대신 공화국은 볼셰비키의 통제 아래 놓였다.

1920년 2월 18일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완충국 구상을 지지했으나, 많은 지역 볼셰비키와 유격대는 이를 적대적으로 받아들였고 친소비에트 정부들을 극동공화국 이름 아래 통합하는 작업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공화국 창설을 제안한 인물은 이. 나. 스미르노프와 아. 미. 크라스노시초코프였다.

건국과 발전

공화국은 1920년 4월 6일 바이칼 연안 노동자대회에서 베르흐네우딘스크를 수도로 선포되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1920년 5월 14일 극동공화국을 공식 승인하고 재정·외교·인적·경제·군사적 원조를 제공했으며, 이를 통해 모스크바는 공화국의 내정과 외교를 통제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 지도부는 완충국을 '동쪽의 브레스트-리토프스크'로 여겼고, 약 7만 명의 일본군과 1만 2천 명의 미국군이 주둔한 상황에서 직접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개입을 촉발할까 우려했다.

일본은 1920년 7월 15일 붉은 군대와 맺은 정전 협정에서 새 완충 국가를 승인하는 데 동의했고, 이는 아타만 세묘노프를 사실상 버리는 조치였다. 1920년 10월 세묘노프가 치타에서 축출된 뒤 공화국의 수도는 치타로 옮겨졌고, 1920년 11월 11일 블라디보스토크 임시 전국회의는 치타 정부를 승인하며 1921년 1월 9일 제헌의회 선거를 결정했다.

극동 지역의 통합은 1920년 10월 2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치타에서 열린 다섯 지역 정부 대표 회의에서 법적으로 확정되었다. 1921년 1월 9일 선거가 시작되었고, 1921년 2월 12일부터 4월 27일까지 열린 극동공화국 제헌의회는 독립 민주국가를 규정한 헌법을 채택했으며, 볼셰비키가 유격대 운동 대표들과 연합해 다수를 차지했다.

외교와 군사

곤고타 역 회담(1920년 5월 24일~7월 15일)에서 일본 대표단은 자바이칼에서의 군대 철수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써 인민혁명군은 아타만 세묘노프 세력을 격파하고 1920년 10월 22일 치타를 점령할 수 있었다. 이는 직접 충돌 대신 완충국을 외교적으로 활용한 사례였다.

1921년 5월 26일 일본이 준비한 백군 쿠데타로 블라디보스토크에 프리아무리예 임시정부가 세워졌고, 프리모리예주 일부 지역에는 아무르 연안 지방정부(비공식 명칭 '검은 완충국')가 들어섰다. 1921년 8월부터 11월까지 일본은 대련에서 극동공화국 대표와 직접 협상했으나, 함대와 요새의 무장 해제, 일본 관리의 자유로운 이동, 북사할린 80년 조차, '공산주의 체제' 포기 등을 요구한 일본의 강경 조건 때문에 결렬되었고 일본은 군사 행동을 재개했다.

1922년 6월 일본이 시베리아 주둔군을 10월 말까지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뒤, 인민혁명군으로 위장한 붉은 군대가 동진해 1922년 10월 25일 블라디보스토크를 점령했다. 같은 날 제1자바이칼 소총사단 선두 부대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들어섰고 극동공화국은 프리모리예 전역에 대한 통제를 회복했다.

국가 형태와 해체

극동공화국의 국가 체제는 형식적으로만 다당제였다. 1921년 각료회의에는 멘셰비키와 에스에르가 참여했으나 다당제는 이후 폐지되었고, 1922년 가을 공화국 당국은 멘셰비키 조직을 해산하고 에스에르에 대한 재판을 조직했으며, 볼셰비키에 대한 야당 대표 대부분은 제2기 인민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1920년 7월 레닌은 크라스노시초코프에게 '민주주의는 허용되나 공산당에 다소 특권이 주어진다'는 형태로 극동공화국의 정치 체제를 규정했고, 실제로 볼셰비키의 지도부 점유율은 언제나 압도적이었다.

1922년 11월 14일 극동공화국 인민회의는 자진 해산을 선언하고 극동을 단일 소비에트 공화국에 포함시켜 줄 것을 모스크바에 요청했으며, 11월 15일 공화국은 RSFSR에 합병되어 정부가 해산하고 모든 권한과 영토를 모스크바의 볼셰비키 정부에 넘겼다.

구분과 사례

'검은 완충국'과의 구분에서 프리아무리예 임시정부(1921년 5월 26일~1922년 10월 25일, 비공식 명칭 '검은 완충국')는 명목상 극동공화국에 속한 프리모리예주 일부에 세워진 백군 국가 형성체였고 미국과 일본의 지원을 받았으며, 친소비에트 극동공화국과 반소비에트 '검은 완충국'이 서로 대립했다.

완충국들의 계열에서 극동공화국은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 사이의 완충 지대로서 양국 간 공개 전쟁을 막는 역할을 한 리트벨과 비교되는데, 이는 극동의 독자적 구성이 아니라 소비에트 정책의 일반적 수법이었음을 보여준다. 완충국의 다른 사례로는 러시아 제국과 대영제국 사이의 아프가니스탄, 소련과 중국 사이의 몽골인민공화국이 함께 제시된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establishment, structure, and dissolution of the Far Eastern Republic (ДВР) as a de-facto buffer state of Soviet Russia, 1920–1922
  2. 위키백과 (영문) nominally independent buffer state between RSFSR and Japanese-occupied territories, merged with RSFSR November 1922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Lenin's June 1920 interview with Osaka Asahi referring to the Far Eastern Republic as a buffer state necessitated by circumstances with Japan
  4. gw2ru.com Russia Beyond article detailing Lenin's strategic rationale for creating the DVR to avoid war with Japan while dealing with Denikin and Poland
  5. 위키백과 (러시아어)
  6. 위키백과 (영문)
  7.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8. 위키백과 (러시아어)
  9. 위키백과 (러시아어)
  10. gw2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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