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자위대
Finnish White Guard
1918년 핀란드 내전에서 적위대를 꺾은 백색 진영의 자원 민병대. 공식 명칭은 「수오옐루스쿤타」(보호대)였고 서방에서는 「백위대」로 불렸다. 1917년 여름부터 지역별로 생겨 1918년 1월 백군의 주축이 되었고, 내전 뒤 군의 자원 예비 조직으로 남았다가 1944년 11월 소련의 요구로 해산되었다.
상세
1905년 총파업 때 생긴 시민 경비대는 1906년 무렵 정파에 따라 갈라졌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의 권력이 무너지자 질서를 지키려는 경비대가 다시 생겼고, 적위대가 혁명적 러시아 부대에게서 무기를 얻은 반면 보호대는 스웨덴과 독일의 지지자들에게서 무기를 받았다. 1918년 1월 13일 의회의 비사회주의 다수파는 상원에 보호대로 경찰력을 꾸릴 권한을 주었고, 상원은 만네르헤임에게 이를 바탕으로 새 군대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1월 27~28일 밤 보호대는 포흐얀마의 러시아 수비대를 무장해제하기 시작했다. 내전 초기 백군의 대부분은 보호대였지만, 독일에서 훈련받은 예거 약 1,900명과 스웨덴 의용병 1,200명이 장교를 맡은 징집병 부대가 곧 그만큼 늘어났고, 영어 출처는 이것이 승패를 가른 요인이었다고 본다. 적색 테러로 약 1,100명이 죽었고, 2004년 정부 위탁 조사에 따르면 백색 테러로 약 7,370명이 처형되거나 살해되었다(더 오래된 사회주의 계열 연구는 1만 명). 그 가혹함 때문에 적색 쪽은 이들을 「라흐타리카르티」(도살자 부대)라 불렀다.
1918년 8월 2일 국가평의회 법령이 보호대에 법적 근거를 주었고, 1919~1934년에는 군의 자원 부분으로서 동원 때 별도 부대를 이루었다. 모든 기초자치단체에 지부가 있었고, 스키·사격·페사팔로 같은 체육 활동과 합창단·악단도 꾸렸다. 공식적으로는 정치적 중립이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반좌파·반공·보수였으며 노동운동은 대체로 이를 배척했다. 1932년 라푸아 운동의 맨챌래 반란 때 일부가 가담했으나 대다수는 정부에 충성했다. 1934년 동원 체제가 바뀌며 독자적 무장 세력의 역할은 끝났고, 겨울전쟁 때 야전군 병력의 4분의 1을 보호대원이 차지했다. 1940년 2월 15일 보호대 지도부와 사회민주당이 공동 성명을 내 오랜 반목을 풀었다. 1944년 11월 소련의 요구로 해산되었고, 소련은 이를 파시스트 조직으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