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인터내셔널
Fourth International
1938년 9월 파리 근교에서 트로츠키의 주도로 창립된 트로츠키주의 국제 조직. 스탈린 치하의 코민테른이 세계혁명을 포기하고 소련 관료층의 도구가 되었으므로 새 인터내셔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국제좌익반대파의 후신인 소규모 그룹들이 모여 만들었다. 창립 문서인 이행강령은 연속혁명론과 소련을 퇴보한 노동자 국가로 보는 분석 위에 서 있다. 트로츠키 암살과 전쟁, 각국의 탄압으로 약화되었고 1953년에 크게 분열했다.
상세
왜 '제4'인가
번호는 계보 주장이다. 제2인터내셔널은 1914년에, 제3인터내셔널은 1933년에 죽었다는 것이 트로츠키의 판단이었다. 특히 독일에서 코민테른이 사회파시즘 노선으로 나치 집권을 막지 못하고도 아무런 자기비판을 하지 않자, 트로츠키는 코민테른 내부 개혁 노선을 접고 새 인터내셔널 건설로 돌아섰다. 국제좌익반대파에서 이어진 각국의 소그룹들이 5년의 준비 끝에 1938년 9월 파리 근교에서 창립 대회를 열었다. 대의원 규모는 작았고, 참가자 다수가 이후 몇 년 사이 암살되거나 수용소에서 죽었다.
무엇을 주장했나
창립 대회가 채택한 이행강령은 자본주의의 위기가 무르익었는데 지도부가 배신하고 있다는 정세 판단 위에서, 최소 요구와 최대 강령 사이를 잇는 이행적 요구들을 제시했다. 이론적 기초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연속혁명론으로, 후진국의 민주주의 과제도 노동계급 권력으로만 완수되며 혁명은 국제적으로만 완결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소련 분석으로, 소련을 자본주의로 되돌아간 나라도 사회주의도 아닌 퇴보한 노동자 국가로 규정하고, 관료층을 몰아내는 정치혁명과 제국주의에 맞선 소련 방어를 동시에 주장했다. 이 이중 태도는 이후 트로츠키주의 내부 논쟁의 영원한 화약고가 되었다.
어떻게 되었나
1940년 트로츠키가 멕시코에서 암살되면서 조직은 창립자를 잃었다. 전쟁기에 유럽 지부들은 지하로 몰렸고, 전후 재건 과정에서 소련권의 확대와 유고슬라비아, 중국 혁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예상 밖의 문제와 마주쳤다. 1953년 파블로의 노선을 둘러싸고 국제서기국과 국제위원회로 갈라졌으며, 1963년의 부분적 재통합 이후에도 복수의 조직이 각자 제4인터내셔널의 이름과 정통성을 주장해 왔다. 자세한 경과는 제4인터내셔널의 분열과 재통합 항목이 다룬다. 어느 계열도 대중정당을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스탈린주의 비판의 이론적 자원과 각국 좌파의 간부들을 공급한 학교로서의 역할은 비판자들도 인정한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출처
- Pierre Frank, The Fourth International: The Long March of the Trotskyists (Ink Links, 1979)
- Robert J. Alexander, International Trotskyism 1929–1985: A Documented Analysis of the Movement (Duke University Press, 1991)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Encyclopedia of Trotskyism On-Line: Fourth International docu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