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ébiscite du 8 mai 1870 · 1870.05.08

1870년 프랑스 국민투표

1870 French plebiscite

1870년 5월 8일 나폴레옹 3세가 제2제정의 마지막으로 치른 국민투표. 1860년 이래의 자유주의 개혁과 이를 담은 4월 20일 원로원 결의를 승인하느냐고 물었고, 찬성 735만 표, 반대 154만 표로 통과되었다. 제1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들은 반대를 호소했고 대도시 노동자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정부는 투표 전날 인터내셔널 회원들을 일제히 체포했다.

상세

1869년 총선에서 반대파는 330만 표와 대도시 다수를 얻었고, 나폴레옹 3세는 입법원에 법안 발의권을 주고 1870년 1월 에밀 올리비에에게 내각을 맡겼다. 4월 20일 원로원 결의가 장관의 의회 책임제를 들이고 헌법 개정권을 원로원에서 인민에게 옮기자, 황제는 이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질문은 「인민은 1860년 이래 황제가 국가 기구들의 협력을 얻어 헌법에 가한 자유주의 개혁을 승인하고 1870년 4월 20일 원로원 결의를 비준하는가」였다. 개혁을 지지해 온 자유주의 반대파는 반대하기 어려웠고, 황제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줄 기반도 다지려 했다.

공화파는 반대와 기권으로 나뉘었고 강베타와 쥘 페리, 티에르가 반대를 권했다. 당국은 찬성 투표용지만 찍었으므로 반대하려면 투표용지를 직접 준비해야 했다. 투표 직전 수제 폭탄 발견과 황제 암살 음모자 체포가 발표되었다. 결과는 찬성 735만 142표, 반대 153만 8,825표로 1869년 총선보다 300만 표를 더 얻은 대승이었지만, 프랑스 국민투표 가운데 처음으로 반대가 8%를 넘었다.

『프랑스 내전』의 첫 번째 담화는 투표 전날 루이 보나파르트가 파리, 리옹, 루앙, 마르세유, 브레스트에서 인터내셔널 운영위원들을 황제 암살 음모를 꾸미는 비밀결사라는 구실로 잡아들였고, 이 구실은 곧 그의 재판관들 앞에서 터무니없음이 드러났다고 썼다.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의 「죄」는 국민투표에 찬성하는 것이 국내의 전제와 국외의 전쟁에 찬성하는 것이라고 호소한 일이었고, 대도시와 공업 중심지의 노동계급이 한 사람처럼 반대표를 던졌지만 농촌의 무지가 저울을 기울였다. 마르크스는 유럽 지배층이 이 투표를 노동계급에 대한 황제의 승리로 축하했고 그것이 두 달 뒤 전쟁의 신호가 되었다고 보았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fr.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