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岗饶漱石事件(高饶事件) · 1953.06–1955.03.31

가오강·라오수스 사건 (1953~1955)

Gao Gang–Rao Shushi affair (1953–1955)

1953년 국가계획위원회 주석 가오강과 당 조직부장 라오수스가 류사오치·저우언라이를 끌어내리고 자신들이 그 자리에 오르려다 「반당연맹」으로 몰려 숙청된 중화인민공화국 최초의 최고 지도부 권력 투쟁. 1954년 2월 7기 4중전회가 당의 단결을 강조하는 결의를 냈고, 가오강은 그해 8월 자살했으며 라오수스는 1955년 체포되어 1975년 옥사했다. 1955년 3월 당 전국대표회의가 두 사람을 출당시켰다.

상세

1952년 가을 중앙은 제1차 5개년 계획을 앞두고 가오강·라오수스·덩쯔후이·덩샤오핑·시중쉰 등 대행정구의 1인자를 베이징으로 불렀다. 마오가 세율 개편과 합작사 문제를 두고 류사오치·저우언라이에 대한 불만을 가오강에게 털어놓자, 가오강은 이를 신임의 신호로 읽었다. 1953년 6~8월 전국 재정경제 공작회의에서 그는 보이보와 류사오치를 공격했고, 9~10월 라오수스는 전국 조직 공작회의에서 안쯔원 비판을 통해 류사오치와 저우언라이에 맞섰다. 가오강은 류의 측근이 짠 정치국 명단 초안에 국민당 지배 지역 출신이 늘어난 것을 근거지 출신 원로들을 끌어들이는 데 썼고, 펑더화이와 린뱌오가 그를 지지했다.

덩샤오핑과 천윈이 마오에게 보고했고, 12월 24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마오는 “베이징에 두 개의 사령부가 있다”고 경고했다. 1954년 2월의 4중전회는 「당의 단결 강화에 관한 결의」를 채택했고, 저우언라이와 천윈은 가오강의 「독립 왕국」을 암묵적으로 비판했다. 가오강은 연금된 뒤 8월 17일 수면제로 목숨을 끊었다. 1955년 3월 31일 당 전국대표회의의 「가오강·라오수스 반당연맹에 관한 결의」는 두 사람을 출당시켰고, 1981년 「역사결의」는 당을 분열시키고 최고 권력을 빼앗으려 한 야심가들의 음모를 물리쳐 당의 단결을 강화했다고 적었다. 펑더화이와 린뱌오는 가오강에게 마오의 승인이 있는 줄 알았다고 해명해 면책되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zh.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
  4.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5.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