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보학 (철학)
Genealogy (philosophy)
당연하게 여겨지는 도덕·진리·제도가 어떤 힘들의 다툼과 우연 속에서 생겨나고 바뀌어 왔는지를 역사 자료로 캐어 그 자명함을 흔드는 비판의 방법. 니체가 1887년 『도덕의 계보』에서 “도덕적 가치들의 가치 자체를 먼저 물어야 한다”며 시작했고, 미셸 푸코가 1971년 글 「니체, 계보학, 역사」와 『감시와 처벌』(1975)에서 권력과 지식의 역사 분석으로 넓혔다. 하나의 기원이나 직선적 발전을 찾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상세
왜 ‘계보학’이라는 방법이 중요한가?
우리는 대개 착한 것은 원래 착하고, 감옥은 원래 범죄자를 가두는 곳이며, 진리는 원래 진리라고 생각한다. 계보학은 바로 이 ‘원래’를 의심하는 방법이다. 어떤 가치나 제도가 오늘의 모습이 되기까지 누가 어떤 이해관계로 그것을 만들고 고쳐 썼는지를 하나하나 따라가 보면, 영원해 보이던 것이 역사의 산물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렇게 드러난 것은 다르게 될 수도 있었고, 그러니 앞으로도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이름은 족보를 뜻하는 낱말에서 왔다. 족보를 캐는 사람이 고문서를 뒤지듯, 철학의 계보학도 문서와 사료를 뒤진다. 다만 족보가 시조 한 사람에게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달리, 철학의 계보학은 깨끗한 시작점이 있다는 생각부터 버린다. 거슬러 올라갈수록 줄기는 하나로 모이지 않고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이 방법은 낯설면서도 가깝다. 마르크스도 부르주아 경제학이 영원한 자연법칙처럼 내세우는 범주들이 사실은 특정한 역사적 생산관계의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계보학은 그와 비슷하게 ‘자연스러운 것’을 역사화하지만, 그 역사를 계급투쟁이나 생산양식의 발전이라는 하나의 큰 줄기로 묶지 않는다. 이 차이가 둘 사이 논쟁의 핵심이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무엇을 했나?
프리드리히 니체는 계보학이라는 말을 1887년의 『도덕의 계보』에서만 썼고, 그것도 제목에 내걸었다. 그는 서문에서 당시 도덕의 기원을 설명하던 영국 심리학자들과 친구 파울 레의 『도덕 감정의 기원』을 겨냥해, 이들이 지금 통하는 선악의 가치를 그대로 전제한 채 그 기원만 그럴듯하게 지어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새 요구를 내놓았다. “우리에게는 도덕적 가치들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이 가치들의 가치 자체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 가치들이 자라고 바뀐 조건과 사정을 알아야 한다.
wir haben eine Kritik der moralischen Werte nötig, der Wert dieser Werte ist selbst erst einmal in Frage zu stellen
니체는 그런 앎이 상상이 아니라 기록에 근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덕의 계보학자에게 중요한 색은 먼 곳을 바라보는 푸른색이 아니라 “회색, 곧 문서로 남은 것,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것, 실제로 있었던 것”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세 논문은 ‘좋음과 나쁨’이 귀족의 자기 긍정에서, ‘선과 악’이 억눌린 자들의 원한에서 나왔다는 주장,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이 채무 관계와 형벌에서 생겼다는 주장, 금욕주의 이상이 무엇을 위해 쓰여 왔는지에 대한 분석으로 이루어진다.
nämlich das Graue, will sagen, das Urkundliche, das Wirklich-Feststellbare, das Wirklich-Dagewesene
방법론의 핵심은 제2논문 12절의 형벌 논의다. 니체는 기존 도덕 계보학자들이 형벌에서 복수나 위협 같은 ‘목적’을 찾아내 그것을 형벌의 시작에 갖다 놓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생겨난 원인과 나중에 그것이 실제로 쓰이고 목적의 체계 속에 놓이는 방식은 “전혀 딴판”이다. 이미 있는 것은 그보다 우세한 힘에 의해 거듭 새로운 의도로 해석되고, 새로 장악되고, 새로운 쓸모로 고쳐진다. 니체에게 모든 제압과 지배는 곧 “새로운 해석, 고쳐 맞추기”였다. 그러니 한 제도의 역사는 하나의 목적이 펼쳐진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다투는 해석들이 번갈아 덮어쓴 기록이다.
daß alles Geschehen in der organischen Welt ein Überwältigen, Herr-werden und daß wiederum alles Überwältigen und Herr-werden ein Neu-Interpretieren, ein Zurechtmachen ist
푸코는 계보학을 어떻게 이어받았나?
20세기 후반 이 방법을 되살린 사람은 미셸 푸코다. 그는 1971년 스승 장 이폴리트를 기리는 논문집에 실은 「니체, 계보학, 역사」에서 니체를 꼼꼼히 다시 읽으며, 계보학은 순수한 기원(Ursprung)을 찾는 일이 아니라고 정리했다. 기원을 찾는 역사는 사물의 본질이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고 가정하지만, 계보학은 그 밑에서 우연, 어긋남, 다툼, 잊힌 사건들을 찾아낸다. 영어판 위키백과의 요약대로, 계보학은 기원 찾기도 직선적 발전의 재구성도 아니다.
푸코는 이 방법을 ‘역사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들’에 적용했다. 1975년의 『감시와 처벌』은 서양에서 감옥이 형벌의 중심이 된 것이 개혁가들의 인도주의 덕분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학교·병원·병영에 두루 퍼진 ‘규율’이라는 새로운 권력 기술을 추적했다. 이어진 『성의 역사』(1976~)는 성이 억압만 당한 것이 아니라 끝없이 말해지고 분류되며 관리되는 대상이 되었다고 보았다. 푸코는 이런 작업을 ‘현재의 역사’라고 불렀고, 지식과 권력이 서로를 낳는 관계(권력/지식)를 분석의 중심에 두었다.
질 들뢰즈는 1962년의 『니체와 철학』에서 니체의 계보학을 헤겔식 변증법에 맞서는 방법으로 읽었다. 가치를 그것을 내세운 힘의 성질(능동적인가 반동적인가)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 독해는 프랑스에서 니체를 반(反)헤겔·반(反)변증법의 사상가로 받아들이는 흐름을 열었고, 푸코의 계보학도 그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
마르크스주의는 계보학을 어떻게 보나?
계보학과 마르크스주의는 모두 지배적인 관념을 ‘영원한 것’에서 끌어내려 역사 속에 놓는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그 역사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계급투쟁이라는 설명 틀로 묶고, 지배적 관념을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해명한다. 영어판 위키백과는 계보학이 한 시대의 담론 전체를 하나의 지배적 담론, 곧 이데올로기로 설명하는 마르크스주의 방식과 대립한다고 정리한다. 푸코 자신도 권력을 국가나 한 계급이 소유한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퍼진 관계로 보았다.
마르크스주의 쪽과 비판이론 쪽의 반론도 여기서 나왔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1985년의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니체와 푸코를 다루며, 모든 진리 주장을 권력의 효과로 돌리는 계보학은 자기 비판의 근거가 되는 규범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따졌다. 권력이 모든 곳에 있다면 무엇의 이름으로 저항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다른 한편 푸코의 감옥·규율 분석은 자본주의 노동 규율의 형성을 다루는 연구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도 적극적으로 참고해 왔다. 계보학은 이처럼 마르크스주의와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자극해 온 비판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