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ur Genealogie der Moral. Eine Streitschrift · 1887.11

도덕의 계보

On the Genealogy of Morality

프리드리히 니체가 1887년 11월 펴낸 논쟁서로, 서문과 세 편의 논문으로 이루어진다. 도덕이 영원한 진리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생겨났다고 보고, 약자의 르상티망(원한)이 강자의 가치를 뒤집은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 빚과 채권자의 관계에서 나온 죄책과 양심의 가책, 그리고 의미 없는 고통보다 차라리 무(無)를 원하게 만든 금욕주의적 이상의 기원을 차례로 추적한다. 니체의 책 가운데 가장 체계적인 논증서로 꼽히며,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미셸 푸코의 계보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상세

왜 도덕에 “계보”를 묻나?

보통 도덕철학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묻고, 그 답을 이성이나 신이나 행복에서 끌어내려 한다. 『도덕의 계보』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왜 어떤 것을 “선”이라 믿게 되었으며, 그 믿음은 누구의 어떤 필요에서 생겨났는가. 니체는 서문 제6절에서 이렇게 요구한다. “우리에게는 도덕적 가치들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이 가치들의 가치 자체가 먼저 의문시되어야 한다.”

wir haben eine Kritik der moralischen Werthe nöthig, der Werth dieser Werthe ist selbst erst einmal in Frage zu stellen

그러려면 도덕이 생겨나고 자라고 바뀌어 온 조건과 사정을 알아야 한다. 니체는 옛 친구 파울 레의 『도덕적 감정의 기원』(1877)이 다윈을 읽고 그럴듯한 가설을 하늘색으로 그렸다고 비판하며, 도덕의 기원을 캐는 계보학자에게 중요한 색은 파란색이 아니라 “회색”, 곧 문서로 남은 것,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것, 실제로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서문 제7절).

nämlich das Graue, will sagen, das Urkundliche, das Wirklich-Feststellbare, das Wirklich-Dagewesene

이렇게 가치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캐물어 그 당연함을 깨뜨리는 방법은 20세기에 미셸 푸코가 이어받아 “계보학”이라는 비판 방법으로 정식화했다. 방법 자체는 별도 항목 계보학에서 다룬다.

어떻게 쓰였고 어떻게 나왔나?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니체는 1887년 여름 몹시 우울한 상태에서 7월 10일부터 30일 사이에 갑자기 세 편의 논문을 써냈다. 물론 이전의 메모들을 활용했다. 그는 이 책을 라이프치히의 C. G. 나우만 출판사에서 자비로 찍었고, 친구 하인리히 쾨젤리츠(페터 가스트)와 함께 교정을 보았다. 책은 1887년 11월 600부가 나왔다. 초판의 표제지 뒷면에는 이 책이 최근에 낸 『선악의 저편』을 “보충하고 분명히 하기 위해” 덧붙인 것이라는 안내가 실렸고, 니체는 겉모양도 『선악의 저편』과 헷갈릴 만큼 비슷하게 만들게 했다.

니체의 다른 책들이 대부분 아포리즘 모음인 것과 달리, 이 책은 긴 논문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논문은 「‘선과 악’, ‘좋음과 나쁨’」, 둘째 논문은 「‘죄’, ‘양심의 가책’,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것들」, 셋째 논문은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부제 “하나의 논쟁서”가 보여 주듯 학술적 거리를 두기보다 적을 정면으로 겨눈 책이다.

첫째 논문: 노예 반란은 어떻게 일어났나?

니체는 “좋음”이라는 말의 두 기원을 구분한다. 고대의 귀족과 전사들은 자기 자신과 자기 행동을 “좋다(고귀하다, 강하다, 행복하다)”고 불렀고, 평민의 것은 경멸 없이 그저 “나쁘다(비천하다, 평범하다)”고 했다. 반대로 억눌린 자들은 먼저 강자를 “악하다”고 규정하고, 그다음에 그 반대인 자기 자신을 “선하다”고 부른다. 니체는 이 뒤집기를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이라 부른다.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은 르상티망 자체가 창조적이 되어 가치를 낳을 때 시작된다. 이것은 진짜 반응, 곧 행동으로 하는 반응을 거부당해 오직 상상의 복수로만 스스로를 달래는 자들의 르상티망이다.”(제1논문 제10절)

Der Sklavenaufstand in der Moral beginnt damit, dass das Ressentiment selbst schöpferisch wird und Werthe gebiert

니체는 이 반란의 주역으로 유대 사제 계급과 그 상속자인 기독교를 지목하고, 귀족적 가치의 계보에 로마, 르네상스, 나폴레옹을 놓는다. 제11절에서는 고귀한 종족들의 밑바닥에 있는 맹수, 곧 “금발의 야수”를 말하는데, 이 표현은 흔히 사자 같은 맹수를 빗댄 것으로 읽히지만 뒷날 나치의 인종주의 선전에 가장 많이 오용된 니체의 말이 되었다. 르상티망 개념과 주인 도덕·노예 도덕의 구분은 각각 별도 항목에서 설명한다.

둘째 논문: 죄책감은 빚에서 나왔나?

둘째 논문은 도덕적 “죄(Schuld)”의 개념이 아주 물질적인 “빚(Schulden)”의 개념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독일어에서 두 말은 같은 뿌리를 가진다. 니체에 따르면 손해와 고통이 같은 값을 가질 수 있다는 오래된 생각, 그래서 빚을 갚지 못한 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계약 관계”에서 왔으며, 그 관계는 다시 매매, 교환, 거래의 기본 형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제2논문 제4절). 그는 제8절에서 이렇게 쓴다. “값을 매기고, 가치를 재고, 등가물을 고안하고, 교환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가장 처음의 사고를 이 정도로 사로잡았다.”

Preise machen, Werthe abmessen, Äquivalente ausdenken, tauschen

양심의 가책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인간이 국가와 사회라는 울타리에 갇혀 밖으로 공격 본능을 풀 수 없게 되자, 그 본능이 안으로, 자기 자신에게로 향했다는 것이다. 니체는 이것을 “인간의 내면화”라 부르고, 이렇게 해서 비로소 뒷날 “영혼”이라 불리는 것이 자라났다고 말한다(제16절). 같은 논문 제11절에서 니체는 정의의 기원을 복수 감정에서 찾는 오이겐 뒤링을 공격하며, 모든 의지가 다른 모든 의지를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뒤링의 공산주의자 틀”이 생명에 적대적인 원리라고 썼다.

셋째 논문: 왜 인간은 차라리 무를 원하나?

셋째 논문은 예술가(바그너의 「파르지팔」), 철학자(쇼펜하우어의 의지 부정), 사제, 성자에게서 나타나는 금욕주의적 이상을 차례로 살피고, 마침내 무신론자와 과학자의 무조건적인 “진리에의 의지”도 금욕주의적 이상의 마지막 형태라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니체는 순수하고 의지 없는 인식 주체라는 관념을 비판하며 이렇게 쓴다. “오직 관점적인 봄만이, 오직 관점적인 ‘인식’만이 있다.”(제12절)

Es giebt nur ein perspektivisches Sehen, nur ein perspektivisches „Erkennen“

금욕주의적 이상이 그토록 큰 힘을 가졌던 이유를 니체는 인간 의지의 근본 사실에서 찾는다. 인간은 고통 자체보다 고통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견디지 못하며, 금욕주의적 이상은 고통에 의미를 주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인간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보다는 차라리 무를 원한다.”

lieber will noch der Mensch das Nichts wollen, als nicht wollen…

제27절에서 니체는 이 문제를 “유럽 허무주의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더 깊이 다룰 책을 준비하고 있다며 그 제목을 “권력의지. 모든 가치의 전도의 시도”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그는 1888년 이 계획을 버렸고, 그의 사후 누이가 같은 제목으로 엮은 유고 편집본은 별도 항목 권력의지 (유고 편집본)에서 다룬다.

누가 이어받았고, 마르크스주의는 어떻게 읽었나?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책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 강한 영향을 주어, 공격 본능이 안으로 향해 양심이 생긴다는 생각은 『문명 속의 불만』(1930)으로 이어졌다. 막스 셸러는 이 책에 자극받아 『도덕의 구조에서 르상티망』(1912년 첫 발표)을 썼다. 20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이 책이 가장 많이 논의된 니체 저작이 되었다. 질 들뢰즈는 『니체와 철학』(1962)에서 능동적인 힘과 반동적인 힘의 대립으로 이 책을 읽었고, 미셸 푸코는 1971년의 논문 「니체, 계보학, 역사」에서 기원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계보학을 역사 연구의 방법으로 정식화한 뒤 『감시와 처벌』(1975)에서 형벌의 역사에 적용했다.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이 책은 두 방향으로 읽힌다. 한쪽에서 보면 이 책은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를 약자의 원한에서 나온 노예 반란의 최신판으로 그린다. 니체는 제1논문 제5절에서 근대 민주주의와 아나키즘, 그리고 “모든 유럽 사회주의자들에게 공통된 ‘코뮌’에 대한 경향”을 정복자 종족에 대한 피정복민의 반격으로 해석했다. 프란츠 메링과 게오르크 루카치가 니체를 지배 계급의 철학자로 본 근거가 여기에 있다. 흥미롭게도 니체가 이 책에서 거듭 공격한 오이겐 뒤링은, 프리드리히 엔겔스가 10년 전 『반뒤링론』(1877~1878)에서 반대 방향으로부터 비판한 바로 그 인물이다. 엔겔스는 뒤링의 사회주의가 영원한 정의와 도덕을 내세운 비과학적 체계라고 비판했고, 니체는 뒤링을 르상티망에 찬 반유대주의자이자 “복수의 사도”라고 불렀다(제3논문 제14절).

다른 쪽에서 보면, 도덕을 계급과 권력관계의 산물로 보고 영원한 가치의 가면을 벗기는 이 책의 방법은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닮은 데가 있다. 특히 죄와 형벌의 기원을 교환과 채무 관계에서 찾는 둘째 논문은 상품 교환이 사람의 의식을 만든다는 마르크스의 분석과 자주 나란히 읽혔다.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그리고 위르겐 하버마스가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1985)에서 니체의 계보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도 이런 겹침과 차이 때문이었다. 차이는 분명하다. 마르크스에게 지배와 착취는 역사적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지만, 니체의 계보학에는 그런 해방의 전망이 없다.

관련 인물

출처

  1. de.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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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nietzschesource.org
  5. nietzschesour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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