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sentiment · 1887

르상티망

Ressentiment

힘이 없어 행동으로 되갚지 못하는 자가 마음속에 쌓아 두는 원한과 복수심. 프랑스어에서 온 말로, 니체는 1887년 『도덕의 계보』에서 이 감정이 “창조적이 되어 가치를 낳을 때” 노예 도덕이 생긴다고 보고 기독교 도덕과 근대의 평등 이념을 그 산물로 해석했다. 뒤에 막스 셸러와 질 들뢰즈 등이 이 개념을 이어받아 사회학과 철학의 분석 도구로 넓혔다.

상세

르상티망은 왜 평범한 원한과 다른가?

‘르상티망’은 ‘다시 느끼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 ressentir에서 나온 말로, 독일어에 딱 맞는 낱말이 없어 프랑스어를 그대로 들여와 썼다. 원한이나 앙심과 비슷하지만 니체가 이 말에 담은 뜻은 더 구체적이다. 그것은 모욕이나 패배를 당했으면서도 힘이 없어 곧바로 되갚지 못하는 자가 그 감정을 삼키고 오래 곱씹으면서 생기는 독이다. 니체는 1887년 『도덕의 계보』 제1논문 10절에서 이렇게 썼다. 르상티망은 “본래의 반응, 곧 행동으로 하는 반응이 막혀 있어서 상상의 복수로만 스스로를 보상받는 존재들의” 감정이다.

das Ressentiment solcher Wesen, denen die eigentliche Reaktion, die der Tat, versagt ist, die sich nur durch eine imaginäre Rache schadlos halten.

니체가 보기에 이 감정의 특징은 바깥에 기대어서만 움직인다는 것이다. 노예 도덕은 생겨나기 위해 언제나 먼저 맞서는 바깥 세계를 필요로 하고, 그 행동은 “근본적으로 반동”이다. 고귀한 인간이 스스로를 긍정하고 나서 덤으로 ‘나쁜’ 것을 정하는 데 반해, 르상티망의 인간은 먼저 ‘악한 적’을 상상하고 그 반대로 자기를 ‘선한 자’로 세운다. 니체는 이런 인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의 영혼은 곁눈질한다. 그의 정신은 숨을 곳과 샛길과 뒷문을 좋아한다.”

die Sklaven-Moral bedarf, um zu entstehn, immer zuerst einer Gegen- und Außenwelt, sie bedarf, physiologisch gesprochen, äußerer Reize, um überhaupt zu agieren – ihre Aktion ist von Grund aus Reaktion.

니체는 이 개념으로 무엇을 설명했나?

니체는 르상티망을 도덕의 역사를 푸는 열쇠로 썼다. 르상티망이 창조적이 되어 가치를 낳을 때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이 시작되고, 강자의 자기 긍정에서 나온 ‘좋음과 나쁨’ 대신 약자의 원한에서 나온 ‘선과 악’이 자리 잡는다. 복수의 충동이 겉으로 풀리지 못하고 신에게, 나중에는 국가의 형벌에 맡겨지면서 인간은 안으로 파고들고, 죄와 양심과 같은 근대적 도덕 개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니체는 근대 유럽의 민주주의가 내세운 ‘평등에의 의지’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보았다.

니체가 이 개념을 다듬은 계기 가운데 하나는 오이겐 뒤링과의 대결이었다. 뒤링은 1865년 『삶의 가치』에서 정의를 비롯한 모든 법 개념을 복수 감정에서 끌어냈는데, 니체는 이를 거꾸로 뒤집어 정의를 르상티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르상티망의 산물이라고 공격했다. 『도덕의 계보』 제2논문 11절에서 그는 르상티망이라는 식물이 지금 “아나키스트와 반유대주의자들 사이에서 가장 아름답게 핀다”고 쓰고, 그들이 “복수를 정의의 이름으로 성스럽게 하려는” 시도를 되풀이한다고 비판했다. 뒤링은 반유대주의자이자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준 인물이었고, 엥겔스가 『반뒤링론』으로 비판한 바로 그 사람이다.

diese Pflanze blüht jetzt am schönsten unter Anarchisten und Antisemiten

니체 이후 이 개념은 어떻게 쓰였나?

독일의 철학자 막스 셸러는 1912년 「도덕의 구성에서 르상티망」(Das Ressentiment im Aufbau der Moralen)에서 니체의 개념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했다. 셸러는 기독교 사랑의 윤리가 르상티망에서 나왔다는 니체의 의심에는 반대하면서도, 르상티망 자체는 전형적인 근대 현상이라고 보았다. 사람들 사이에 형식적 평등은 있으나 권력과 교양, 재산과 지위의 실제 차이는 큰 사회에서, 특히 섬기고 지배받는 이들에게 이런 영혼의 자기 중독이 퍼진다는 것이다. 이 분석은 뒤에 사회학과 정치학에서 원한의 정치를 설명하는 데 자주 인용되었다.

프랑스의 질 들뢰즈는 1962년 『니체와 철학』에서 르상티망을 능동적인 힘이 반동적인 힘에 지배되는 유형으로 정리했고, 이 읽기는 1960년대 이후 프랑스 철학의 니체 수용에서 중심을 이루었다. 오늘날에는 포퓰리즘과 극우 운동을 분석할 때 르상티망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이런 쓰임은 니체보다 셸러의 사회학적 해석에 더 가깝다.

마르크스주의는 르상티망 비판에 어떻게 답했나?

니체가 르상티망의 가장 뚜렷한 현대적 사례로 꼽은 것은 사회주의였다. 1888년 『안티크리스트』 57절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오늘날의 천민 가운데 내가 가장 미워하는 것은 누구인가? 사회주의자 천민, 찬달라의 사도들이다. 그들은 노동자의 본능과 즐거움, 자기의 작은 존재에 만족하는 감정을 허물어뜨리고, 그를 시기하게 만들고 복수를 가르친다.” 니체가 보기에 노동운동의 정의 요구는 약자의 원한이 도덕의 옷을 입은 것이었다.

Das Sozialisten-Gesindel, die Tschandala-Apostel, die den Instinkt, die Lust, das Genügsamkeits-Gefühl des Arbeiters mit seinem kleinen Sein untergraben – die ihn neidisch machen, die ihn Rache lehren...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가 도덕적 분노나 복수심이 아니라 생산관계의 분석 위에 서 있다고 답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 개인을 악인으로 비난하지 않고 그를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로 다루었으며, 착취를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잉여가치가 생산되는 구조의 문제로 설명했다. 프란츠 메링은 1891년 니체가 도덕의 상대성에서 “엥겔스와 마르크스처럼 도덕의 역사적 제약성이 아니라 모든 도덕의 무조건적 무가치”를 끌어냈다고 비판했다. 억압받는 이들의 분노를 원한이라는 심리로 환원하면 그 분노를 낳은 사회적 조건은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쪽 반론의 요지다. 다른 한편 20세기의 일부 좌파 사상가들은 혁명 운동이 해방의 기획 대신 원한과 보복의 정치로 굳어질 위험을 경고하면서 니체의 이 개념을 자기비판의 도구로 쓰기도 했다.

관련 인물

출처

  1. zeno.org
  2. zeno.org
  3. zeno.org
  4. de.wikipedia.org
  5. 위키백과 (영문)
  6.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