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독립 활동 독일 독일 1788–1860 ○ 자연사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쓴 염세주의 철학자

단치히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철학자. 아버지의 유산으로 생계 걱정 없이 괴팅겐과 베를린에서 공부했고, 1819년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펴냈다. 1820~1821년 베를린 대학에서 헤겔과 같은 시간에 강의를 열었으나 청강생이 거의 없었고, 그 뒤 대학 철학을 경멸하며 재야 학자로 지냈다. 1833년부터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해 죽을 때까지 살았다. 세계의 본질을 맹목적인 의지로 보고 삶을 고통으로 규정한 그의 철학은 1851년 『여록과 보유』가 읽히면서 뒤늦게 이름을 얻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는 칸트에게서 출발해, 우리가 아는 세계는 주관에 나타난 표상일 뿐이고 그 밑의 물자체는 맹목적이고 끝없는 의지라고 보았다. 의지는 늘 결핍에서 움직이므로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이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예술의 관조와 동정, 그리고 의지 자체를 부정하는 금욕에 있다고 했다. 우파니샤드와 불교를 높이 산 점에서도 당대 독일 철학과 달랐다. 1819년 초판은 거의 팔리지 않았으나 1844년 둘째 권을 더한 2판, 1859년 3판으로 크게 늘어났다. 『여록과 보유』(1851)가 성공한 뒤에야 명성을 얻었고, 그 영향은 니체와 바그너, 부르크하르트, 비트겐슈타인에게 미쳤다.

남색에 관한 보유와 울리히스

1859년 3판에서 쇼펜하우어는 「성애의 형이상학」 장에 남색을 다룬 보유를 덧붙였다. 그는 남색을 자연에 반하는 혐오스러운 일이라 부르면서도, 모든 시대와 민족에 두루 있고 뿌리 뽑히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것이 인간 본성 자체에서 나온다는 증거라고 인정했고, 자연이 생식력이 약한 남자가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려는 장치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카를 하인리히 울리히스는 이 대목을 『인클루사』(1864)에서 처음 다루었고, 『멤논』(1868) §45에서는 남색이 “어떻게든 인간 본성 자체에서 나온다”는 문장을 우르닝의 성향이 타고난 것임을 뒷받침하는 학문적 권위의 증언으로 인용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특수한 가설에는 동의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