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hilismus · 1880–1888

허무주의

Nihilism

모든 가치와 의미, 진리의 근거를 부정하거나 그것이 무너졌다고 보는 태도. 니체는 1880년대 유고에서 허무주의를 “최고의 가치들이 스스로 가치를 잃는 것”으로 정의하고, 낡은 가치를 부수는 힘의 표시인 능동적 허무주의와 힘이 지쳐 모든 것을 체념하는 수동적 허무주의를 구분했다. 니체 이전에는 1862년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 이후 러시아의 급진적 청년 세대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였다.

상세

니체에게 허무주의란 무엇이었나?

니체는 허무주의를 자신이 만든 사상이 아니라 다가오는 시대의 병으로 보았다. 1885~1886년의 메모는 이렇게 시작한다. “허무주의가 문 앞에 서 있다. 이 가장 섬뜩한 손님은 어디서 우리에게 오는가?” 1887년 가을의 메모는 그 뜻을 짧게 정의한다. “허무주의란 무엇을 뜻하는가? 최고의 가치들이 스스로 가치를 잃는다는 것. 목표가 없다. ‘무엇을 위해?’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없다.”

Was bedeutet Nihilismus? – Daß die obersten Werte sich entwerten. Es fehlt das Ziel. Es fehlt die Antwort auf das »Wozu?«.

이 정의에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라는 말이다. 니체가 보기에 기독교 도덕은 진실함을 최고의 덕으로 가르쳤고, 그 진실함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 사람들은 신과 도덕 자체가 지어낸 것임을 알아 버렸다. 최고의 가치가 바깥의 적에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제 논리에 따라 스스로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같은 메모에서 허무주의의 원인을 “사회적 곤궁”이나 “생리적 퇴화”, 부패에서 찾는 것은 오류라고 단언했다. 고통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고, 허무주의는 바로 “아주 특정한 해석, 곧 기독교적·도덕적 해석 안에”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신의 죽음이 그 결정적 계기였다.

in einer ganz bestimmten Ausdeutung, in der christlich-moralischen, steckt der Nihilismus.

능동적 허무주의와 수동적 허무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니체는 허무주의가 “두 가지 뜻을 지닌다”고 썼다. 하나는 “정신의 힘이 높아졌다는 표시로서의 허무주의, 곧 능동적 허무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의 힘이 쇠퇴하고 물러선 것으로서의 허무주의, 곧 수동적 허무주의”다. 앞의 것은 정신이 너무 강해져서 지금까지의 목표와 신념이 더는 맞지 않게 된 상태다. 이때 허무주의는 “파괴의 폭력적인 힘”으로서 가장 큰 힘에 이른다. 뒤의 것은 더는 공격하지 않는 “지친 허무주의”이며, 니체는 그 가장 유명한 형태로 불교를 들었다.

A. Nihilismus als Zeichen der gesteigerten Macht des Geistes: der aktive Nihilismus.
B. Nihilismus als Niedergang und Rückgang der Macht des Geistes: der passive Nihilismus.

니체 자신은 허무주의를 끝까지 겪고 그 너머로 가야 한다고 보았다. 낡은 가치가 무너진 것을 슬퍼하며 체념하거나 그 빈자리를 새로운 우상으로 서둘러 메우는 대신, 그 무너짐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새 가치를 세우는 것이다. 그가 ‘모든 가치의 전도’라고 부른 기획, 그리고 영원회귀와 위버멘쉬의 사상은 모두 이 극복을 위한 것이었다. 다만 이 메모들은 니체가 책으로 내지 않은 유고이고, 그가 정신을 잃은 뒤 누이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와 페터 가스트가 『권력의지』라는 편집본으로 묶으면서 순서와 맥락이 바뀌었다. 조르조 콜리와 마치노 몬티나리의 비판 전집이 나온 뒤에야 연구자들은 이 메모들을 쓴 순서대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의 니힐리스트는 니체의 허무주의와 어떻게 다른가?

‘허무주의’라는 말은 니체보다 오래되었다. 철학에서 부정을 절대화한다는 뜻으로는 1799년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가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 썼고, 1840년대에는 청년헤겔파가 무신론 때문에 니힐리스트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이 말이 유럽 전체에 퍼진 것은 이반 투르게네프가 1862년 소설 『아버지와 아들』에서 주인공 바자로프를 니힐리스트라고 부르면서부터다. 소설에서 젊은 아르카디는 이렇게 설명한다. “니힐리스트란 어떤 권위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아무리 존경받는 원칙이라도 하나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늙은 귀족 파벨은 “전에는 헤겔주의자가 있더니 이제는 니힐리스트로구나” 하고 비꼰다.

Нигилист — это человек, который не склоняется ни перед какими авторитетами, который не принимает ни одного принципа на веру, каким бы уважением ни был окружен этот принцип.

러시아의 니힐리스트는 1861년 농노 해방이 기대에 못 미친 뒤 등장한 1860년대 세대, 곧 ‘60년대인’이었다. 이들은 귀족적인 1840년대 자유주의자들을 비웃고 자연과학과 유물론, 공리주의를 앞세워 종교와 가족, 전제정을 공격했다. 드미트리 피사레프는 이 입장을 ‘리얼리스트’라고 불렀고,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1863)는 그 세대의 교과서가 되었다. 이들에게 부정은 가치 자체의 부정이 아니라 낡은 권위를 걷어 내고 과학과 인민의 이익 위에 새 사회를 세우려는 것이었다. 니체가 말한 허무주의, 곧 최고 가치들의 붕괴와는 방향이 거의 반대였다.

이 흐름은 1870년대 나로드니키 운동으로 이어졌다. ‘인민 속으로’ 운동과 토지와 자유, 인민의 의지의 활동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60년대 니힐리스트의 후배였고, 세르게이 네차예프 같은 음모가도 이 환경에서 나왔다. 1881년 인민의 의지가 알렉산드르 2세를 암살한 뒤 서유럽에서는 러시아의 혁명가라면 누구든 니힐리스트라고 불렀고, 이 말은 정치적 테러와 같은 뜻이 되었다. 혁명가들 자신은 대개 사회혁명가라고 자칭했다. 니체는 이 러시아어 용법을 알고 있었고 1880년 무렵부터 이 말을 자기 개념으로 쓰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주의는 허무주의를 어떻게 다루었나?

러시아 마르크스주의는 니힐리스트 세대를 유산으로 이어받았다. 게오르기 플레하노프와 블라디미르 레닌은 체르니솁스키에게서 각각 ‘엄청난’, ‘압도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레닌이 1902년 자기 책에 체르니솁스키 소설과 같은 제목 『무엇을 할 것인가?』를 붙인 것도 그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기에 60년대 니힐리스트의 부정은 봉건적 권위에 맞선 계몽의 부정이었다.

니체의 허무주의 진단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니체는 허무주의의 원인이 사회적 곤궁에 있지 않다고 못 박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바로 그 반대 방향에서 니체를 읽었다. 죄르지 루카치는 『이성의 파괴』에서 셸링의 말년 철학에서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니체, 생철학을 거쳐 파시즘에 이르는 비합리주의의 계보를 그리고, 니체의 허무주의를 계급투쟁 앞에서 출구를 잃은 제국주의 시대 부르주아지의 세계관으로 해석했다. 가치의 붕괴는 정신사의 운명이 아니라 특정한 계급이 역사적 전망을 잃은 결과라는 것이다.

반대로 마르틴 하이데거는 허무주의를 서양 형이상학 전체의 역사로 보고, 니체를 그 정점에 놓았다. 니체가 권력의지라는 형이상학적 원리를 세움으로써 허무주의를 극복하기는커녕 완성했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허무주의는 실존주의와 프랑크푸르트학파, 그리고 1980년대 이후의 탈근대 논쟁에서 근대 문명을 진단하는 핵심어로 계속 쓰였다.

관련 인물

출처

  1. zeno.org
  2. zeno.org
  3. de.wikipedia.org
  4. ru.wikisource.org
  5. 위키백과 (영문)
  6. de.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