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회귀
Eternal Recurrence
지금 이 삶이 똑같은 순서로 셀 수 없이 되풀이된다는 생각. 니체는 1881년 8월 스위스 실바플라나 호숫가에서 이 생각을 얻었다고 썼고, 『즐거운 학문』 341절에서 처음 내놓은 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중심 사상으로 삼았다. 니체에게 이것은 우주론적 주장이라기보다 “이 삶을 다시 원하는가”를 묻는 시험이자 삶을 긍정하는 최고의 형식이었다. 같은 생각은 고대 피타고라스학파와 스토아학파에도 있었다.
상세
니체는 이 생각을 어떻게 얻었나?
니체는 1888년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에서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근본 구상인 영원회귀 사상, 도달할 수 있는 긍정의 최고 형식”은 1881년 8월에 속한다. “그것은 ‘인간과 시간의 저편 6000피트’라는 서명과 함께 한 장의 종이에 휘갈겨졌다. 그날 나는 실바플라나 호숫가의 숲을 걷고 있었다. 수를레이 가까이 피라미드처럼 솟은 거대한 바위 옆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 이 생각이 떠올랐다.” 스위스 엥가딘의 실스마리아는 그 뒤 니체가 여름마다 머문 곳이 되었다.
er ist auf ein Blatt hingeworfen, mit der Unterschrift: »6000 Fuß jenseits von Mensch und Zeit«. Ich ging an jenem Tage am See von Silvaplana durch die Wälder; bei einem mächtigen pyramidal aufgetürmten Block unweit Surlei machte ich halt.
니체가 이 생각을 처음 책으로 내놓은 곳은 1882년 『즐거운 학문』의 제4권 끝, 「가장 무거운 무게」라는 제목의 341절이다. 바로 다음 342절이 차라투스트라의 등장으로 끝나니, 이 생각은 『차라투스트라』로 넘어가는 문턱에 놓인 셈이다.
「가장 무거운 무게」는 무엇을 묻나?
341절은 하나의 가정으로 시작한다. “어느 낮이나 밤에 한 악령이 너의 가장 외로운 고독 속으로 몰래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겠는가.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온 이 삶을 너는 다시 한 번, 그리고 셀 수 없이 여러 번 더 살아야 한다. 거기에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모든 고통과 모든 기쁨, 모든 생각과 한숨, 네 삶의 이루 말할 수 없이 작고 큰 모든 것이 같은 차례와 순서로 너에게 돌아올 것이다.’” 악령은 덧붙인다.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는 거듭 뒤집히고, 먼지 중의 먼지인 너도 그와 함께 뒤집힌다!”
Dieses Leben, wie du es jetzt lebst und gelebt hast, wirst du noch einmal und noch unzählige Male leben müssen
니체는 묻는다. 너는 땅에 엎드려 이를 갈며 그렇게 말한 악령을 저주하겠는가, 아니면 “너는 신이다. 나는 이보다 더 신성한 말을 들은 적이 없다!”라고 대답할 엄청난 순간을 겪은 적이 있는가. 이 생각이 너를 사로잡는다면 그것은 너를 바꾸어 놓거나 짓눌러 부술 것이고, 모든 일마다 “너는 이것을 다시, 셀 수 없이 여러 번 원하는가?”라는 물음이 가장 무거운 무게로 너의 행동 위에 놓일 것이다. 여기서 영원회귀는 세계가 실제로 되풀이되느냐는 주장이라기보다 자기 삶 전체를 그대로 다시 원할 만큼 긍정할 수 있느냐는 시험이다. 니체는 이 태도를 ‘운명애’(아모르 파티)라고 불렀다.
『차라투스트라』 제3부의 「회복하는 자」에서 차라투스트라의 동물들은 그를 “영원회귀의 교사”라고 부르며 이렇게 노래한다.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구른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에게 이 생각은 처음에 구역질을 일으킨다. 가장 작은 인간, 가장 비루한 것까지 영원히 돌아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사상을 받아들이는 일 자체가 극복의 과정으로 그려진다.
니체 이전과 이후의 영원회귀
모든 것이 되풀이된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되었다. 기원전 4세기에 이미 피타고라스학파 사이에 퍼져 있었고, 스토아학파는 우주가 주기적으로 큰불에 타 없어졌다가 다시 태어나며 매번 똑같은 사건이 되풀이된다고 가르쳤다. 19세기에는 열역학 법칙을 둘러싸고 우주의 끝이 어떠할지 논쟁이 벌어지면서 이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오이겐 뒤링은 이 가설을 비관적이라며 물리쳤고, 프랑스의 혁명가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는 1871년 파리 코뮌 직전에 체포되어 갇힌 감옥에서 쓴 『별들에 의한 영원』(L'Éternité par les astres, 1872)에서 무한한 우주에서는 모든 가능한 조합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영원히 되풀이된다고 주장했다.
니체는 우주론적 증명을 유고에서 여러 번 시도했지만 끝내 출판하지 않았다. 니체 해석사에서 이 사상의 자리는 크게 엇갈렸다. 나치의 니체 해석을 주도한 알프레트 보임러는 영원회귀가 권력의지와 게르만적 위버멘쉬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니체 철학에서 빼 버렸다. 반대로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뢰비트는 이것을 니체 사상의 중심으로 보았고, 질 들뢰즈는 1962년 『니체와 철학』에서 영원회귀를 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의 선별로 새롭게 읽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이 생각을 어떻게 볼 수 있나?
영원회귀가 니체에게 떠오르던 시기에 마르크스주의의 자연철학도 같은 물음과 씨름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75~1876년에 쓴 『자연변증법』 서론에서 열역학이 말하는 우주의 ‘열죽음’에 맞서 물질의 영원한 운동을 내세웠다. “그것은 물질이 움직이는 영원한 순환이다.” 그 순환 속에서 모든 유한한 존재는 사라지지만, 엥겔스는 “물질은 모든 변화 속에서 영원히 같은 것으로 남으며”, 지구에서 그 최고의 꽃인 사유하는 정신을 다시 없애 버릴 바로 그 철의 필연성으로 “다른 곳, 다른 때에 그것을 다시 낳을 것”이라고 썼다.
Es ist ein ewiger Kreislauf, in dem die Materie sich bewegt
엥겔스의 순환과 니체의 회귀는 겉으로 닮았지만 뜻이 다르다. 엥겔스가 말한 것은 똑같은 삶의 반복이 아니라 물질이 끝없이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고 소멸하는 운동이었고, 그 목적은 과학적 유물론을 신학적 창조론과 종말론에서 지키는 것이었다. 니체에게 영원회귀는 개인이 자기 삶을 긍정하는 윤리적 시험이었다. 또 엥겔스가 『반뒤링론』에서 비판한 오이겐 뒤링은 이 가설을 반박한 사람이기도 했다. 발터 벤야민은 1930년대 『파사주 작업』에서 블랑키와 니체의 영원회귀를 나란히 놓고, 새로운 것이 끝없이 쏟아지지만 실은 늘 같은 것이 되풀이되는 상품 사회의 시간 경험을 비추는 이미지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