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학문
The Gay Science
프리드리히 니체가 1882년 8월에 펴내고 1887년 제5권과 서문, 부록 시를 더해 다시 낸 아포리즘 모음집. 제목은 중세 프로방스 음유시인들이 시 짓는 기술을 일컫던 “즐거운 지식(gai saber)”에서 왔다. 제125절 「미친 사람」의 “신은 죽었다”, 제341절에서 처음 물음의 형태로 제시된 영원회귀,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첫머리가 되는 마지막 절이 실려 있어, 니체의 중기 사상을 마무리하고 후기 사상을 여는 책으로 꼽힌다.
상세
왜 “신은 죽었다”는 이 책에서 나왔나?
니체의 문장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신은 죽었다”는 1882년의 『즐거운 학문』에서 처음 나왔다. 흔히 이 말을 무신론자의 선언쯤으로 여기지만, 니체가 이 책에서 그린 장면은 훨씬 불길하다. 제125절 「미친 사람」에서 한 사나이가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시장에 뛰어들어 “나는 신을 찾는다!”고 외친다. 신을 믿지 않는 구경꾼들은 신이 길을 잃었느냐, 이민이라도 갔느냐며 비웃는다. 그러자 그는 그들을 노려보며 말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Gott ist todt! Gott bleibt todt! Und wir haben ihn getödtet!
미친 사람이 묻는 것은 신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다. 유럽인이 이제 기독교의 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면, 그 신 위에 세워져 있던 도덕과 의미와 방향은 어떻게 되는가이다. 그는 우리가 지구를 태양에서 풀어 놓은 것과 같다고, 이제 위도 아래도 없이 끝없는 허무 속을 헤매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등불을 내던지며 “나는 너무 일찍 왔다”고 말한다. 이 엄청난 사건은 아직 오는 중이어서 사람들의 귀에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Ich komme zu früh
이 장면이 뒷날 허무주의 논의, 실존주의, 그리고 20세기 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니체가 말하는 신의 죽음과 그 뒤에 오는 가치의 붕괴는 별도 항목 신의 죽음과 허무주의에서 다룬다. 이 항목은 그 말이 실린 책을 다룬다.
어떻게 쓰였고 어떤 책인가?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니체는 1881년 초여름 『아침놀』을 낸 직후 그 속편을 구상했고, 1881~1882년 겨울을 제노바에서 보내며 세 권 분량을 썼다. 같은 1881년 8월 스위스 실스마리아에서 영원회귀의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고, 차라투스트라라는 인물에 대한 구상도 시작되었다. 1882년 봄 그는 모은 원고를 『즐거운 학문』이라는 제목으로 엮기로 했다. 눈이 거의 멀었던 그는 누이 엘리자베트의 도움으로 인쇄용 원고를 만들었고, 루 살로메와 파울 레를 만나던 무렵 친구 하인리히 쾨젤리츠(페터 가스트)와 함께 교정을 보았다. 책은 1882년 8월 중순 켐니츠의 슈마이츠너 출판사에서 1000부가 나왔지만, 1886년까지 겨우 200부쯤 팔렸다.
초판은 독일어 운문 「농담, 간계, 복수」 63편과 네 권 342절로 되어 있었다. 제4권의 제목은 「성 야누아리우스」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선악의 저편』을 낸 뒤인 1886년 가을에 서문과 제5권 「우리 두려움 없는 자들」(41절)을 새로 쓰고, 시 모음 「포겔프라이 왕자의 노래」를 부록으로 붙여 1887년 라이프치히의 프리치 출판사에서 다시 냈다. 이때 “la gaya scienza”라는 부제도 달았다. 제목은 11세기 프로방스 음유시인들의 “즐거운 지식(gai saber)”, 곧 시 짓는 기술에서 왔다. 니체는 뒷날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이 말이 가수와 기사와 자유정신이 하나였던 프로방스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독일어 Wissenschaft는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엄밀한 학문적 탐구 일반을 뜻하므로, 이 제목은 엄격한 앎과 예술적 명랑함을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였다.
책은 인식과 학문의 문제(제1권), 예술과 예술가(제2권), 종교와 도덕(제3권), 삶의 긍정(제4권), 그리고 허무주의와 유럽의 미래(제5권)를 짧고 긴 아포리즘으로 다룬다. 니체 자신은 이 책을 『아침놀』과 함께 가장 개인적인 책이라 불렀다.
신의 죽음은 책 안에서 어떻게 이어지나?
“신은 죽었다”는 제125절보다 앞선 제108절 「새로운 싸움」에서 처음 짧게 나온다. 붓다가 죽은 뒤에도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동굴에서 그의 그림자를 보여 주었듯이, 신은 죽었지만 인간의 습성으로 보아 앞으로도 수천 년 동안 그의 그림자를 보여 주는 동굴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그림자까지도 이겨 내야 한다!”
Und wir — wir müssen auch noch seinen Schatten besiegen!
신의 그림자란 신앙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신학적 사고방식, 곧 세계에 목적과 질서가 있다는 믿음, 보편적 도덕, 진리 자체의 절대적 가치 같은 것이다. 1887년에 덧붙인 제5권은 첫 절인 제343절에서 이 주제로 돌아온다. 니체는 “가장 큰 최근의 사건”을 “기독교의 신에 대한 믿음이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이 사건이 이제 막 유럽에 첫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고 썼다.
dass der Glaube an den christlichen Gott unglaubwürdig geworden ist
여기서 신의 죽음은 형이상학적 주장이 아니라 문화사적 진단이다. 그리고 니체는 그 결과가 우울한 몰락만이 아니라 “우리 철학자들과 자유정신들”에게는 새벽처럼 열린 바다가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영원회귀와 차라투스트라는 어떻게 예고되었나?
1882년판의 끝인 제4권은 삶의 긍정을 다룬다. 제276절에서 니체는 새해의 소망으로 “필연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더 배우고 싶다며 이렇게 쓴다. “운명애(아모르 파티), 이것이 이제부터 나의 사랑이 되기를!”
Amor fati: das sei von nun an meine Liebe!
제341절 「가장 무거운 짐」은 영원회귀를 처음으로, 그러나 물음의 형태로 내놓는다. 어느 날 악마가 가장 외로운 순간에 찾아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을 똑같은 순서로 셀 수 없이 다시 살아야 한다고, “삶의 영원한 모래시계는 거듭 뒤집힌다”고 말한다면 너는 이를 갈며 그를 저주하겠는가, 아니면 이보다 신성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답하겠는가.
Die ewige Sanduhr des Daseins wird immer wieder umgedreht
니체는 이 물음, 곧 “너는 이것을 다시 한 번, 그리고 셀 수 없이 여러 번 원하는가?”가 모든 행동 위에 가장 무거운 짐으로 놓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 생각은 별도 항목 영원회귀에서 설명한다. 이어지는 마지막 제342절 「비극이 시작된다」에서 서른 살에 고향과 호수를 떠나 산속에서 10년을 보낸 차라투스트라가 해에게 말을 건네고 사람들에게 내려간다. 이 절은 거의 그대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첫머리가 되었다.
누가 어떻게 읽었나?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보면 니체의 신의 죽음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주제다. 청년 마르크스는 1844년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에서 독일에서는 종교 비판이 본질적으로 끝났으며 종교 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라고 썼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이래 청년헤겔파에게 신은 인간이 자기 본질을 바깥에 투사한 것이었고, 신을 걷어 내는 일은 인간 해방의 출발점이었다. 니체의 진단은 방향이 다르다. 그에게 신의 죽음은 해방의 완성이 아니라, 신 없이도 기독교의 도덕을 붙들고 있는 근대 문화 전체의 위기다. 그는 『선악의 저편』 제202절에서 “민주주의 운동은 기독교 운동의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썼고, 사회주의와 평등의 이상도 신의 그림자의 하나로 보았다.
이 대립은 러시아 혁명 운동 안에서도 메아리쳤다. 1900년대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와 막심 고리키의 신건설론은 신이 죽은 자리에 인류 자신을 섬기는 새 종교를 세우려 했고, 레닌은 이를 종교와의 타협이라며 날카롭게 비판했다. 게오르크 루카치는 『이성의 파괴』에서 니체의 종교 비판을 “간접적 변호론”, 곧 자본주의를 정면으로 옹호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막는 비합리주의의 한 형태로 읽었다.
다른 쪽에서는 이 책이 실존철학의 원천이 되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1943년의 강연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숲길』, 1950)에서 이 말을 서양 형이상학 전체가 허무주의로 완성되는 사건으로 해석했다. 알베르 카뮈와 장폴 사르트르는 신 없는 세계에서 인간이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를 이어받았다. 『즐거운 학문』을 엮은 조르조 콜리는 이탈리아어판 해설에서 이 책이 니체의 저작 가운데 예술과 학문이 드물게 균형을 이룬 “중심”의 책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