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포이어바흐

Ludwig Feuerbach
독립 활동 독일 독일 1804–1872 ○ 폐렴

『기독교의 본질』에서 신을 인간 본질의 투사로 읽어 헤겔과 마르크스 사이의 다리가 된 유물론 철학자

1804년 바이에른 란츠후트에서 법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1825년 베를린에서 헤겔에게 배웠다. 에를랑겐 대학 사강사로 헤겔 철학을 가르쳤지만 1830년 익명으로 낸 『죽음과 불멸에 관한 생각』의 추문으로 대학의 길이 막혔고, 1837년부터 브루크베르크에서 자유 저술가로 살았다. 1839년 헤겔 관념론과 공개적으로 갈라섰고, 1841년 『기독교의 본질』에서 종교는 인간이 제 유적 본질을 신에게 투사해 섬기는 자기소외라고 주장했다. 청년헤겔파의 이론적 지도자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으나,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1845)에서 그의 유물론이 실천을 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1869년 사회민주노동자당에 입당했고 1872년 뉘른베르크 근교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포이어바흐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