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Alienation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 곧 노동의 생산물과 노동 활동과 사회관계가 그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와 낯선 힘으로 맞서고 그를 지배하게 되는 상태. 카를 마르크스는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개념을 물려받아, 자본주의의 임금노동자가 노동의 생산물, 노동 활동 자체, 인간다운 본질, 다른 사람들에게서 소외된다고 분석했다. 이 원고가 1932년에야 출간되면서, 소외가 마르크스 사상 전체를 꿰는 열쇠인지를 두고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와 알튀세르 사이에 큰 논쟁이 벌어졌다.
상세
일상어 ‘소외’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말에서 ‘소외’는 흔히 무리에서 따돌려지거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일을 뜻한다. ‘소외 계층’이라고 할 때가 그렇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소외는 이와 결이 다르다. 독일어 원어 Entfremdung은 ‘낯선’(fremd)이라는 낱말에서 나왔고, 원래 내 것이던 것이 낯설어지는 과정을 가리킨다. 핵심은 낯설어진 것이 남이 아니라 바로 내가 만든 것이라는 데 있다. 내가 일해서 만든 물건, 내가 하는 일, 사람들이 함께 만든 제도가 거꾸로 나를 마음대로 부리는 바깥의 힘처럼 버티고 선다. 독일의 한 미학자는 그래서 소외를 ‘스스로 불러온 낯설어짐’이라고 정리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인류 전체든, 소외된 쪽 자신의 활동이 소외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말의 뿌리는 라틴어 alienatio다. 본래 물건을 남의 손에 넘기는 일, 곧 양도를 뜻했다. 영국 고전 정치경제학은 생산자의 손을 떠나 ‘양도’되면서 생산자에게 낯설어지는 물건을, 18세기 사회계약론은 처음 지녔던 자유를 개인에게 낯선 권력(사회나 군주)에게 넘겨주는 일을 이 말로 불렀다. 영어 alienation이 오늘날에도 토지 같은 재산의 양도를 뜻하는 법률 용어로 쓰이는 까닭이다.
미리 알아 둘 것이 하나 더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소외는 기분의 이름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즘의 설명을 빌리면, 사회가 사람들이 인간다운 능력을 펼치지 못하게 막을 때 ‘객관적 소외’가 있고, 사람들이 자기 삶을 공허하고 뜻 없다고 느끼는 ‘주관적 소외’는 거기서 흘러나온다. 그러니 스스로는 아무 불만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소외되어 있을 수 있다. 20세기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가 파고든 것이 바로 이 경우다.
헤겔과 포이어바흐에게서 무엇을 물려받았나?
소외는 마르크스가 처음 지어낸 말이 아니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에게 소외는 자기소외였다. 자기를 인식하는 일이 곧 자기 인식이듯, 자기가 활동해서 만든 현실을 처음에는 낯선 바깥 세계로 마주했다가 그것이 제 활동의 산물임을 깨닫고 되찾는 과정이다. 주체와 객체가 갈라졌다가 점점 더 깊이 서로 스며드는 이 운동 끝에서, 헤겔은 소외의 지양을 현실과의 참된 화해에서, 그리고 그 화해를 개념으로 파악하는 철학에서 찾았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이 틀을 종교 비판으로 돌렸다. 그는 『기독교의 본질』(1841)에서 종교란 인간이 자기 본질을 자기 바깥의 낯선 존재에게 투사한 것이라고 보았다. 신은 소외된 인간의 본질이고, 신학은 인간학으로 풀려야 한다. 종교는 이승의 소외를 저승에서 보상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 두 사람에게서 틀을 빌려 와서 그것을 땅 위로 끌어내렸다. 소외의 자리를 정신이나 종교가 아니라 노동에서, 그것도 노동력을 파는 임금노동자의 노동에서 찾은 것이다. 그는 종교와 노동을 나란히 놓았다. “사람이 신에게 더 많이 맡길수록 자기 안에는 더 적게 남는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로 대상에 자기 생명을 쏟아붓지만, 그 생명은 이제 그의 것이 아니라 대상의 것이 된다.
1844년 원고의 네 가지 소외는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1844년 4월에서 8월 사이에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한 원고를 썼다. 생전에 출간되지 않은 미완성 메모 묶음으로, ‘파리 수고’라고도 불린다. 그 가운데 ‘소외된 노동’을 다룬 대목이 소외론의 고전이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스스로 인정하는 눈앞의 사실에서 출발한다. 노동자는 부를 더 많이 생산할수록, 생산의 힘과 규모가 커질수록 더 가난해진다. 사물의 세계가 값을 더할수록 인간의 세계는 값을 잃는다.
첫째는 노동의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다. 노동이 만들어 낸 대상은 노동자에게 “낯선 존재로서, 생산자에게서 독립한 힘으로서” 맞선다.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 마르크스의 말로 ‘대상화’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정치경제학이 그리는 조건, 곧 사적 소유가 지배하는 조건에서 노동의 실현이 노동자의 ‘탈실현’으로, 대상화가 대상의 상실이자 대상에 대한 예속으로, 만든 것을 제 것으로 삼는 일이 소외이자 외화(바깥으로 내줌)로 나타난다는 데 있다.
둘째는 노동 활동 자체로부터의 소외다. 생산물이 낯설다면 그것을 만드는 활동부터 이미 낯설다. 노동은 노동자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고, 그래서 “노동자는 노동 밖에서야 비로소 자기 곁에 있다고 느끼고, 노동 안에서는 자기 밖에 있다고 느낀다.” 그의 노동은 자발적이지 않고 강요된 것, “강제 노동”이다. 노동은 필요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노동 바깥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 결과 사람은 먹고 마시고 자식을 낳는 동물적 기능에서만 자유롭다고 느끼고, 인간적 기능에서는 오히려 동물처럼 느낀다. 마르크스의 말로는 “동물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이 되고, 인간적인 것이 동물적인 것이 된다.”
셋째는 유적 존재로부터의 소외다. ‘유적 존재’(Gattungswesen)는 포이어바흐에게서 온 말로, 사람은 자기가 속한 인류라는 ‘유’(類)를 의식하고 그 유에 걸맞게 활동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마르크스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그래서 자유롭게 생명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고 보았다. 동물도 집을 짓지만 당장 필요한 것만 만든다. 사람은 어떤 종의 척도에 맞춰서도 만들 줄 알고,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서도” 빚는다. 소외된 노동은 이 관계를 뒤집는다. 의식적 존재인 사람이 바로 그 때문에 자기 생명 활동과 본질을 그저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넷째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소외다. 사람이 자기 노동의 생산물과 활동과 유적 본질에서 소외되면, 그 직접적 결과로 사람은 사람에게서 소외된다. 노동의 생산물이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노동자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이고, 노동자가 자기 활동을 부자유한 것으로 대한다면 그는 그 활동을 다른 사람의 지배와 강제 아래 있는 활동으로 대하는 셈이다. 마르크스는 종교에서도 같은 구조를 본다. 종교적 자기소외는 평신도와 사제의 관계로 나타난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흔한 생각 하나를 뒤집는다. 사적 소유가 있어서 소외된 노동이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거꾸로 사적 소유가 “외화된 노동의 산물이자 결과, 필연적 귀결”이라고 썼다. 그래서 그에게 공산주의는 재산을 고루 나누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사적 소유를 시샘하며 모두를 똑같이 끌어내리려는 ‘조야한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참된 공산주의를 “인간의 자기소외인 사적 소유의 적극적 지양”, 곧 사람이 자기 본질을 실제로 되찾는 일로 규정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소외를 버렸는가?
1844년 원고는 마르크스 생전에 출간되지 않았다. 1932년 모스크바의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 편찬 사업으로 처음 세상에 나왔고, 다비드 랴자노프 아래서 원고를 판독한 사람 가운데 죄르지 루카치가 있었다. 그런데 『자본』에는 소외라는 말이 두드러지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청년 마르크스’와 ‘성숙한 마르크스’가 같은 사람인가를 두고 오래 논쟁이 벌어졌다.
한쪽은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다. 이들은 소외가 초기 저작과 후기 저작을 함께 이끄는 실마리이고, 소외를 빼면 『자본』의 핵심 개념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근거로 드는 것이 1857~58년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이다. 이 원고는 1939년 모스크바에서 처음 나왔다가 1953년에야 쉽게 구할 수 있는 판본이 나왔는데, 초기의 헤겔적 휴머니즘과 후기 경제학을 잇는 고리로 읽혔다. 또 『자본』의 ‘상품 물신성’, 곧 사람이 만든 것이 통제를 벗어나 독립한 듯 보이며 사람을 억누르는 현상은 소외 그 자체는 아니어도 소외가 취하는 한 형태로 읽힌다.
다른 쪽은 루이 알튀세르다. 그는 1845년 무렵,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처음 드러나는 인식론적 절단이 마르크스 사상을 둘로 가른다고 보았다. 초기 저작의 휴머니즘은 윤리 이론이고, 후기의 ‘과학적’ 이론과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 성숙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사회관계를 구조들 사이의 관계로 그리며, 거기서 개인이나 계급은 역사의 ‘주체’ 노릇을 하지 않는다. 알튀세르에게 휴머니즘은 각 개인 안에 보편적 ‘인간 본질’이 있다고 가정하는 부르주아 개인주의 철학이고, 그런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주의 휴머니즘도 윤리적인, 그러므로 이데올로기적인 현상으로 보았다. 소련 공식 철학은 이미 1844년 원고를 마르크스가 막다른 길에 들어섰던 ‘초기 저작’으로 치부하며 대체로 무시했는데, 알튀세르는 다른 길로 같은 엄한 평가를 물려받은 셈이다.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은 이 논쟁의 입장을 셋으로 정리했다. 첫째는 1844년 원고와 『자본』 사이에 차이가 없고 『자본』의 핵심이 이미 원고에 다 있다고 보는 입장, 둘째는 원고가 소외된 노동 문제를 윤리적·인간학적·철학적 차원까지 더 ‘전체적으로’ 다룬다고 보고 두 마르크스를 대립시키거나 원고에 비추어 『자본』을 다시 읽는 입장, 셋째는 원고의 소외론이 『자본』의 경제 분석과 모순될 뿐 아니라 청년 마르크스가 노동가치론을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셋째 입장의 극단에서 소외는 마르크스가 과학적 분석에 이르기 위해 넘어서야 했던 ‘마르크스 이전’의 개념이 된다.
어떤 입장인지 가늠하려면 몇 가지를 물어보면 된다. 비판의 잣대로 ‘인간 본질’이나 유적 존재를 쓰는가? 『자본』의 물신성과 자본의 지배를 소외의 성숙한 형태로 읽는가, 소외와 무관한 새로운 개념으로 읽는가? 변화의 실마리를 사람들의 의식과 실천에서 찾는가, 생산양식과 계급 구조의 분석에서 찾는가? 정치적 귀결도 갈린다. 휴머니즘 쪽은 자본주의뿐 아니라 노동자가 생산을 통제하지 못하는 관료적 사회주의도 소외라는 이름으로 비판할 근거를 얻었다. 알튀세르 쪽은 도덕적 호소 대신 구조의 과학적 분석을 앞세우며, 그런 휴머니즘을 이데올로기로 경계했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소외론은 왜 민감한 주제였나?
1956년 니키타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비판한 뒤, 1844년 원고는 동유럽에서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된 근거가 되었다. 헝가리,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사회주의 휴머니즘’ 운동이 일어나 노동자 통제라는 현장의 요구와 초기 마르크스의 철학을 결합했다. 유고슬라비아의 미하일로 마르코비치와 가요 페트로비치는 이것을 ‘프락시스 학파’로 발전시켜 1964년부터 1975년까지 잡지 《프락시스》를 내고 코르출라 섬에서 해마다 토론회를 열었는데, 그 주제가 소외, 물화, 관료제였다. 같은 해 서방에서도 소련의 헝가리 봉기 진압을 계기로 E. P. 톰슨 같은 영국 공산당원과 프랑스 공산당의 이견파가 당을 떠나며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를 내세웠다.
이 주장들의 요지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만으로 소외가 사라지지 않으며,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소외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대편의 평가도 분명했다. 소련과 그 영향 아래 있던 공산당들의 공식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은 마르크스주의를 무엇보다 과학으로 보았고, 초기 저작에 기댄 휴머니즘을 경계했다. 중국에서는 1979년 중국어판 전집으로 1844년 원고가 처음 소개된 뒤, 1983년 2월 저우양과 왕뤄수이 등이 마르크스주의가 휴머니즘을 거쳐 발전했다는 글을 내놓았다. 당 이론가 후차오무는 이를 부르주아적 왜곡이라고 반박했고, 논쟁 직후 왕뤄수이 등이 물러났으며, 같은 해의 정신오염 반대 운동이 철학 논쟁을 개혁·휴머니즘 흐름 전반에 대한 보수적 운동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논쟁의 밑바닥에는 중국에 휴머니즘이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실현을 뜻하는가, 실패를 뜻하는가라는 물음이 깔려 있었다.
20세기에 소외론은 어떻게 다시 읽혔나?
1844년 원고가 나오기 9년 전인 1923년에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자본』의 상품 물신성을 출발점 삼아 물화론을 폈다. 그는 훗날 원고를 판독한 경험이 자기의 마르크스 해석을 영영 바꾸어 놓았다고 회고했다. 원고가 나오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곧바로 그 의미를 알아보고, 이 원고가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 전체를 새로운 토대 위에 세운다고 썼다. 앙리 르페브르는 노르베르 귀테르망과 함께 1933년 처음으로 원고를 외국어(프랑스어)로 옮겼고, 소외가 노동만이 아니라 소비, 문화, 의미 체계, 언어에까지 미친다고 주장했다.
마르쿠제는 1964년 『일차원적 인간』에서 소외론을 비관적으로 밀고 나갔다.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은 망가진 관계 속에서도 행복해 보이며, 자기의 소외된 처지와 스스로를 ‘동일시’하고 거기서 ‘만족’을 얻는다. 객관적 소외는 그대로인데 그것이 더는 사회적 갈등을 낳지 않는 것이다. 그가 같은 책에서 말한 억압적 탈승화는 이 진단의 한 갈래다. 에리히 프롬은 1955년 『건전한 사회』에서 주로 초기 마르크스에 기대어 인간주의적·민주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그는 서방 자본주의와 소련 공산주의를 모두 사람을 비인간화하는 체제로 거부했고, 이 둘이 낳은 현대인의 보편적 소외를 문제 삼았다. 1961년 미국에서 나온 1844년 원고 영역본에는 프롬의 해설이 붙었다(『마르크스의 인간 개념』).
테오도어 W.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문명이 얻은 자연 지배의 힘이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라는 대가를 치르고서야 얻어진다고 보았다. 프롬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대중이 노동 조건만이 아니라 여가에서도 소외되어 있다고 했다. 소외에 관해서는 노동과 여가의 구분이 더는 없다는 것이고, 그 열쇠말이 문화산업이다. 1968년 무렵 상황주의자들은 소외를 노동자가 생산물에서 멀어지는 일을 넘어 ‘상품의 지배’ 아래 놓인 일상생활 전체의 문제로 넓혔다.
소외 개념에는 비판도 따른다. 작가 카를하인츠 오트는 소외라는 개념이 지나간 상태를 이상화하고 낭만화하는 데 기대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소외를 말하는 순간 한쪽에는 진짜이고 건강한 것, 다른 쪽에는 가짜이고 병든 것이 있다는 믿음이 자라고, 그 이상을 폭력으로 실현하려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20세기가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비판 이론 안에서도 소외 개념은 ‘총체성’이나 ‘물화’ 개념과 함께 근본적인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21세기 독일에서는 라헬 예기의 『소외』(2005)와 하르트무트 로자의 『가속과 소외』(2013)처럼 이 개념을 사회철학의 문제로 다시 꺼내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