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bensphilosophie (philosophie de la vie) · 1880년대–1945

생철학

Lebensphilosophie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까지 독일과 프랑스에서 실증주의와 신칸트주의의 합리주의에 맞서, 개념과 논리로 다 붙잡을 수 없는 ‘삶’ 자체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은 흐름. 독일의 빌헬름 딜타이·게오르크 지멜·루트비히 클라게스, 프랑스의 앙리 베르그송이 대표하고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선구자로 꼽힌다. 실존철학과 후설·하이데거에 영향을 주었지만, 루카치는 이를 제국주의 시대 부르주아의 비합리주의이자 파시즘의 길닦이로 비판했다.

상세

‘삶의 철학’은 무엇에 맞서 나왔나?

19세기 후반 유럽은 산업화와 기술 진보, 자연과학의 승리로 들끓었다. 철학에서도 모든 것을 실험과 측정, 인과법칙으로 설명하려는 실증주의, 인식의 논리적 조건을 따지는 신칸트주의가 강했다. 생철학은 이 흐름에 대한 반발이었다. 살아 있는 인간의 경험에는 계산할 수 없는 느낌, 직관, 충동, 의지, 역사적 체험이 가득한데, 과학의 방법은 그것을 잘게 쪼개 죽은 사물처럼 다룬다는 것이다.

독일어판 위키백과의 정리대로 생철학은 프랑스에서는 앙리 베르그송, 독일에서는 빌헬름 딜타이가 실증주의와 신칸트주의에 맞서는 구상으로 발전시켰다. 대표자들의 생각은 서로 많이 달라서 공통점은 삶이라는 현상을 탐구의 중심에 둔다는 것, 그리고 합리주의·주지주의·과학주의·유물론적 세계관에 반대한다는 것 정도다. 생철학은 엄밀한 학설이라기보다 세기말 지식인 사회를 휩쓴 문화적 분위기에 가까웠고, 청년운동, 유겐트슈틸, 상징주의 문학과도 어울렸다.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왜 선구자로 꼽히나?

생철학이라는 말은 몰랐지만, 이성과 계몽에 대한 비판은 이미 쇼펜하우어와 니체에게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이성이 아니라 맹목적이고 끝없는 ‘삶에의 의지’를 세계의 본질로 보았다. 니체는 이 생각을 뒤집어 이었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의 「자기 극복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한 곳에서 권력에의 의지를 발견했다. 섬기는 자의 의지 속에서도 주인이 되려는 의지를 발견했다.”

Wo ich Lebendiges fand, da fand ich Willen zur Macht; und noch im Willen des Dienenden fand ich den Willen, Herr zu sein.

같은 장에서 삶은 차라투스트라에게 스스로를 늘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쇼펜하우어를 겨냥한다. “삶이 있는 곳에만 의지도 있다. 그러나 삶에의 의지가 아니라, 내가 너에게 가르치노니, 권력에의 의지다!” 『비극의 탄생』에서 이성적인 아폴론적인 것에 맞세운 충동적인 디오니소스적인 것, 삶을 긍정하는 태도는 생철학의 중요한 자극이 되었다.

Nur, wo Leben ist, da ist auch Wille: aber nicht Wille zum Leben, sondern – so lehre ich's dich – Wille zur Macht!

딜타이, 베르그송, 지멜, 클라게스는 무엇을 말했나?

빌헬름 딜타이(1833~1911)는 삶을 철학이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는 로크·흄·칸트가 만든 인식 주체의 혈관에는 진짜 피가 아니라 묽어진 이성만 흐른다고 비꼬며, 의지와 감정까지 아우르는 온전한 체험에서 출발하자고 했다. 그 결과 그는 외부 사실을 ‘설명’하는 자연과학과 인간의 체험과 그 표현을 ‘이해’하는 정신과학을 구분했고, 이 구분은 오늘날까지 쓰인다. 해석학의 방법도 그에게서 크게 발전했다.

프랑스의 앙리 베르그송은 1907년 『창조적 진화』에서 생명의 진화를 기계적 적응이나 미리 정해진 목적의 실현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둘 다 물리치고, 생명을 앞으로 밀어 가는 내적 힘을 말했다. 그는 기계론이 “근원적 약동, 곧 생명을 점점 더 복잡한 형태를 거쳐 점점 더 높은 운명으로 이끌어 갈 내적인 추진력의 가설”을 완전히 배제한다고 비판했다. 이것이 유명한 ‘생명의 약동’(élan vital)이다. 베르그송은 측정 가능한 시간과 구별되는 살아 있는 ‘지속’을 강조했다.

Elle exclut absolument l’hypothèse d’un élan originel, je veux dire d’une poussée intérieure qui porterait la vie, par des formes de plus en plus complexes, à des destinées de plus en plus hautes.

게오르크 지멜은 끊임없이 흐르는 ‘삶’과 그것이 만들어 내지만 굳어 버리는 ‘형식’ 사이의 긴장으로 근대 문화를 분석했다. 루트비히 클라게스는 『영혼의 적대자로서의 정신』(1929~1932)에서 근대 이후 문화를 지배해 온 ‘로고스 중심주의’, 곧 삶을 갈라놓는 이성적 정신을 공격했다.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도 문화를 태어나고 늙어 죽는 생명체로 보는 점에서 생철학의 대중판으로 읽혔다.

생철학은 어디로 이어졌나?

생철학은 실존철학의 대표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에드문트 후설은 말년의 철학에서 ‘생활세계’를 근본 범주로 삼았다.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도 딜타이의 역사적 삶의 이해와 이어져 있다. 영어판 위키백과는 막스 호르크하이머도 생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적는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도구적 이성 비판은 생철학의 문제의식과 겹치는 면이 있지만, 그들은 이성을 버리는 대신 이성의 자기비판을 택했다는 점에서 갈라진다.

생철학은 20세기 전반 크게 유행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뒤 빠르게 힘을 잃었다. 그 큰 이유가 나치즘과의 관계였다. 클라게스의 강한 반이성주의는 나치 이데올로기 안에서 영향력을 가졌고, 이성보다 피와 본능, 공동체의 ‘삶’을 앞세우는 언어는 나치의 선전과 쉽게 섞였다.

마르크스주의는 생철학을 어떻게 비판했나?

가장 체계적인 비판은 죄르지 루카치의 『이성의 파괴』(1954)다. 루카치는 헤겔 이후 독일 부르주아 철학 전체를 계급투쟁에 대한 반동적이고 비합리적인 대답으로 해석하고, 그 계보가 셸링 만년의 철학에서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니체와 생철학을 거쳐 파시즘의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생철학이 이성을 적대하는 비합리주의이며 ‘제국주의 부르주아’의 관점을 대변하고, 그렇게 나치즘의 길을 닦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클라게스를 파시즘의 선구자로, 슈펭글러를 생철학을 전투적 반동의 철학으로 바꾼 인물로 지목했다.

루카치의 비판은 지나치게 일괄적이라는 반론도 받았다. 마르크스주의에 바탕하지 않은 사상은 모두 비합리주의로 몰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삶’, ‘체험’, ‘직관’ 같은 말이 사회적 관계와 역사에 대한 분석을 대신할 때 어떤 정치로 흘러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분석은 니체 수용사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참조점이다.

관련 인물

출처

  1. de.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zeno.org
  4. fr.wikisource.org
  5. de.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