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지
Will to Power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에서 처음 내놓고 『선악의 저편』과 유고에서 넓힌 개념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단지 살아남으려는 것이 아니라 제 힘을 펼치고 더 커지려 한다는 생각이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삶에의 의지’를 고쳐 “삶 자체가 권력의지”라고 썼다. 니체 사후 누이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와 페터 가스트가 같은 제목의 유고 편집본을 냈지만, 그것은 니체가 쓴 책이 아니다.
상세
권력의지는 무엇을 말하나?
‘권력의지’라는 말은 정치권력을 쥐려는 야심처럼 들리지만, 니체가 말한 ‘Macht’는 그보다 훨씬 넓다. 그것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힘, 제 형식을 다른 것에 새기는 힘, 자기를 넘어 자라나는 힘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의 「자기 극복에 대하여」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한 곳에서 나는 권력의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섬기는 자의 의지 속에서도 나는 주인이 되려는 의지를 발견했다.”
Wo ich Lebendiges fand, da fand ich Willen zur Macht; und noch im Willen des Dienenden fand ich den Willen, Herr zu sein.
니체는 이 생각을 스승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맞세웠다.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본질을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로 보았다. 니체는 같은 장에서 “삶이 있는 곳에만 의지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삶에의 의지가 아니라, 내가 너에게 가르치노니, 권력의지다!”라고 고쳐 말한다. 1886년 『선악의 저편』 13절은 이를 생물학의 말로 옮긴다. “살아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제 힘을 내뿜으려 한다. 삶 자체가 권력의지다. 자기보존은 그 간접적이고 가장 흔한 결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다윈주의자들이 생존 투쟁을 말할 때 니체는 생존보다 성장과 지배가 먼저라고 보았다.
Vor allem will etwas Lebendiges seine Kraft auslassen – Leben selbst ist Wille zur Macht –: die Selbsterhaltung ist nur eine der indirekten und häufigsten Folgen davon.
심리학인가, 세계관인가?
권력의지라는 생각의 뿌리는 1881년 『아침놀』에서 인간의 행동 동기를 분석한 대목들에 있고, 유고에서 이 낱말이 처음 나오는 것은 1876~1877년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남의 인정을 바라는지, 왜 동정하거나 금욕하는지를 힘의 느낌으로 설명하는 심리학적 개념이었다. 그런데 『선악의 저편』 36절에서 니체는 이것을 시험 삼아 세계 전체로 넓힌다. 모든 작용하는 힘을 하나로 규정해 본다면 “세계는 바로 ‘권력의지’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1885년 무렵의 유고에서는 이 생각이 우주론으로까지 나아간다.
die Welt auf ihren »intelligiblen Charakter« hin bestimmt und bezeichnet – sie wäre eben »Wille zur Macht« und nichts außerdem.
이 개념을 어떻게 읽을지는 지금도 크게 엇갈린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권력의지를 “모든 존재자의 근거”에 대한 니체의 대답, 곧 서양 형이상학의 마지막 형태로 보았다. 반대로 볼프강 뮐러라우터는 니체가 모든 형이상학을 비판했다는 점을 들어, 권력의지를 하나의 원리가 아니라 서로 다투고 삼키며 잠시 조직을 이루는 ‘여러 권력의지들’로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오늘의 니체 연구는 대체로 뮐러라우터 쪽에 가깝다. 미셸 푸코는 이 생각을 이어받아 『앎의 의지』(1976)에서 앎에의 의지를 권력의지로 이해했다.
『권력의지』라는 책은 무엇이 문제인가?
‘권력의지’는 세 가지를 가리킨다. 첫째는 이 개념이고, 둘째는 니체가 1880년대 후반 ‘모든 가치의 전도’라는 부제로 계획했다가 끝내 쓰지 않은 주저의 제목이다. 니체는 1888년 이 계획을 접었고, 모아 둔 원고의 약 3분의 2는 『우상의 황혼』에, 3분의 1은 『안티크리스트』에 들어갔다. 셋째는 니체가 1889년 정신을 잃은 뒤 누이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와 그의 친구 페터 가스트가 유고 메모를 골라 엮어 1901년에 내고 1906년에 크게 늘린 편집본이다.
이 편집본은 니체가 남긴 메모들을 니체가 정하지 않은 체계에 따라 잘라 붙인 것이다. 엘리자베트는 이를 니체의 ‘주저’로 내세웠고, 오랫동안 많은 독자가 이 책을 통해 권력의지를 이해했다. 나치 철학자 알프레트 보임러는 이 편집본을 바탕으로 권력의지를 게르만적 영웅주의의 원리로 읽었다. 조르조 콜리와 마치노 몬티나리가 1967년부터 펴낸 비판 전집은 메모들을 쓴 순서대로 되돌려 놓았고, 몬티나리는 『권력의지』가 니체의 작품이 아니며 하이데거의 해석조차 이 편집본에 기댄 “거시적 니체”라고 비판했다. 그래서 오늘날 연구자들은 개념으로서의 권력의지와 편집본 『권력의지』를 엄격히 구분한다.
마르크스주의는 권력의지를 어떻게 보았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권력의지가 착취를 어떻게 설명하는가였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 259절에서 사회주의자들을 직접 겨냥했다.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나, 심지어 과학의 탈을 쓰고서까지, ‘착취적 성격’이 사라질 미래의 사회 상태를 꿈꾼다.” 니체에게 이 꿈은 모든 유기적 기능을 그만둔 삶을 발명하겠다는 약속처럼 들렸다. 그는 이렇게 이어 간다. “‘착취’는 타락했거나 불완전하고 원시적인 사회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의 본질에, 유기적 근본 기능으로서 속한다. 그것은 본래의 권력의지, 곧 삶의 의지의 결과다.”
Die »Ausbeutung« gehört nicht einer verderbten oder unvollkommnen und primitiven Gesellschaft an: sie gehört ins Wesen des Lebendigen, als organische Grundfunktion, sie ist eine Folge des eigentlichen Willens zur Macht, der eben der Wille des Lebens ist.
마르크스에게 착취는 특정한 생산관계, 곧 생산수단을 가진 계급이 남의 잉여노동을 차지하는 역사적 관계였고, 그러니 그 관계와 함께 사라질 수 있었다. 니체는 착취를 생명의 본질로 영원화했다. 프란츠 메링이 1891년 니체를 “자본주의의 사회철학자”라고 부르고, 죄르지 루카치가 『이성의 파괴』에서 권력의지를 제국주의 시대 부르주아지의 세계관을 신화로 만든 것이라고 본 것은 이 대목 때문이다. 나치가 권력의지를 정복과 지배의 구호로 전유한 일도 이런 비판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서도 다른 읽기가 있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니체를 지배와 이성의 얽힘을 꿰뚫어 본 사상가로 다루었고, 푸코 이후의 권력 이론은 권력을 국가나 계급이 소유한 물건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퍼진 관계로 보는 시각을 니체에게서 끌어왔다. 권력의지는 이렇게 착취의 정당화로 비판받는 동시에 지배를 분석하는 도구로도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