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Untergang des Abendlandes. Umrisse einer Morphologie der Weltgeschichte · 1918–1922

서구의 몰락

The Decline of the West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1918년(제1권 「형태와 현실」)과 1922년(제2권 「세계사적 전망」)에 펴낸 역사철학서. 세계사를 하나의 진보 과정이 아니라 각각 천 년 남짓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 죽는 여러 「고급 문화」의 생애로 보고, 서구 문화가 이미 「문명」이라는 말기 단계에 들어서 제국주의와 카이사르주의로 끝나리라고 예언했다. 슈펭글러는 서문에서 “괴테에게서 방법을, 니체에게서 물음을” 얻었다고 밝혔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독일에서 널리 읽혀 바이마르 시대 보수 혁명 사상의 원천이 되었고, 루카치와 아도르노는 이 책을 비합리주의와 반동 사상의 대표 사례로 따졌다.

상세

왜 니체의 계보에 이 책이 들어가나?

『서구의 몰락』은 니체가 죽은 지 18년 뒤에 나왔지만, 니체가 독일 교양층의 머릿속에 들어간 방식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책이다. 슈펭글러는 1922년 개정판 서문 끝에서 자기가 거의 모든 것을 두 사람에게 빚졌다고 썼다. “괴테에게서 나는 방법을, 니체에게서 물음을 얻었다. 니체와 나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말해야 한다면, 나는 그의 전망(Ausblick)을 조망(Überblick)으로 만들었다고 하겠다.”

Von Goethe habe ich die Methode, von Nietzsche die Fragestellungen, und wenn ich mein Verhältnis zu diesem in eine Formel bringen soll, so darf ich sagen: ich habe aus seinem Ausblick einen Überblick gemacht.

니체가 던진 물음은 유럽 문화가 병들었다는 진단, 허무주의가 다가온다는 예감, 그리고 삶을 「권력의지」로 보는 관점이었다. 독일어 위키백과는 슈펭글러가 삶을 끊임없이 더 커지고 지배하려는 충동으로 규정하며 「권력의지」를 니체에게서 빌려 왔고, 고대 문화의 성격을 가리키는 「아폴론적」이라는 말도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가져왔다고 정리한다. 니체가 경구로 흩어 놓은 문화 비판을 슈펭글러는 세계사 전체를 덮는 체계로 바꾸었다. 그래서 이 책은 니체가 학문적 철학보다 먼저 대중적 세계관으로 퍼진 경로, 그리고 그 세계관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우파로 흘러간 경로를 함께 보여 준다.

책의 첫 원고는 1차 세계대전이 터질 무렵 이미 끝나 있었고, 1917년 봄까지 다듬어졌다. 제1권은 1918년 빈의 브라우뮐러 출판사에서, 제2권은 1922년 뮌헨의 C. H. 베크 출판사에서 나왔다. 패전과 혁명의 혼란 속에서 「서구의 몰락」이라는 제목은 그대로 시대의 표어가 되었다.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1920년대에만 60만 부 넘게 팔렸다. 국내에는 『서구의 몰락』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무엇을 주장하나? 문화와 문명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역사를 미리 결정하려는 시도가 감행된다.” 슈펭글러는 오늘날 완성 단계에 들어선 유일한 문화, 곧 서유럽과 아메리카의 문화가 앞으로 거칠 단계를 미리 그려 보이겠다고 했다.

In diesem Buche wird zum erstenmal der Versuch gewagt, Geschichte vorauszubestimmen.

그 근거는 역사의 「형태학」이다. 슈펭글러는 괴테가 식물의 형태 변화를 관찰했듯 역사를 관찰하자고 했다. 세계사는 고대·중세·근대로 이어지는 한 줄기가 아니라 이집트, 바빌로니아, 인도, 중국, 고대 그리스·로마, 「아랍」(초기 기독교와 비잔티움, 이슬람을 묶은 것), 멕시코, 서구라는 여덟 고급 문화가 저마다 따로 걷는 생애의 모음이다. 각 문화는 봄·여름·가을·겨울처럼 같은 단계를 거치므로 서로 다른 문화의 같은 단계는 「동시적」이다. 이 비교로 슈펭글러는 알렉산드로스와 나폴레옹, 로마 제국과 다가올 서구의 제국을 나란히 놓았다. 고대 문화의 영혼은 「아폴론적」, 아랍 문화는 「마술적」, 서구 문화는 무한을 향해 뻗어 나가는 「파우스트적」 영혼이라고 불렀다.

핵심 개념은 「문화」와 「문명」의 구분이다. 독일어에서 두 낱말은 오래전부터 정신적 깊이와 외면적 세련을 가르는 말로 쓰였는데, 슈펭글러는 이것을 시간의 순서로 바꾸었다. “문명은 한 문화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문명은 살아 있는 성장 뒤에 오는 굳어 버린 결과물, 시골 대신 돌로 된 세계 도시, 신앙 대신 돈과 신문, 그리고 끝없는 팽창이다.

Die Zivilisation ist das unausweichliche Schicksal einer Kultur.

그래서 그는 제국주의를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여기서 제국주의를 가르친다. (…) 제국주의는 순수한 문명이다. 이 현상 형태 속에 서구의 운명이 되돌릴 수 없이 놓여 있다.” 그는 영국의 식민 사업가 세실 로즈를 「새 시대의 첫 사람」이라고 불렀다.

Imperialismus ist reine Zivilisation. In dieser Erscheinungsform liegt unwiderruflich das Schicksal des Abendlandes.

정치적으로 어디에 섰나?

슈펭글러는 스스로를 민족주의적 보수주의자로 여겼다. 그는 1789년 혁명의 자유·평등·박애가 결국 돈의 지배를 불러왔고, 민주주의는 금권과 언론에 휘둘리다가 독재자와 「카이사르」의 시대로 넘어간다고 보았다. 이 과정을 피할 수 없다고 했으므로 그의 결론은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었다. 영어 위키백과가 요약하듯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도 자본주의와 같은 언어와 전제 위에 서 있어서 자본주의를 반박하기보다 오히려 승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919년의 소책자 『프로이센주의와 사회주의』에서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에 맞서 프로이센적 질서와 복종을 「참된 사회주의」라고 내세웠다.

이 사상은 바이마르 시대 「보수 혁명」의 저수지가 되었다. 다만 나치와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아돌프 히틀러는 1924년 옥중에서 이 책을 읽었으나 감명받지 않았고, 1935년 노동절 연설에서는 「서구의 몰락」이 아니라 서구 민족들의 부활이라고 말해야 한다며 슈펭글러의 비관론과 거리를 두었다. 슈펭글러는 오히려 베니토 무솔리니를 다가올 시대의 원형으로 높이 샀고, 1933년의 『결단의 해』에서 나치를 깔보는 태도를 숨기지 않아 이후 냉대를 받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떻게 읽었나?

마르크스주의 쪽의 비판은 크게 둘로 나뉜다. 죄르지 루카치는 『이성의 파괴』에서 슈펭글러를 생철학이 극단적 역사 상대주의에 이른 사례로 다루었다. 독일어 위키백과가 인용하는 루카치의 판단에 따르면, 슈펭글러는 인과성과 법칙성을 버리고 그 자리에 유비를 앉혀 흔히 피상적인 닮음을 연구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빌헬름 딜타이나 게오르크 지멜의 잣대로 재면 “흔히 재기 있지만 대개는 피상적이고 경솔한 딜레탕트”에 지나지 않는다.

Mit den Maßstäben von Dilthey oder auch von Simmel gemessen, ist also Spengler nicht mehr als ein oft geistreicher, zumeist aber oberflächlicher und leichtfertiger Dilettant.

테오도어 W. 아도르노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1938년의 강연을 1941년 영어 논문으로, 다시 1950년 독일어 논문 「몰락 이후의 슈펭글러」로 고쳐 썼다. 영어 위키백과의 정리에 따르면 아도르노는 슈펭글러의 반동적 통찰을 진보적 목적 쪽으로 돌려 보겠다고 했다. 그는 카이사르주의와 힘의 정치가 시장을 누를 것이라는 슈펭글러의 예견이 나치의 등장으로 들어맞았고, 그 통찰이 동시대 자유주의자들보다 깊은 경우가 많았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주도권을 지워 버린 결정론, 그리고 「영혼」「피」「운명」 같은 낱말을 물신처럼 섬기는 언어를 비판했다. 루카치가 이 책을 쓰레기통에 넣었다면, 아도르노는 적의 예언에서 쓸 만한 진단을 건져 내려 했다.

학계의 반응도 대체로 냉담했다. 오토 노이라트는 1921년 『반슈펭글러』를 써서 이 책의 방법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1937년 니체 강의에서 슈펭글러가 니체가 이미 더 깊게 생각한 물음을 재치 있게 대중화했을 뿐이라고 깎아내렸다. 이 판단은 이 계보도에서 슈펭글러가 차지하는 자리를 잘 요약한다. 그는 니체의 물음을 넘겨받은 철학자라기보다, 니체를 바이마르 우파의 세계관으로 번역한 사람이었다.

관련 인물

출처

  1. de.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zeno.org
  4. zeno.org
  5. zeno.org
  6. zen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