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진보당
German Progress Party
1861년 프로이센 하원의 자유주의 의원들이 세운 독일 최초의 근대 강령 정당. 법치국가 개혁과 의회에 책임지는 정부, 군비 삭감을 내세워 헌법 분쟁기에 비스마르크와 맞섰다. 1884년 자유주의 연합과 합쳐 독일 자유사상당이 되었다.
상세
1861년 6월 6일 프로이센 하원의 핑케 교섭단체에서 갈라져 나온 막스 폰 포르켄베크·레오폴트 폰 호버베크 등이 독일 국민협회 사람들과 손잡고 창당 강령을 채택했다. 테오도어 몸젠, 헤르만 슐체델리치, 루돌프 피르호, 한스 빅토어 폰 운루 같은 의회 밖 인사들도 창당에 참여했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고정된 강령을 내걸고 그 이름으로 선거에 나선 정당이었다. 강령은 독립된 법관과 배심 재판, 의회에 책임지는 정부, 지방 자치, 신분제 특권 폐지, 종교 단체의 평등과 정교분리, 영업 자유를 요구했고, 상비군 대신 민병(국민군)에 기대는 국방과 군비 삭감을 주장했다.
진보당은 1861~1866년 프로이센 하원 최대 교섭단체였다. 군비 증액을 거부한 데서 프로이센 헌법 분쟁이 일어났고, 예산 없이 통치한 비스마르크의 「틈새 이론」을 헌법 위반으로 보고 맞섰다. 1866년 프로이센이 전쟁에 이기자 분위기가 바뀌어, 다수가 비스마르크의 면책 법안을 받아들였고 협력파는 1867년 떨어져 나가 국민자유당을 세웠다.
제국 수립 뒤 진보당은 제국의회 선거에서 6~9퍼센트를 얻는 소수당이 되었다. 문화투쟁에서는 비스마르크를 지지했지만 제국 헌법이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다며 반대했고, 사회주의자 탄압법에도 반대했다. 1870년대부터 오이겐 리히터가 당 조직을 장악했고, 그가 1879년 「비스마르크를 몰아내자」고 외친 뒤 1881년 선거에서 12.7퍼센트로 정점에 올랐다. 1884년 3월 5일 국민자유당 좌파가 떨어져 나온 자유주의 연합과 합쳐 독일 자유사상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