Зелёные · 1918–1922

녹색군 (러시아 내전)

Green armies (Russian Civil War)

러시아 내전기인 1918~1922년 볼셰비키와 백군, 외국 간섭군 모두에 맞서 싸운 농민 무장 집단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 징발과 보복에서 자기 마을을 지키려 한 반쯤 조직된 지역 민병으로, 정치적으로는 중립이었지만 때로 사회혁명당과 연결되었다. 이름은 숲으로 숨어든 붉은 군대 탈영병 무리에서 나왔으며, 볼셰비키의 승리가 다가오면서 1922년에 흩어졌다.

상세

녹색군의 배경은 전시 공산주의의 곡물 징발이었다. 볼셰비키는 남는 곡물을 강제로 거두기 위해 8만 명 규모의 식량 부대를 꾸렸고, 이들이 종자와 생필품까지 빼앗자 농민들은 숲으로 달아나 반란군에 합류했다. 녹색군은 귀족 토지의 몰수와 농촌 시장 경제의 유지, 스스로 뽑은 소비에트에 의한 자치를 원했고, 지주의 권리를 되살리려는 백군에도 늘 적대적이었다. 백군이 사실상 패한 1920년 이후 징발의 명분이 약해지자 같은 계급을 억압하라는 명령에 반발한 농민 출신 붉은 군대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숲에 모였고, 1919~1921년 녹색군 대원과 지휘관 상당수가 이런 탈영병이었다. 1921년 공식적으로 약 250만 명이 동원 해제되면서 고향에 돌아간 많은 병사가 녹색군에 합류했다. 소비에트 당국은 농민 소요를 짧고 소규모인 「분트」와, 수천 명이 도시를 점령하고 일관된 강령을 내세우는 「봉기(보스스타니예)」로 나누었는데, 1919년의 차파니 전쟁이 첫 「봉기」로 꼽힌다. 1920년의 쇠스랑 봉기, 알렉산드르 안토노프의 탐보프 봉기, 녹색군 봉기 가운데 가장 컸던 1921~1922년 서시베리아 봉기, 우크라이나의 아타만 니키포르 흐리호리우와 다닐로 테르필로의 봉기가 대표적이며, 네스토르 마흐노의 아나키스트 농민군도 이 흐름에서 함께 다루어진다.

녹색군은 탈영병이 들고 온 무기와 빼앗은 무기 말고는 몽둥이와 쇠스랑, 도끼, 사냥총으로 싸웠고, 다리를 폭파하고 전신선과 철도를 끊는 유격전을 벌였다. 1919~1921년 동부 우크라이나와 탐보프, 시베리아의 대규모 봉기에는 10만 명이 넘는 유격대원과 수백만 명의 농민 지지자가 관여했고, 레닌은 이를 소비에트 역사상 첫 「큰 국내 정치 위기」라 부르며 1921년 3월 8일 제10차 당대회에서 「데니킨, 유데니치, 콜차크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볼셰비키는 녹색군을 백군의 한 갈래로 그리고 쿨라크의 영향을 부풀렸으며, 처음에는 각 봉기를 개별 소요로 다루며 가혹하게 진압하다가 뒤에는 대량 테러와 선전, 봉기 지역을 군대로 채우는 방식으로 맞섰다. 녹색군은 지역에 머무는 성격과 서로 간의 조율 부족, 내부 갈등 때문에 실패했다. 영어 출처는 녹색군이 1921년 신경제정책으로의 전환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정도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네프와 늘어난 강우가 농촌 사정을 나아지게 해 녹색군의 기반을 허문 점과 1921~1922년 기근이 봉기를 끝낸 가장 큰 무기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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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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