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톈 회의
Gutian Congress
1929년 12월 푸젠 상항현 구톈에서 열린 홍군 제4군 제9차 당 대표대회. 마오쩌둥이 기초한 결의(「당내의 그릇된 사상을 바로잡는 데 관하여」)로 군대에 대한 당의 절대적 지도, 군 안의 당 조직이 「중심 지도」가 되는 체제, 홍군이 싸움뿐 아니라 대중의 선전·조직·무장과 혁명 정권 건설을 맡는다는 원칙을 정했다. 오늘날까지 인민해방군 조직의 근본 원칙으로 받들어진다.
상세
1929년 6월 마오는 군 내부의 논쟁 끝에 제4군 당 대표대회에서 지도부 선거에 졌다. 그해 9월 저우언라이가 중앙을 대표해 보낸 편지는 「먼저 홍군이 있고 뒤에 도시 정권이 있다, 이것이 중국 혁명의 특징」이라며 노농 무장 할거라는 마오의 견해를 인정하고, 홍군의 임무를 대중 투쟁 동원과 토지혁명·소비에트 건설, 유격전과 농민 무장, 유격 지역의 확대로 규정했다. 이 편지에 따라 12월 구톈에서 대회가 열렸고 마오가 이를 주재했다.
결의는 군사와 정치를 맞세우고 군사를 정치 과업의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는 「단순 군사 관점」, 결정을 끝없이 토론에 부치는 「극단 민주화」, 절대 평균주의, 주관주의, 개인주의, 유구(流寇) 사상 같은 비프롤레타리아 사상을 비판했다. 홍군은 「혁명의 정치 임무를 수행하는 무장 집단」이며, 적을 무찌르는 것 말고도 대중을 선전·조직·무장시키고 혁명 정권과 당을 세우는 짐을 진다고 규정했다. 당 위원회의 결정은 단호히 집행되어야 했고, 소수는 다수에, 하급은 상급에 따르는 민주집중제가 강조되었다.
「당이 총을 지휘하며 총이 당을 지휘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표현은 마오가 1938년 「전쟁과 전략 문제」에서 쓴 것이지만, 그 원칙의 제도적 출발점으로 구톈 회의가 꼽힌다. 군대 안의 정치 공작과 당 조직, 「3대 기율 8항 주의」 같은 규율은 홍군이 군벌 군대와 달리 농민의 지지를 얻는 바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