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작전
Harbin Operation
대숙청기 NKVD 민족 작전의 하나로, 1937년 9월 20일 예조프가 서명한 작전명령 제00593호에 따라 만주에서 귀환한 동청철도 전직 직원과 '하얼빈 출신자'들을 겨냥한 대량 탄압 작전이다. 표적은 민족적으로 러시아인이었지만 국경 너머 연결 고리를 이유로 '기능적 디아스포라'로 간주되어 민족 작전의 틀 안에서 처벌받았으며, 전체 민족 작전 중 폴란드·독일 작전에 이어 세 번째 규모였다. 희생자 규모는 연구자에 따라 3만~4만 9천여 명이 유죄 판결을 받고 그중 1만 9천~3만 1천여 명이 총살된 것으로 추산된다.
상세
개요
하얼빈 작전은 1937~1938년 대숙청기에 NKVD가 수행한 비밀 민족 작전의 하나로, 공식 명칭은 작전명령 제00593호이다. 1937년 9월 20일 내무인민위원 니콜라이 예조프가 서명한 이 명령은 "체포 대상은 모든 하얼빈 출신자다"라는 문구로 시작했고, 뒤에 13개 항목의 구체적 기준이 붙었다. 작전의 표적이 된 '하얼빈 출신자'는 동청철도 전직 직원과 만주에서 귀환한 재이민자, 그리고 만주에 체류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배경
동청철도는 1897~1903년에 건설되었다. 1930년대 만주에는 러시아인 주민이 다수 있었고, 하얼빈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1935년 소련이 동청철도의 지분을 만주국에 매각하면서 철도에 종사하던 소련 시민권자와 그 가족들이 소련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귀환자 수에 대한 추산은 출처마다 갈린다. 소련 외무인민위원부 자료로는 1935년 한 해에만 21,343명이 들어왔고, 연구자 오네기나는 약 2만 5천 명 규모로 보았다. 귀환자들은 볼가, 우랄, 중앙아시아, 북캅카스 등지의 철도에 배치되었으며, 모스크바 거주와 등록은 허용되지 않았고 곧바로 NKVD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하얼빈 출신자에 대한 첫 대규모 체포는 이미 1936년에 진행되었는데, 이때는 주로 옛 백위군과 백색 반정보기관 요원, 이민 정치조직 참여자가 대상이었다.
명령과 메커니즘
제00593호에는 하얼빈 출신자를 일본, 드물게는 중국 정보기관의 첩보망으로 규정한 비공개 서한이 첨부되었다. 작전 기간은 당초 1937년 10월 1일부터 12월 25일까지로 정해졌으나 여러 차례 연장되었다. 체포자들은 두 범주로 나뉘었는데, 제1범주는 총살 대상인 '파괴·간첩·테러 집단 참여자'와 '반소비에트 활동가', 제2범주는 '활동이 덜한 하얼빈 출신자'로서 8~10년의 수용형을 받았다. 명령은 체포자 가족을 '조국 반역자 가족'에 관한 제00486호에 따라 처리하도록 지시했다.
대부분의 사건은 사법절차 밖의 이른바 '앨범 방식', 즉 NKVD와 소련 검찰총장 합동 심의위원회에서 처리되었다. 철도운송부서가 맡은 사건은 삼인 재판소로 보내졌다. 1938년 9월 중순 앨범 방식이 폐지되면서 미결 사건은 재구성된 삼인 재판소로 넘어갔고, 탄압은 1938년 11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표적 범위
실제 운용에서 '하얼빈 출신자'의 범위는 1935년 귀환자에 그치지 않았다. 1920년대 초에 돌아온 사람들과 옛 백군 군인, 망명자, 나아가 중국에 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사실상 모두 포함되었다. 아블라제이의 표현대로 "중국에 한 번이라도 있었던 사람은 모두 체포되었다". 사건의 절반 정도는 집단 사건이었고, 체포자 가운데 동청철도 전직 직원이 18.6%, 백계 이민이 약 28%, 백위군 출신 진압대원(주로 자바이칼 카자크)이 16.8%를 차지했다.
민족 작전으로서의 성격
니콜라스 베르트는 이 작전을 소련의 외국인 혐오가 민족적 개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개념이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하얼빈 출신자의 대부분이 민족적으로 러시아인이었음에도, 중국에 남은 하얼빈 출신자와의 국경 너머 연결 고리 때문에 이들은 디아스포라 민족의 '기능적 등가물'로 취급되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이라는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민족 작전의 틀 안에서 '적 집단'으로 규정되었다. 규모 면에서는 독일 작전과 폴란드 작전에 이어 세 번째였다.
규모
희생자 수 추산은 통계 출처에 따라 다르다.
- 1956년에 활동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회는 하얼빈 출신자에 대해 30,938건의 사건이 개설되었고, 19,312명이 총살형, 10,669명이 기타 형을 받았다고 집계했다.
- 아블라제이는 작전 기간(1937년 9월~1938년 11월)에 42,507명이 탄압받고 28,348명이 처형되었다고 보며, 1937~1938년 '하얼빈 계열' 전체를 더 넓게 집계하면 46,317명이 유죄 판결을, 30,992명이 총살을 받았다고 제시한다.
- 인권단체 '메모리얼'은 유죄 판결 49,470명에 사형 선고 31,226명으로 추산한다. 영어권 문헌에서는 메모리얼 자료를 48,133명 탄압, 30,992명 총살로 인용하기도 한다.
다른 러시아어 연구는 1937~1938년 하얼빈 계열 유죄 판결을 3만~4만 9천여 명, 그중 총살을 1만 9천~3만 1천여 명으로 제시한다.
기억과 공개
희생자 규모에 대한 첫 종합 집계는 제20차 당대회를 앞둔 1956년 당 중앙위원회 위원회가 수행했다. 정치적 탄압 희생자의 법적 복권은 1991년 10월 18일 관련 법률의 채택과 함께 이루어졌다. 제00593호 명령 본문은 러시아에서 비밀 해제되었으나, 작전의 상세한 근거를 담은 비공개 서한은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졌다. 2015년 역사학자 세르게이 프루도프스키의 소송에서 러시아 대법원은 연방보안국이 이 서한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정당하다고 판단했으며, 우크라이나에서는 2011년에 이미 열람이 가능해진 상태였다. 프루도프스키는 이후 작전을 수행한 NKVD 요원들의 이름 공개도 요구했다.
알자지라의 2017년 보도는 빅토르 디덴코, 옐레나 루디 등 유가족의 증언을 전한다. 디덴코는 1935년 하얼빈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파벨 디덴코는 1937년 8월 5일 출근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1958년에야 아버지의 사망 사실을 알았고, 처음 받은 사망진단서에는 1943년 암 사망으로 적혀 있었으나 1991년에야 1937년 총살당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얼빈 동청철도 책임자였던 율리 루디는 1937년 귀환 후 체포되어 1938년 2월 총살되었고, 1956년에 모든 혐의가 취소되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comprehensive article on the Harbin Operation; defines it as a mass repressive campaign of the Great Terror (1937–1938) against 'Harbinites' — former CER employees, re-émigrés from Manchuria; Order No. 00593 signed by Yezhov 20 Sep 1937; third largest national operation; estimates 30,000–49,000 convicted and 19,000–31,000 shot; two-category sentencing system; album procedure and troikas.
-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NKVD Order No. 00593 'about Harbinites'; background of CER sale to Manchukuo in 1935 and repatriation of ~25,000 people; Memorial estimate of 48,133 repressed and 30,992 shot; 13 pre-defined arrest categories; operation extended beyond original deadline of 25 Dec 1937.
- sciencespo.fr Nicolas Werth, Sciences Po (2010): frames the Harbin Operation as the clearest illustration that 'Soviet xenophobia was an ideological rather than an ethnic concept'; despite ethnic Russianness the Kharbintsy were treated as a functional equivalent of a diaspora nationality and targeted within the National Operations.
- aljazeera.com Nikolay Korzhov, Al Jazeera (2017): reportage on the Harbin Operation as the 'third bloodiest' national operation; personal accounts of victims' families including Viktor Didenko and Elena Rudiy; describes the order mandating 'a broad operation to arrest and eliminate' all Harbiners and their families.
- cyberleninka.ru N.N. Ablazhey, Гуманитарные науки в Сибири (2008): academic article on the Harbin Operation; analyses NKVD statistics and investigation files; confirms 20.6–21.5 thousand repatriated in 1935 and the operation's scale and specific character as a national operation.
- 위키백과 (러시아어)
- 위키백과 (영문)
- sciencespo.fr
- aljazeer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