淮海战役 · 1948.11.06–1949.01.10

화이하이 전역

Huaihai campaign

1948년 11월 6일부터 1949년 1월 10일까지 쉬저우와 화이허 사이에서 화둥 야전군과 중원 야전군이 국민당 주력 55만 5천 명을 섬멸한 국공내전 최대의 전역. 타이완에서는 쉬방 회전이라 부른다. 국민당이 가장 큰 손실을 입은 이 전역 뒤 공산당은 창장 이북을 차지하고 난징·상하이·우한을 직접 위협했다.

상세

지난 함락 뒤 쑤위가 화둥 야전군의 남진 작전을 제안했고, 마오는 류보청·덩샤오핑의 중원 야전군까지 동원해 쉬저우를 고립시키는 계획으로 키웠다. 류보청·천이·덩샤오핑·쑤위·탄전린이 총전위원회를 이루었고 덩샤오핑이 서기를 맡았다. 화둥 야전군은 녠좡에서 황바이타오의 제7병단을 섬멸했고, 중원 야전군은 솽두이지에서 황웨이의 제12병단을 포위해 무너뜨렸으며, 마지막으로 천관좡에서 두위밍이 이끈 쉬저우 집단을 섬멸했다. 국민당 국방부 작전청장 궈루구이는 작전 계획을 공산당에 넘기고 있었다.

공산당 측 집계로 국민당군 22개 군 56개 사단 55만 5천 명이 섬멸되었다(포로 32만여 명). 산둥·허난·안후이·장쑤의 농민 543만 명이 수레 88만 대와 들것 20만여 개로 4억 3천만 근이 넘는 식량을 날랐고, 천이는 이 승리가 “고향의 부모 형제들이 손수레로 밀어 낸 것”이라고 말했다. 장제스 직계 황푸 출신 부대의 괴멸로 그의 입지는 무너졌고, 1949년 1월 21일 그는 총통직에서 물러났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zh.wikipedia.org
  3.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