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ustrielle Reservearmee

산업예비군

Industrial Reserve Army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1권 25장(1867)에서 정식화한 개념으로, 자본주의적 축적이 자기 팽창의 필요에 비례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상대적 과잉인구, 곧 실업자와 불완전취업자를 가리킨다. '군대'라는 표현은 자본의 지휘 아래 노동자들이 편제되어 위계 속에 놓인다는 관계를 뜻하며, 따라서 단순한 실업자 수가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구조적 관계를 명명한다. 마르크스는 이 예비군이 경기 순환에 따라 형성·흡수·재형성되며 현역 노동군의 임금을 억제하는 지렛대로 기능한다고 보았다. 용어는 Engels가 1845년에 이미 사용했고 1830년대 영국 노동운동에서 유통되었으며, 마르크스의 기여는 이를 자본주의적 노동조직의 필수 요소로 이론화한 데 있다. 오늘날에는 프레카리아트와 이주노동 분석에 확장 적용된다.

상세

개념의 내용

산업예비군은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1권 25장 3절에서 다룬 상대적 과잉인구를 가리킨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축적이 "자기 자신의 에너지와 범위에 정비례하여 상대적으로 잉여인 노동자 인구"를 끊임없이 생산한다고 썼다. 잉여는 자본의 가치증식 필요를 기준으로 한 상대적 잉여이며, 절대적 과잉인구가 아니다. 이 인구는 "자본이 자기 비용으로 길러낸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에 속하는 처분 가능한 산업예비군"을 이루고, 인구의 자연적 증가와 무관하게 항상 착취에 이용할 수 있는 인간 재료를 제공한다.

이 개념의 분석적 핵심은 임금 규제 기제다. 마르크스는 "산업예비군은 정체와 평균적 번영의 시기에는 현역 노동군을 짓누르고, 과잉생산과 격동의 시기에는 그 요구를 억제한다. 따라서 상대적 과잉인구는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동하는 축"이라고 썼다. 또한 그는 "고용된 부분의 과로는 예비군의 대열을 부풀리고, 반대로 예비군이 그 경쟁으로 현역에 가하는 압력은 현역을 과로로 몰아넣는다"고 하여, 과로와 실업이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임을 밝혔다.

역사

마르크스가 이 용어를 처음 만든 것은 아니다. Engels는 1845년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상태』에서 이미 이 표현을 썼고, 그 관념은 1830년대 영국 노동운동 안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마르크스 자신의 저술에서 이 표현이 처음 나오는 곳은 1847년에 쓰였으나 출간되지 않은 원고이며, 1848년 『공산당선언』 제1부에서는 노동자들이 "군인처럼 편성되어" 장교와 하사의 완전한 위계 아래 놓인다고 서술된다.

개념의 정식화는 1867년 『자본론』 제1권 25장에서 이루어진다. 마르크스는 축적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변화시키지 않는 동안에는 노동 수요와 임금이 오른다는 것을 먼저 보이고, 생산력이 성장하면서 불변자본이 가변자본을 희생해 늘어난다는 것을 밝힌 뒤, 이것이 직접적으로 상대적 과잉인구를 생산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진행되면서 노동자 인구의 일부는 축적의 필요에 잉여로 남게 된다. 마르크스는 근대산업에서 예비군이 반복적으로 형성·흡수·재형성된다고 보았고, 이것을 "평균적 활동, 고압적 생산, 위기와 정체의 시기로 이루어진 10년 주기"와 연결했다. 그는 자본이 "노동자에 대한 수요보다 노동의 공급을 더 빨리 늘린다"고 지적하며, 예비군이 자연적 인구 한계에 근거하지 않음을 논증했다.

마르크스는 이 개념을 자유시장에만 묶지 않았다. 식민지에서와 같이 불리한 조건 때문에 산업예비군의 형성과 그에 따른 노동계급의 자본에 대한 절대적 의존이 방해받을 때, "자본은 수요 공급의 신성한 법칙에 반항하며 강제적 수단과 국가 간섭으로 그 불편한 작용을 저지하려 한다"고 썼다.

수용의 역사에서는 논쟁이 있었다. 일부 저자는 마르크스가 계급 전체의 절대적 궁핍화를 예견했다고 읽었다. Ernest Mandel과 Roman Rosdolsky는 그러한 이론이 마르크스에게 없었다고 주장했고, 마르크스가 말한 것은 계급 전체가 아니라 궁핍화되는 부분이 늘어난다는 것이었으며 이 법칙도 "여러 사정에 의해 그 작용이 변형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마르크스가 쓴 '악화된다'는 표현은 생산수단이 "생산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화하는 변증법적 역전, 즉 더 비인간적이고 더 착취당하며 소외되는 상태를 뜻한다.

이 개념은 오늘날에도 세계적 규모로 분석된다. John Bellamy Foster, Robert W. McChesney, R. Jamil Jonna의 「세계 노동예비군과 신제국주의」(Monthly Review 63권 6호, 2011)가 대표적이며, ILO의 『세계 노동 보고서 2013』은 2012년 공식 실업자를 1억 9,540만 명, 민간 노동력의 5.9%로 집계했다.

사례

마르크스 자신의 영국 사례 연구에는 1846년부터 1866년까지의 자료가 담겨 있다. 로마저 착취 부분에서는 맨체스터 상류 중산계급의 평균 사망 연령이 38세, 노동계급이 17세였고 리버풀에서는 각각 35세와 15세였다는 자료가 인용된다. 농업 부문에서는 1849년부터 1859년 사이의 미미한 임금 인상 뒤 농민들이 "더 많은 기계를 도입했고, 노동자들은 다시 순식간에 잉여가 되었다". 자본이 "더 생산적인 형태로" 투하되자 노동 수요는 "상대적으로뿐 아니라 절대적으로" 감소했다.

마르크스는 잉여인구의 구성을 부유(浮遊)적, 잠재적, 정체적 형태로 구분하고 궁핍층을 최저 퇴적층으로 따로 다루었다. 부유적 형태는 근대산업에서 배척되었다가 다시 흡수되는 노동자들로, 성년이 되면 대거 방출되는 소년 노동자가 포함된다. 잠재적 형태는 도시 프롤레타리아로 넘어갈 지점에 놓인 농업 인구다. 정체적 형태는 고용이 극히 불규칙해 "노동시간의 최대화와 임금의 최소화"가 결합된 가내노동 형태다. 또 자본은 "숙련 노동자를 비숙련 노동자로, 성인 노동력을 미성년 노동력으로, 남성 노동력을 여성 노동력으로, 성인의 노동력을 청소년이나 아동의 노동력으로" 점차 대체한다.

동아시아의 문서화된 사례로는 1970년 서울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의 투쟁이 있다. 재단사 전태일(1948-1970)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조건을 문제 삼아 1970년 11월 13일 시장 앞에서 분신하여 사망했고, 그 뒤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노동쟁의는 1970년 165건에서 1971년 1,600건을 넘어섰다. 전태일의 1970년 조사는 견습 '시다' 소녀들의 월급이 1,800-3,000원, 미싱공이 7,000-25,000원, 재단사가 15,000-30,000원이었음을 기록했다. 1983년 동아일보 보도는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약 1.5미터 높이의 다락방에서 하루 평균 14-15시간을 일했다고 전했다. 조직화 요구는 유급 휴일, 정기 임금 인상, 8시간 노동, 정기 건강검진, 생리휴가, 다락방 숙소 폐지, 환기, 노동조합 결성 지원의 8개 항목이었다. 같은 시기의 부당 해고도 기록된다. 전태일은 극심한 노동 조건에서 폐렴에 걸린 동료 여성 노동자가 강제 해고되는 것을 보고 그를 도우려다 1966년 여름 자신이 해고되었다. 이 사례는 병들고 버려진 노동자가 현역에서 예비군으로 밀려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계 남부와 이주에 대한 적용도 이루어졌다. Duggan의 「노동예비군과 이주」(이주 글로벌 백과사전, 2013)가 이 개념을 이주 분석에 사용했고, Paul Bairoch는 1980년대 중반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잠재 노동시간의 30-40%가 완전히 비활동 상태였다고 추정했다.

관련 개념

마르크스의 논증 안에서 예비군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 가변자본과 노동 수요, 신용과 집중, 산업 순환, 노동자 상호 간의 과로 경쟁과 연결된다. 그는 신용제도가 "자본 집중을 위한 거대한 사회적 기제"가 된다고 썼다.

조직 노동과의 관계도 명시적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조합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이 자연법칙이 자기 계급에 미치는 파괴적 결과를 파괴하거나 약화시키기 위해" 고용된 노동자와 실업자를 함께 조직하려 한다고 논했고, "고용된 자와 실업자의 결합"에 대한 자본의 격렬한 반발을 수요 공급 법칙의 침해라는 주장으로 기록했다.

현대의 인접 개념으로는 임시적·시간제 노동에 의존하며 "프롤레타리아와 노동예비군의 측면을 공유한다"고 설명되는 프레카리아트, 물가 안정에 일정한 실업을 필요로 한다는 NAIRU, 그리고 숨은 실업과 공식 측정 지표(미국 BLS의 U-1~U-6, '공식' 실업률인 U-3)가 있다.

구분

첫째, 실업과 상대적 과잉인구는 구별된다. 실업자는 실제로 일자리를 찾는 사람으로 정의될 수 있는 반면, 상대적 과잉인구는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까지 포함한다.

둘째, 노동력 공급과 노동자 수는 다르다. 같은 규모의 가변자본이 노동자를 더 고용하지 않고도 더 많은 노동을 작동시킬 수 있으므로(더 길거나 더 강도 높은 착취), 예비군의 크기를 인구 조사 수치에서 직접 읽어낼 수 없다. 가변자본의 증가는 "더 많은 노동의 지표일 수 있으나 더 많이 고용된 노동자의 지표는 아니다".

셋째, 마르크스의 과잉인구는 맬서스의 인구 과잉과 다르다. 전자는 자본 아래의 사회적 관계이고, 후자는 인구가 식량 공급을 초과한다는 예측이다. 식량이 다르게 생산·분배된다면 실제 문제가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논변이다.

넷째, 경제학자들의 비판도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Paul Samuelson은 실업자가 임금을 끌어내리는 것은 그들이 대체 가능한 인력인지와 실질임금 효과에 달려 있으며 예비군이 흡수되어 줄어들 때만 임금이 내려간다고 주장했다. Murray Rothbard도 예비군이 스스로 소멸하여 지속적 위협이 되지 못하고, 생산성에 기반한 수요가 실업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섯째, 실업이 자발적인지 비자발적인지는 논쟁 중이다. 1930년대 대공황처럼 20-30%의 높은 수준에서는 대체로 비자발적인 것으로 본다. 실업 수준은 부분적으로 정치적이다. 정부는 실업을 늘리도록 방치할 수도 있고 일자리 창출 정책을 시행할 수도 있으며, 노동조합이 법적으로 봉쇄되면 낮은 실업률에서도 평균임금을 낮게 유지할 수 있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Wikipedia article confirming the concept, its origin in Marx's Capital Vol. I Ch. 25, synonyms (industrial reserve army, relative surplus population), composition of the surplus population, and modern academic usage
  2.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Marx, Capital Vol. I, Ch. 25, Section 3: 'Progressive Production of a Relative Surplus-Population or Industrial Reserve Army.' Primary source where Marx argues the industrial reserve army 'weighs down the active labour-army' and is 'the pivot upon which the law of demand and supply of labour works'
  3. 위키백과 (영문)
  4.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5. 위키백과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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