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왕정
July Monarchy
1830년 7월 혁명으로 샤를 10세가 물러난 뒤 오를레앙 가의 루이 필리프가 「프랑스인의 왕」으로 다스린 입헌군주정이다. 재산세를 내는 소수에게만 선거권을 준 제한 선거로 은행가와 대부르주아가 지배했고, 1840년대 기조 내각 아래 보수화했다. 1848년 2월 24일 혁명으로 무너졌다.
상세
7월 왕정은 1830년 8월 9일부터 1848년 2월 24일까지 이어졌다. 루이 필리프는 「프랑스의 왕」이 아니라 「프랑스인의 왕」을 칭해 인민주권을 인정하는 모양을 취했고, 정통왕조파와 공화파 사이의 「중용」을 내세웠다. 선거권자는 샤를 10세 때의 약 9만 4천 명에서 1848년 20만 명 남짓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인구의 약 1%였다. 카지미르 페리에와 기조는 공화파 결사를 해산하고 신문을 탄압했으며, 1831년과 1834년 리옹 견직공(카뉘) 봉기와 1834년 파리 봉기는 군대로 진압되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서 이 체제를 「금융 귀족」의 지배로, 국가를 그들이 나라의 부를 나눠 먹는 「주식회사」로 묘사했다. 1846~1847년 흉작과 공황, 부패 추문 속에서 선거 개혁을 요구한 개혁 연회 운동이 금지되자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