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봉기 (1848)
June Days uprising
1848년 6월 22~26일 국립 작업장 폐쇄에 맞서 동부 파리의 노동자들이 일으킨 봉기다. 행정위원회와 제헌의회가 카베냐크 장군에게 독재권을 주어 정규군·국민위병·기동위병으로 진압했다. 봉기 측 사망자는 3,000~5,000명에 약식 총살 약 1,500명, 체포 약 2만 5천 명으로 추산되며, 마르크스는 이를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첫 대전투로 보았다.
상세
6월 21일 폐쇄 법령이 『모니퇴르』에 실리고 노동자 대표단이 마리에게 쫓겨나자, 6월 23일 아침 바스티유 광장에서 노동자 루이 퓌졸의 연설을 신호로 바리케이드가 올라갔다. 엥겔스는 몽마르트르에서 생자크 문까지 이어진 선의 동쪽은 노동자가, 서쪽은 부르주아지가 쥐었다고 썼다. 정부군은 정규군 2만 5천, 국민위병 1만 7천, 가난한 청년들로 모집한 기동위병 1만 5천, 공화국 위병 2,500명이었다. 26일 생탕투안 문밖의 마지막 바리케이드가 떨어졌고, 그 사이 아프르 대주교와 브레아 장군 등 장군 7명이 죽었다. 수치는 출처마다 크게 다르다. 영어 위키백과는 군대 쪽 사상자 약 1,500명, 봉기 측 약 3,000명, 알제리 유형 4,000명 이상을 적고, 프랑스 위키백과는 정부군 사망 약 1,600명(경찰청장 뒤쿠의 보고는 1,460명), 봉기 측 전사 3,000~5,000명과 약식 총살 약 1,500명, 체포 약 2만 5천 명, 징역·유형 판결 1만 1천 명을 든다. 카베냐크는 7월 3일 정부군 사상자를 703명이라 했다. 봉기 뒤 헌법 초안에서 노동권이 빠지고 클럽이 규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