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인민혁명당
Lao People's Revolutionary Party
1955년 3월 22일 인도차이나 공산당 출신 라오스 공산주의자들이 「라오 인민당」으로 세운 라오스의 집권 정당. 파테트 라오를 통해 왕국 정부에 맞선 반란을 이끌고 북베트남군을 지원했으며, 1975년 12월 라오 인민민주공화국을 세운 뒤 유일 정당으로 통치하고 있다. 1972년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고,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장 개혁을 추진했다.
상세
당의 전신은 1930년 호찌민이 세운 인도차이나 공산당이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베트남인이 주도한 이 당에는 1945년 11월 11일 공식 해산할 때까지 캄보디아인이나 라오스인 당원이 없었으나, 프랑스어 출처는 1936년 라오스 지부가 생겼다고 적는다. 1946년부터 라오스인 간부 모집이 시작되어 하노이 대학 학생이던 카이손 폼비한과 누학 품사완이 가입했다. 1951년 2월 인도차이나 공산당이 베트남 노동당으로 바뀔 무렵 당원 2091명 가운데 라오스인은 81명이었다.
1955년 3월 22일 창당 대회에서 라오 인민당이 세워졌다. 프랑스어 출처에 따르면 대회는 삼느아에서 비밀리에 열려 대의원 25명이 모였고, 당원은 약 300명으로 사실상 베트남 당의 라오스 지부였다. 당은 존재를 숨긴 채 파테트 라오와 라오 애국전선 같은 대중 전선을 통해 활동했다. 1959년 정부의 탄압으로 거의 궤멸했으나 북베트남의 지원이 늘면서 1960년대 초 나라의 절반 가까이를 장악했다. 1972년 2월 제2차 대회에서 라오인민혁명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73년 2월 21일 평화 협정으로 수반나 푸마가 이끄는 임시 민족연합정부가 섰다. 1975년 파테트 라오가 비엔티안으로 가는 도로를 장악하고 시위로 각료 5명이 사임하는 가운데, 11월 26일 왕정이 퇴위에 동의했고 12월 1~2일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왕국을 폐지하고 라오 인민민주공화국을 세웠다. 1980년까지 인구의 10%가 나라를 떠났다. 집권 초 당은 비밀주의를 유지해 카이손 서기장은 대부분의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라오 애국전선 의장이던 수파누봉 같은 운동의 공개 얼굴들은 뒤로 밀려났다.
1978년 농업 집단화에 나섰으나 저항에 부딪혀 1981년 중단했고, 1990년에는 협동농장이 거의 사라졌다. 1986년 제4차 대회에서 소련식 계획경제를 해체하기 시작해 국영기업을 국가 예산에서 떼어 냈고, 1988년 외국인 투자에 우호적인 법률을 채택했다. 동구권 원조는 1988년 5200만 달러에서 1989년 100만 달러로 줄었고 1990년에는 끊겼다. 1990년 복수정당제를 요구한 통숙 사이상키 차관 등 관리 세 명은 투옥되었다.
이후 채택된 새 헌법은 라오스를 당이 이끄는 인민민주국가로 규정했고, 헌법 제3조가 당의 권력 독점을 보장한다. 당 규약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카이손 폼비한 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삼으며, 당은 1990년대부터 사회주의의 물적 토대를 쌓는 수단으로 국가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카이손은 1955년부터 1992년 죽을 때까지 서기장이었고, 이후 캄타이 시판돈, 춤말리 사야손, 분냥 보라칫을 거쳐 2021년부터 통룬 시술릿이 서기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