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농민연합
Latvian Farmers' Union
1917년 발카에서 카를리스 울마니스를 중앙위원장으로 창당된 라트비아의 농민 정당. 의회 시기(1920~1934) 라트비아에서 당원 수가 가장 많고 영향력이 가장 큰 시민 정당으로, 1918~1934년 18개 정부 가운데 13개를 이끌었다. 1934년 울마니스의 쿠데타 뒤 모든 정당과 함께 활동을 멈추었고, 1990년 재건된 같은 이름의 정당이 그 후신을 자처한다.
상세
라트비아어 출처에 따르면 라트비아 농민연합은 1917년 5월 12일(구력 4월 29일) 발카에서 창립되었고, 창립 회의는 임시 강령과 규약을 채택하고 카를리스 울마니스를 중앙위원장으로 뽑았다. 1917년 8월에 이미 당원이 2만 명을 넘었으며, 사회적 기반은 농촌의 대농이었다. 임시 강령에는 토지개혁과 8시간 노동일이 들어 있었다. 같은 해 비점령 비제메 군 선거에서 36%, 11월 러시아 제헌의회 선거에서 23%를 얻었고, 그 지원과 주도로 라트비아 임시민족평의회가 만들어졌다.
1918년 11월 15일 당은 독립 라트비아 국가 선포를 지지하기로 결정했고, 11월 17일 세워진 인민평의회에서 40석 가운데 13석을 차지했다. 인민평의회가 세운 임시정부의 수반은 이 당의 울마니스였으며, 외무장관 지그프리츠 안나 메이에로비츠, 내무장관 미켈리스 발테르스 등도 당 소속이었다. 출처는 당 지도자로 울마니스, 메이에로비츠, 아돌프스 클리베, 후고 첼민시, 아르투르스 알베링스, 야니스 발로디스 등을 든다.
1918~1934년 18개 정부 가운데 13개 정부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 1924년 자무엘스 정부와 1927년 스쿠예니엑스 정부를 빼면 모든 정부에 참여했다. 영어 출처는 당이 독립부터 1934년까지 라트비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 정당이었고 득표로는 사회민주노동자당 다음이었다고 적는다. 당은 은행·상업 자본과 긴밀했으나 1930년대 초 영향력이 줄어 1931년 사이마 선거에서는 14석에 그쳤다.
라트비아어 출처는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할 수 있음을 깨달은 당 지도부가 쿠데타를 준비했다고 적는다. 1934년 5월 15일 저녁 울마니스의 지휘로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튿날 비상사태가 선포된 뒤 모든 정당이 금지되어 농민연합도 활동을 멈추었다. 다만 충성스러운 당원들은 탄압받지 않았고 이후 울마니스 권위주의 체제에서 요직을 맡았다.
1990년 7월 5일 384명이 참석한 재건 회의를 거쳐 1991년 2월 16일 첫 대회가 열렸고, 아이바르스 베르키스가 첫 당수로 뽑혔다. 새 당은 1917년 창당된 농민연합의 후신을 자처한다. 2002년 라트비아 녹색당과 함께 녹색농민연합(ZZS)을 만들었고, 2000~2019년에는 아우구스츠 브리그마니스가 당을 이끌었다. 2026년 사이마 선거에서는 녹색농민연합 명부가 5% 문턱을 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