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eral Party · 1859–1988

자유당 (영국)

Liberal Party (UK)

19세기와 20세기 초 보수당과 함께 영국의 양대 정당이었던 자유주의 정당. 1850년대 휘그, 자유무역을 지지한 필파, 개혁적 급진파의 연합에서 출발해 글래드스턴 아래 네 차례 정부를 구성했고, 1906년 총선 압승 뒤 기초적인 복지국가를 만든 개혁을 통과시켰다. 1916년 이후 애스퀴스파와 로이드 조지파의 분열로 급속히 쇠퇴했으며, 1988년 사회민주당(SDP)과 합당해 사회자유민주당(이듬해 자유민주당으로 개칭)이 되었다.

상세

자유당은 찰스 2세 시대의 귀족 파벌에서 비롯해 왕권 축소와 의회 권한 확대를 주장한 휘그, 그리고 19세기 초의 급진파에서 자라났다. 휘그는 그레이 백작 아래 1832년 제1차 선거법 개정을 이루었고, 1839년 무렵 존 러셀이 「자유당원」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당은 상원의 휘그와 하원의 급진파가 느슨하게 연합한 형태였으며, 존 브라이트와 리처드 코브던 같은 급진파 지도자들이 내세운 자유무역은 한 세기 동안 자유당원을 하나로 묶은 대의였다. 남은 필파·급진파·휘그가 보수당 정부를 표결로 무너뜨리기로 합의한 1859년 6월 6일 런던 윌리스 룸 회합이 전통적으로 공식 창당의 기점으로 꼽히며, 1877년 전국자유연맹이 세워지면서 전국적인 당원 조직이 갖추어졌다.

이후 30년 동안 글래드스턴과 자유주의는 동의어였다. 글래드스턴은 1868–1874년, 1880–1885년, 1886년, 1892–1894년 네 차례 총리를 지냈고, 첫 정부에서 1870년 초등교육법, 비밀투표 도입, 노동조합 합법화, 1869년 아일랜드 국교회 폐지 등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일랜드 자치 문제로 당이 갈라져 1886년 자유통일당이 떨어져 나갔고, 이들은 결국 보수당에 합류했다.

자유당은 1905년 정권에 복귀해 1906년 총선에서 397석을 얻는 압승을 거두었다. 이것이 자유당이 단독 과반을 얻은 마지막 선거였다. 헨리 캠벨배너먼(1905–1908)과 H. H. 애스퀴스(1908–1916) 내각은 기초적인 복지국가를 만든 개혁을 통과시켰고,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재무장관으로, 보수당에서 넘어온 윈스턴 처칠은 상무장관으로 활약했다.

1916년 말 로이드 조지가 애스퀴스를 대신해 연립정부를 이끌었으나 애스퀴스는 당수로 남았고, 로이드 조지의 분파와 애스퀴스의 공식 자유당 사이의 분열이 당을 크게 약화시켰다. 점점 보수당이 주도하게 된 로이드 조지 연립정부는 1922년 보수당에 의해 무너졌고, 1906년 397명이던 자유당 의원은 1924년 40명으로 줄었으며 득표율도 49%에서 18%로 떨어졌다. 옛 자유당 지지층의 대부분은 노동당이 흡수했다. 로이드 조지는 1926년부터 1931년까지 당을 이끌었으나, 1931년 거국정부를 둘러싸고 당은 다시 세 갈래로 갈라졌다. 1950년대에는 총선에서 6석까지 줄어들었다.

1981년 노동당 온건파가 사회민주당(SDP)을 창당하자 자유당은 SDP–자유당 연합을 결성했다. 연합은 1983년 총선에서 4분의 1 이상을 득표했지만 23석을 얻는 데 그쳤고, 1987년 총선 뒤 두 당의 합당이 추진되었다. 1988년 3월 자유당과 SDP는 사회자유민주당으로 합당했고, 이 당은 1989년 10월 자유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9년에는 일부 분파가 자유당을 다시 세웠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사회계획가 윌리엄 베버리지 등 저명한 지식인들이 이 당에서 활동했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
← 용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