Литовско-Белорусская Совет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 1919–1920

리투아니아-벨로루시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

Socialist Soviet Republic of Lithuania and Belorussia

1919년 2월 27일 소비에트 리투아니아와 벨로루시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이 합쳐 세운 소비에트 공화국. 줄여서 리트벨이라 한다. 빌뉴스를 수도로 삼았으나 폴란드군과 리투아니아군의 진격으로 8월까지 주장한 영토를 모두 잃었다. 흔히 소비에트 러시아의 괴뢰 국가로 평가되며, 끝난 시점은 학자마다 다르다. 소련 역사학은 벨로루시 공화국이 다시 세워진 1920년 7월 31일을 끝으로 본다.

상세

1919년 1월 16일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소비에트 리투아니아와 소비에트 벨로루시의 통합을 결정했다. 1월 22일 모스크바의 대표로 민스크에 온 아돌프 이오페에게 벨로루시 볼셰비키 지도부는 통합을 거부하며 그가 무능하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2월 2~3일 제1차 전벨로루시 소비에트 대회에서 야코프 스베르들로프가 「백군-벨라루스-리투아니아 정부」에 맞서려면 단결해야 한다고 호소했고, 2월 18~20일 빌뉴스의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대회(대의원 220명)도 통합에 찬성했다. 2월 27일 두 공화국 중앙집행위원회의 합동 회의는 카지미에시 치호프스키를 중앙집행위원회 의장으로, 빈차스 카프수카스를 인민위원회 의장으로 뽑았다. 영토 안의 인구는 약 400만 명이었다. 공용어는 러시아어·벨라루스어·리투아니아어·폴란드어·이디시어 다섯이었으나 실제로는 러시아어가 주로 쓰였다. 이오페가 주요 각료를 직접 골랐고, 정부에서는 리투아니아인이 벨로루시인보다 많아 벨로루시인은 대개 두 번째 자리에 머물렀다. 3월 4~6일 두 공산당이 합쳐 리투아니아·벨로루시 공산당이 되었는데, 몰수한 영지를 농민에게 나누지 않고 국영 농장으로 만들기로 한 결정이 농민과 당의 관계를 틀어지게 했다.

폴란드군이 4월 17~21일 빌뉴스를 점령하자 정부는 드빈스크를 거쳐 4월 28일 민스크로 옮겼다. 4월 19일 카프수카스·이오시프 운쉴리흐트·모이세이 칼마노비치로 국방회의가 꾸려졌고, 5월 30일 중앙집행위원회는 군사와 경제 업무를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정부에 넘기는 조약에 서명했다. 3월 13일 창설된 리투아니아-벨로루시군은 5월 말까지 안드레이 스네사레프가 지휘했으나 6월 9일 붉은 군대 제16군으로 바뀌었다. 18~40세 남성 징집령은 주민의 저항에 부딪혀 6월 민스크현의 탈영병이 약 3만 3천 명에 이르렀고, 전시 공산주의 아래의 징발과 러시아로의 식량 공출 압박 속에 6월에는 기근이 퍼졌다. 7월 13일 이오시프 스탈린이 국방회의와 인민위원회의 해산을 제안했고, 7월 17일 국방회의가 해산되었다. 폴란드군은 8월 8일 민스크를, 8월 27일 마지막 도시인 노보알렉산드롭스크를 차지했다. 역사가들은 리트벨을 괴뢰 국가(피오트르 워소프스키, 데이비드 마플스 등)나 「종이 국가」(도로타 미하우크)로 보며, 소련 역사학은 반혁명에 맞선 방어 조치로 설명했다.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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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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